• 귀농한 캐리어우먼과 똥거름
        2006년 10월 01일 08: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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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충북 보은에서 오랫동안 한우 키우고 계신 이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마침 옆집에는 안산 바람들이 농장에서 2년 넘게 텃밭 농사를 짓다 귀농하신 S님이 계셔서 한번에 두 분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S님은 독신 여성으로 서울에서 잘 나가는 이른바 커리어 우먼이었다. 속된 말로 가방끈도 왕창 긴 전형적인 서울내기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농사일도 잘하고 적극적인지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바람들이 농장의 회원들은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와서 거름으로 만드는 분들도 많지만 오줌을 받아오는 분들도 적지 않다. 음식물은 분쇄되지 않은 고형질이 많은데다 조리한 음식은 염분도 많아 발효가 잘 되질 않는다.

    반면 오줌은 전형적인 요소비료인데, 일주일 정도만 그늘에 놔두어도 발효가 잘되어 바로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액체비료이어서 작물이 빠르게 흡수하기 때문에 화학비료처럼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다만 오줌은 염분이 있어서 작물이 닿지 않게 주거나 물에 희석해 주어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마른 풀이나 재, 숯가루에 섞어두었다가 삭혀서 거름으로 쓰는 것이다.

    사람이 배출하는 쓰레기 중에 가장 좋은 거름 재료는 역시 똥이다. 똥은 음식물을 사람이 이빨로 분쇄해주고 배속에서 따뜻하게 데워준 것이기 때문에 발효가 아주 잘된다.

    안산 바람들이 농장에는 전통식 뒷간이 있다. 잿간식 뒷간을 변형한 것인데 오줌과 똥을 분리 배출하는 방식이다. 똥은 공기를 좋아하는 호기발효를 시켜야 발효가 잘 되고 오줌은 공기를 싫어하는 혐기발효를 시켜야 발효가 잘된다.

    똥은 왕겨 같은 틈새가 많은 마른재료와 섞어놓으면 한달 지나 하얗게 곰팡이가 핀다. 오줌은 일주일만 뚜껑을 꼭꼭 닫아 놔두면 거무튀튀하게 발효가 되기 시작한다. 이런 뒷간을 우리 집에도 만들어 놓고 똥을 모아 밭에 가져가 거름을 만드는데 아주 적지만 몇몇 회원이 나처럼 집에다 뒷간을 만들어 똥을 받아온다. 우리 집이야 마당이 있어서 똥 받기 어렵지 않지만 회원들은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베란다에다 뒷간을 만들어 받아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S님은 그런 분 가운데 하나였다. 똥을 열심히 받아오실 때마다 힘들텐데 대단하시다고 하면 풀만 먹어서 별로 어렵지 않다고 했다. 올 초 귀농하기 전에도 열심히 당신 거름간에 똥을 모아 놓았는데 그걸 귀농할 때 들고 가기 힘들어 나한테 쓰라고 선물(?)로 주고 갔다.

    따뜻한 봄이 되어 얼마나 잘 삭았나 궁금해서 그 분 퇴비간을 열어보았는데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다. 풀과 낙엽을 함께 섞어놓은 거름 더미에 똥의 흔적이 온데 간데 없다. 꼭 풀과 낙엽만 갖고 발효시킨 것 같다. 그 냄새도 보통 똥거름보다 풀 삭은 냄새가 많다. 속으로 “채식만 하더니 역시 좋군”하고 요긴하게 거름으로 만들어 썼다.

    S님이 귀농한 옆집엔 한우와 유기농사를 평생 해오신 분이 사신다. 그 분을 스승님 삼아 농사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그곳으로 귀농했다. 내가 이번에 찾아뵌 것은 옛날 식 소 키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가능하면 자연 방목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소가 병도 없고 새끼를 낳아도 기형이 없어요. 요즘엔 가둬 키우고 항생제 들어간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자연 교미로 새끼를 낳을 수가 없어요. 인공수정을 해야지요. 자연방목해서 풀 먹어 키우면 축분도 거름으로 쓰기 아주 좋습니다. 유기농을 제대로 하려면 축산을 병행하십시요. 그러면 깨끗한 축분을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지금 친환경농사에서 최상급인 유기재배를 인증 받으려면 공장식 축분을 쓸 수 없잖아요. 축분도 얻을 뿐만 아니라 새끼 낳아 송아지를 팔면 경제적인 소득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됩니다.”

    선생님이 주로 짓는 농사는 벼와 고추다. 산골짝 마을이라 선생님 논을 가 보았더니 계곡을 끼고 논이 계단처럼 만들어져있다. 다락논이다. 다 합쳐서 2천 평이라는데 논배미가 15개나 된다. 어떤 것은 20평밖에 되 보이지 않는 배미도 있다. 논 맨 위에는 고추밭이 크게 펼쳐져 있다. 이 계곡의 논과 밭을 경운기 몰고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신다. 경운기 아니고는 도저히 다닐 수 없는 험난한 길이다.

    선생님은 내년부터 다시 경운기 대신에 소로 쟁기질 할 것이라 했다. 동력기계라 더 편할 줄 알고 몇 해 전부터 경운기로 했는데 오히려 더 힘들단다. 논처럼 평탄한 곳은 할만한데 비탈진 밭은 너무 힘들다. 잘못하면 쓰러질 염려가 있어 시간도 더 걸리고 밭도 썩 좋게 갈리지 않는다.

    소로 쟁기질을 하면 경운기처럼 기름이 드는 것도 없고 망가져서 고쳐야 할 일도 없고 다 쓰고 나면 쓸모없는 고철덩어리가 될 일도 없다. 소는 지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힘도 덜 들뿐 아니라 똥을 내주어 거름도 되고 나중엔 돈 받고 내다 팔 수도 있다. 일석 삼조나 된다.

    다만 문제는 소를 훈련시키는 일이다. 장정 두 명이 앞에서는 끌고 뒤에서는 쟁기 운전을 하며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힘없는 여성이 와서 소 쟁기질은커녕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힘 좋은 남정네가 귀농하면 모를까 힘없는 여자를 보낸다니 누가 반갑겠어요. 괜히 일만 생기지.”

    본인 앞에서 웃으며 말씀하시는 게 본심은 말과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워낙 여자일 남자일 가리지 않는 분이고 힘은 약해도 지혜가 있어 혼자서도 남정네 일을 해내고야 마는 분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에 찾아뵙기 전에 좋은 사람 소개해주어 매우 고마워한다는 말도 들었던 참이었다.

    “선생님이 3년만 젊었어도 더 많은 걸 배울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70이 다 되셨으니 점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좀더 일찍 귀농할 걸 그랬어요. 그래도 올 겨울엔 선생님을 독촉해서 소 쟁기질 훈련을 꼭 배울 겁니다. 나도 내년부터 소로 밭을 갈아야지요.”

    아무리 어린 소를 훈련시킨다지만 여자가 앞에서 끌고 노인네가 뒤에서 쟁기를 밀고 가는 장면을 떠올리니 허허 웃으면서도 씁쓸한 마음 지워지지 않는다.

    S님 밭엘 가보았다. 친정 집 식구들 온 것처럼 즐거워하시는 님이 자랑스럽게 당신 밭을 구경시켜준다. 고추며 들깨며 배추며 이것저것 심으신 게 아마추어 솜씨 이상이다. 10평 농사짓다 400평가량 농사를 지으니 제법 농꾼 티가 밭에서 드러난다.

    역시 기대된 것은 똥으로 농사지은 배추였다. 혼자 사시니 받을 수 있는 양이 적어 400평 밭을 다 감당하기 힘들다. 정성껏 모아 만든 똥거름 배추는 따로 모셔져 있었다. 때깔을 보면 돈 주고 산 깻묵 거름으로 키운 것에 비해 약간 거름기가 모자란 듯하지만 기세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맛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김장 담가보면 금방 드러날 일이다.

    바람들이 농장에 똥 받아오는 회원이 네 명뿐이었는데 그 중 두 분이 올 초 귀농하여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똥 받아오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좀더 손쉬운 오줌 받아오라는 권유만 열심히 하고 있다. 가을 가뭄이 심각해 김장 작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한 방울의 물도 아쉬운 판이라, 물도 되고 거름도 되는 오줌이야 말로 요즘 같아선 금비(金肥)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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