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과 집중’의 어려움
    [낚시는 미친 짓이다⑧] <집중>
        2020년 07월 30일 10:3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낚시는 미친 짓이다 ] 붕어를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낚시꾼이라고 할까? 보통 꾼이라면 나쁜 의미가 많다. 사기꾼, 협잡꾼, 노름꾼 등등. 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변호사나 검사를 두고 법조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부와 스님, 목사님을 종교꾼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낚시인이라고 안 부르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도 낚시를 즐기지만 어떤 때는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 온갖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괴산에 신항저수지라는 곳이 있다. 신병훈련소라고 부르기도 하는, 참붕어가 잘 잡히는 곳이다. 작은 딸 은수가 초등학생 때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아이들도 제법 많이 잡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 관리인이 문제가 생겨 몇 달 동안인가 방치된 적이 있다. 그러자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결국 지금은 괴산시가 낚시를 금지시켜 버렸다. 내가 비록 돈을 내더라도 관리인이 있는 저수지를 즐겨 찾는 이유다. 물론 양심적인 낚시인들도 많다. 그들은 아예 낚시를 하기 전에 그 지역 쓰레기봉투를 사서 주변을 모두 청소하고 낚시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니 이제는 낚시인으로 불러 주시라.

    낚싯대를 많이 편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야가 있어야 한다. 하나 혹은 두 개를 펼 때의 집중력과 다른, 아주 다른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골고루 시선을 던지고,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너무 하나에만 집중하고, 외골수로 살아 온 건 아닐까? 세상의 아주 다양한 삶을 외면하고, 노동운동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만을 가지고 판단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단지 하나, 혹은 둘밖에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반면 하나 혹은 두 대를 펴면 집중력이 높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름대로 모두 장점이 있는 셈이다. 실제 낚시를 하다 보면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붕어들은 꼭 다른 일을 할 때 문다. 이건 낚시를 해 본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인정하는 얘기다. 다른 낚싯대의 미끼를 교체하거나 커피를 끓일 때, 혹은 옆 사람과 얘기를 하는 중에 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마치 물 안에서 낚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찌를 안 보고 다른 일을 하는 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CCTV라도 달아 놓은 것처럼 붕어가 속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집중력이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운동을 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너무 사업을 많이 벌이지 말고, 당시 정세에 맞는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잘 되는 경우는 거의 못 보았다. 노동조합이라는 특성상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현안이 생긴다. ‘집중과 선택’을 위해 과감하게 포기하기 어렵다. 내가 한번 방문했던 미국의 SEIU 노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그들은 노동자 조직화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매년 10만명씩 조합원을 증가시켰었다.

    올해 초 충북 매전지에 낚시를 갔을 때 그런 사람을 만났다. 거기는 살치 혹은 강준치(잘 구분이 안된다)라고 부르는 피라미보다 덩치가 큰, 그러나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물고기가 많았다. 맛도 없을뿐더러 그게 한번 붙으면 좀처럼 붕어 보기가 힘들어진다. 어떤 미끼를 달더라도, 심지어 옥수수 같은 딱딱한 미끼로 바꿔도 여지없이 달려든다. 심지어는 찌가 바닥에 닿기도 전부터 입질을 해 댄다. 문산에 있는 백학저수지도 그 편에 속한다. 강준치가 워낙 많아서 낚시를 포기할 정도다. 잡는 족족 건져내서 땅에 던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잡아서 바로 죽이는 경우인데 백학지는 그걸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날도 그놈이 달라붙었다. 그런데 같이 낚시를 온 한 사람이 그걸 달라고 하더니 잘라서 미끼로 썼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10분도 안 되어 대형 메기를 잡았다. 팔뚝만 한 크기의 자연산 메기였다. 그 사람은 당장 모든 채비를 메기 채비로 바꿨다. 붕어가 좋아할 떡밥 대신 육식 어종인 메기가 좋아할 살치, 닭 간 등을 미끼로 달았다. 물론 낚싯대도 길고 튼튼한 것으로, 바늘도 10호 이상의 큰 바늘로 바꿨다. 아예 그날은 메기만을 잡기로 작정한 셈이었다. 분명한 노선을 정하고, 선택을 한 셈이다. 그래도 붕어잡기를 좋아하는 나는 살치와의 전쟁을 치르다 결국 붕어는 얼굴도 구경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보다 폭넓은 안목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밖에 모르는 무지렁이로 살아 온 나 같은 사람에게 유익할 지도 모른다. 제일 좋은 것은 넓은 안목을 가지면서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운동을 하면서 일에 치이지 않고 집중하려면 중심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모든 일에 같은 가치와 같은 무게를 두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소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야 없는 것 아닌가? 버릴 것은 버려야 비로소 길이 보인다.

    <침묵연습> 8

    딱 한 번 마음 주더니
    너는 떠나 버렸다
    안 올 줄 알면서
    너를 기다리는 곳에
    잠자리 한 마리 졸고

    질 때를 알아야
    피울 때를 안다
    기다리지 않아도
    민들레 꽃 한 송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바람이 분다

    너를 만나 세상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고
    온도가 달라진다
    다시 바람이 분다

    <백학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에 있는 약 17만평의 평지형 저수지다. 1989년 까지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다가 1990년 낚시터로 조성되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낚시인들에게 큰사랑을 받는다. 운영하시는 분의 말은 떡밥을 바닐라 글루텐을 베이스로, 찐버거나 신장떡밥을 섞어 사용하면 강준치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워낙 경치와 물이 맑아서 일산에 살 때는 가끔 찾던 곳이다. 입어료는 2만 5천원이다. (전화 : 031-835-5470)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