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 혁신 울산에서 시작합니다”
        2006년 09월 30일 01:34 오후

    Print Friendly

    울산은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상징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 울산은 진보진영에게 깊은 회한과 끝모를 좌절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의 의원직 상실, 그리고 10월 보궐선거 패배에 이어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울산시장 선거 패배는 물론 8년간 지켜온 북구청장, 동구청장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어느 누구보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은 지방선거 이후 당내에 만연한 무기력증과 패배감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만들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광식 울산시당 위원장과 울산의 당원들이 지난 9월18일부터 보름간의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미FTA저지, 비정규직철폐, 당혁신을 위한 울산-서울 도보 천리대장정’도 그 일환이다. 울산에서 경주, 영천, 대구, 칠곡, 김천을 거쳐 옥천, 대전, 청주, 조치원, 천안을 지나 평택, 수원, 안양, 서울로 향하는 천리길이 이제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 김광식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
     

    “도보행진 초기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걸어서 서울까지 갈 거냐’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울산에서 걸어왔냐’고 합니다. 허허.”

    도보행진 12일차인 지난 29일 평택까지 올라온 김 위원장이 한 말이다. 왜 이런 대장정을 기획한 것일까.

    “우선 우리 민중의 삶을 옥죌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저지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내걸고 전국의 국민들을 만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하게는 침체돼 있는 당에 혁신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죠.”

    정강이와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걸어가는 김 위원장의 표정에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이만큼 달았어요” 하며 등산지팡이를 보여주는데 그동안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 평균 30~40킬로미터를 9시간 동안 걷는 강행군. 김광식 위원장은 이틀째 발의 인대가 늘어나 초기에 고생을 했다. 중간에 만난 한의사가 중단할 것을 권했지만 김 위원장은 개의치 않고 강행을 선택했다.

    “길에서 얻은 병은 길에서 낫는다잖아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계단이나 내리막길은 여전히 난코스다.

    이날은 울산 중구의 황세영, 홍인수, 권순정 의원과 박희승 북구 당원이 동행했다. 일정 중간중간에 울산의 당원들이 결합하고 도보행진단이 지나는 지역의 당원들도 함께 걷는다.

    가을햇살이 아직 따가운 낮 12시. 평택의 송북시장에 도달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유세를 했던 곳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미FTA반대를 위해서 울산에서 왔습니다. 걸어서 왔거든요. 민주노동당입니다.”

    “아이고, 고생하시네.”

    상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김을 굽던 한 아주머니는 ‘수고한다’며 김을 몇 장 전해줬다.

    “FTA 얘기하면 모르시는 분들도 많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주니 고맙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특히 농민분들은 한미FTA의 문제를 우리보다 더 절박하게 알고 계시더군요.”

    첫날부터 시작한 5명 중 한 명인 신미정 울산시당 총무국장의 말이다. 신 국장은 “시작할 때 보름동안 걸으면 ‘돈 안 들이고 살 빼는 거’라는 말이 있었는데 농민들, 상인들이 사과, 배, 포도, 순대 등 지역특산품을 계속 줘서 오히려 살이 찌고 있다”며 웃었다.

    오후 1시 점심식사를 위해 진위역 앞에 있는 평택경찰서 진위지구대(파출소) 안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로 미리 도착한 김성규 시당 노동국장이 식사를 마련했다.

       
    ▲ 점심식사를 나누는 도보행진단.
     

    파출소장이 나와 “고생 많으시다”며 인사를 한다. “좋은 일 하시는데요. 뭐. 이 앞으로 많이들 올라가십니다. 편히 쉬시다 가세요.” 뜻밖의 환대다.

    경찰관이 사다준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다시 행진이 시작됐다. 1번국도. 오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때로는 인적 없이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국도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대장정에서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오면서 시도당, 지역위원회(민주노동당의 시군구 당원조직) 당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울산의 선거패배에 대한 원망과 질타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기대한 만큼 미워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보고 ‘이렇게 다시 출발한다니까 희망이 보인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김 위원장은 “울산이 그 동안 오만했고 투박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 겸손하게 반성하고, 이번 천리행진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만나는 당원들에게 강하게 심어줬다.

    “행진을 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밭일하는 농부들, 시장상인들, 농성장의 노동자들, 지역의 기층당원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김 위원장은 행진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가면 시당의 당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 계획이다. 천리행진에 대해 얘기도 들려주고 당 혁신을 위한 당원들의 목소리도 들어볼 생각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동네에서 아침에 청소부터 시작하면서 작은 데서부터 당 혁신을 시작할 겁니다.”

    헤어져야 할 오산역이 가까워졌다.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럼, 진보진영이 울산에 다시 희망을 가져봐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제가 희망을 만들어놓겠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이번 행진을 계기로 해서 꾸준히 당 혁신을 위한 사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당원교육, 간부교육도 활성화시킬 것입니다. 의원을 많이 당선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공직자들이 의정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오산역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김광식 위원장과 울산당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 위원장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진단은 30일 안양을 거쳐 1일 서울에 입성한 후 2일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만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울산으로 내려간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