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혁신안 토론회,
    ‘혁신위 무용론’ 등 쏟아져
    혁신 본질 아닌 ‘천원 당비’ 문제만 부각…메시지 없는 혁신안 비판도
        2020년 07월 29일 03: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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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28일 혁신안 초안을 놓고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혁신안의 미흡함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토론회 참석자들 일부는 기존 리더십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혁신위를 통한 혁신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기존 리더십의 실패를 인정하고, 당의 기존 질서와 체질을 바꿀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정의당 혁신위는 이날 오후 7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혁신, 이렇게 한 걸음 더’라는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고 7가지 제안이 담긴 혁신위 초안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전개했다. 토론회엔 이정미 전 대표와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이기중 관악구의원, 박충일 경북도당 사무처장,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이 참석했다.

    혁신위는 지난 19일 출범 57일 만에 혁신안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엔 ▲2021년 상반기까지 강령 개정 ▲조직혁신 TF와 젠더폭력신고 및 대응 핫라인 설치 ▲당비 1천원으로 인하와 당원 교육 확대, 기관지 도입 ▲원내·외와 중앙당과 지역당부의 통합적인 정치활동 기획, 지역정치 활동 강화 ▲대의원대회 권한 강화 및 전국위원회 폐지와 중앙(운영)위원회 신설 ▲현행 상무집행위원회 폐지와 대표단 회의 신설 ▲청소년 당권보장 및 정치활동 활성화, 청년정의당 건설 추진 등이 담겼다.

    혁신위 혁신안 공개 토론회 유튜브 화면 캡처

    혁신안 토론회에서 나온 혁신위 무용론
    이기중 “기존 리더십과 노선에 대한 실패 인정 안하면 혁신 불가능”

    혁신안 초안이 나온 직후 당 안팎에선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두 달 가까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원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내용이 “고작 이 정도냐”는 거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선 혁신위라는 기구 자체의 구성과 권한을 생각하면 이 이상의 혁신안이 나오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위 자체가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만한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미 전 대표는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이 모여서 정해진 시한 내에 얼마나 더 좋은 초안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의문”이라며 “과거에도 수많은 혁신안이 나왔지만 차기 지도부가 이를 제대로 이행한 경험이 없다. (혁신안을 책임있게 이행할)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 얘기해봐야 소용없다. 낡은 것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권력을 쥔 사람이 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말했다.

    이기중 관악구의원도 “혁신위원 18명 중 누구 한 명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혁신안을 써보라 했어도 현재 나온 초안보단 나았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 구의원은 “총선에 실패했고 지도부 책임지고 사퇴할 수 있지만 임기 단축과 질서 있는 퇴각은 말이 안 된다”며 “혁신은 기존 리더십과 노선의 실패를 인정할 때, 이것을 갈아엎어야겠다는 동의가 있을 때 시작될 수 있는데, 우리 당은 기존 노선과 리더십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애써 회피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혁신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위는 출범부터가 여러모로 한계를 노정한 상황이었고 그것은 혁신위원들의 잘못은 아니다”라며 “현재로선 이 정도의 방향설정이 필요하다는 선언, 차기 지도부 등 조직 체계에 관한 간략한 정비만 가능하다. 이후 차기 지도부 선거에서 당의 혁신방향에 관한 것들이 치열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혁신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혁신의 과제를 차기 지도부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들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김병권 소장은 “차기 지도부 들어오면 혁신안이 이행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는 혁신의 내용을 당원에게 전달해주기 위함”이라며 “당원이 당의 혁신에 대한 방안을 알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민하지 않은 채로 당의 강령을 바꾸는 것은 당원들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당의 리더십이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8명의 혁신위원으로 이뤄진 구성과 운영 방식이 오히려 선명하지 못한 혁신안을 도출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전 대표는 “혁신안이 맹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혁신위원 18명이 합의해서 단일안을 내려다보니 다 양보하고 방향성은 희미해졌다”고 진단했다.

    이 구의원은 “비상한 시기에 지도부의 공백을 메울 비대위원장을 뽑고 위원장의 구상을 집행할 사람들로 혁신위를 꾸리고 거기서 혁신안을 만들고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우리 당은 지도부는 그대로 있고 혁신위만 출범했다”며 “혁신위는 2주 동안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당원을 만났는데 이런 방식이 성공하려면 5만 명 이상의 당원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데, 그런 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런 식의 혁신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8명이 모여서 이 안에서 위계질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평적 구조에서 합의하려다 보니 위원장 권한도 물음표이고, 위원회 권위도 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민주주의는 느리고 최소한의 변화만을 만들 수 있다. 정당 내에서 꼭 그런 민주주의가 바로 작동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용 없이 강령 개정 권고…
    김병권 “메시지 없는 혁신안, 당원들을 흔들 정도의 강령 개정 필요”

    혁신위는 초안에서 ‘2021년 상반기까지 강령을 개정할 것을 차기 지도부에 권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강령의 내용과 방향성과 내용 등에 대해선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김병권 소장은 “(비당원인) 국민들에게 정의당의 변화한 모습에 대한 메시지가 빠져 있다”며 “국민이 관심 갖는다면 당의 정체성과 강령과 진로, 의제에 관한 문제일 텐데 ‘강령 개정하자’로 끝나는 게 적절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들은 정의당에 ‘정의당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끝없이 질문하고 있는데 여기에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기후위기, 미투, 코로나19가 드러낸 불안정 노동 등 2015년(현 강령 제정시점) 이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정의당은 과거의 종합이 아니라 십년 후의 미래를 선취하고 국민에게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어야 한다”며 “그런 논의들이 정제되지 않았어도 국민 앞에 내놓고 대화할 때 국민은 거대정당이 후져서 정의당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정의당이 좋아서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당원들은 기존 강령에 호감을 갖고 있는 당원들도 형성돼있다. 기존의 강령과 전략방향 트는 순간 당원들과의 격한 토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탈당과 입당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당원이 흔들릴 정도의 강령 개정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강령 개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강령을 바탕으로 한 당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기중 구의원도 “혁신위의 강령 개정 권고가 당의 정체성 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의였을 텐데 ‘강령개정 권고’ 한 줄로 끝났다”며 “특히 내년 상반기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가 있다. 준대선 수준의 선거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상반기에 강령 개정 권고한다’는 말은 농담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강령 개정이 당의 정체성을 변화하는 데에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오히려 당면한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과 정책 비전이 혁신에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구의원은 “강령 개정 과정에서 ‘무슨 무슨 주의’라는 말을 강령에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로 극한 대립이 벌어지고 대규모 탈당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나. 이런 선언적 문구를 가지고 싸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강령 개정으로 당이 지향하는 비전이나 대변하는 사람을 명확히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의당의 정체성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조국사태다. 그것을 당의 강령에 ‘우리는 민주당 2중대 안할 것’이라고 담을 순 없지 않나. 강령과 전략 전술, 정책의 레벨을 혼동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과 비전은 강령보단, 새로운 리더십의 형성과정과 정치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류호정 의원의 페이스북 글이 혁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정미 전 대표도 당면한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래의 혁신을 준비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비판을 내놨다. 이 전 대표는 “혁신은 나중에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며 “정의연 사태가 터졌을 때 당은 왜 적극적인 입장을 내지 못했는지가 안타깝다. 현재 상황에서 침묵하면서 나중에 혁신안 나오면 혁신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천원 당비’가 당의 혁신일까

    혁신위가 초안을 발표한 후 언론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지점은 현행 당비 1만원을 1천원으로 내리는 방안이다. 1만원 당비가 당원 가입의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어 당원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당비 인하가 당원 수 확보의 필수요건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도 초안에 함께 담겼다.

    토론회에서 당비 문제에 관한 언급은 많지 않았다. 혁신안의 최대 쟁점처럼 부각된 천원 당비가 당의 근본적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엔 큰 이견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그간 당 지도부가 논쟁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당내 이견을 제대로 정리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당원의 스펙트럼만 더 넓히는 것은 당내에 더 큰 논란만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기중 구의원은 “혁신위 초안이 나온 날 언론에서 모두 ‘천원 당원’ 얘기를 했다. 문서 전체에 제목으로 뽑을 만한 새로운 지점이 없기 때문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천원 당원 문제가 기사 제목으로 뽑힌 것”이라며 “천원 당원이 혁신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정미 전 대표는 “(특정 현안에 있어서) 당원들이 정의당 안에서 정의당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한 번쯤은 조민하게 만들자는 게 천원 당비의 취지라고 생각한다”며 “이게 당권의 문제로 가서 ‘천원 당원이 당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 하는데 그 문제는 당권 당원과 지지 당원 분리하면 된다”고 당비 인하에 찬성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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