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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듐 걸스’ 비극의 코미디
    인간·기업의 환경오염 희생자들 추모
    [그림책 이야기] 『야광 시계의 비밀』 (하이진(지은이) / 북극곰)
        2020년 07월 27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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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라듀모 시계회사

    미국 라듀모 시계회사에는 여러 친구가 일하고 있습니다. 슈슈와 친구들은 야광 물감을 붓에 찍어서 입술로 붓끝을 뾰족하게 만듭니다. 그다음 크고 작은 시계 판에 야광 색을 칠하는 일을 합니다. 슈슈와 친구들이 만든 야광 시계는 어둠 속에서 아주 환하게 빛났습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슈슈와 친구들은 숨바꼭질하며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슈슈와 친구들은 언제나 숨바꼭질을 하지요. 그런데 슈슈와 친구들은 숨기도 너무나 잘 숨습니다. 그래서 술래인 감독관 아저씨를 늘 애타게 만듭니다. 봄, 여름, 가을… 계절이 바뀌어도 숨바꼭질은 언제나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던 독자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분명 배경이 미국이었는데 봄에는 일본으로, 여름에는 인도로, 가을에는 영국으로 배경이 바뀝니다. 게다가 술래인 감독관 아저씨는 슈슈와 친구들을 한 번도 못 찾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슈슈와 친구들이 단체로 해외여행이라도 떠난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일본과 인도와 영국은 또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감독관 아저씨는 언제쯤 슈슈와 친구들을 찾고 술래에서 벗어날까요? 무엇보다 야광 시계의 비밀은 또 무엇일까요? 그림책 『야광 시계의 비밀』은 보면 볼수록 궁금해지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책입니다.

    라듐 걸스

    그림책 『야광 시계의 비밀』은 ‘라듐 걸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라듐 걸스’는 누구일까요? ‘라듐 걸스’는 20세기 초 미국 뉴저지주 ‘라듐 루미너스 머티리얼스 코퍼레이션(이후 미국 라듐 회사)’에서 일하던 중 방사성 물질인 라듐에 피폭되어 희생된 여성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당시 시계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크고 작은 시계 판에 섬세하게 야광 색을 덧칠하는 일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라듐이 주원료인 야광 페인트에 붓을 찍은 다음 입으로 붓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시계 판에 야광 색을 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엄청난 양의 라듐에 피폭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라듐이 얼마나 무서운 방사성 물질인지를 몰랐습니다. 오히려 라듐이 몸에 좋다는 잘못된 인식마저 갖고 있었습니다. 라듐을 다루는 기업들이 라듐을 만지거나 먹으면 몸에 이롭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라듐이 암세포를 파괴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라듐 버터, 라듐 치약, 라듐 우유까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라듐을 주원료로 만든 형광 페인트 ‘언다크’의 발명가이자 라듐 루미너스의 공동창업자인 사빈 폰 소초기는 이미 라듐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라듐 때문에 집게손가락 일부를 잃었으니까요. 하지만 자기 회사에 다니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1923년부터 의문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생겨났습니다. 1925년 ‘라듐 걸스’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4년에 걸친 공방 끝에 1939년 승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사이 50여 명이 넘는 라듐 걸스가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 ‘라듐 걸스’의 희생은 세계적으로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알렸습니다. 더불어 미국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야광 시계의 비밀』의 비밀

    하지만 그림책 『야광 시계의 비밀』의 진짜 비밀은 ‘라듐 걸스’가 아닙니다. 하이진 작가의 『야광 시계의 비밀』은 미국 라듐 회사의 ‘라듐 걸스’에 대한 진혼과 위로를 넘어 인간과 기업이 저지른 모든 환경오염과 산업재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슈슈와 친구들의 숨바꼭질은 미국의 라듐 회사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봄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었던 일본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름에는 보팔 가스 누출 사고가 있었던 인도로 가고 가을에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으로 옮겨 갑니다. 슈슈와 친구들은 겨울에는 또 어디로 자리를 옮겨서 숨바꼭질할까요?

    인생은 아름다워

    하이진 작가의 그림책 『야광 시계의 비밀』은 ‘라듐 걸스’라는 비극을 소재로 삼은 코미디라는 점에서 논란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인생은 아름다워>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코미디라는 점에서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영화<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 조슈에를 위해 끝까지 유머와 기지를 발휘했던 아버지 귀도에게 연민을 느꼈고 감동했습니다. 이제 그림책 『야광 시계의 비밀』을 본 독자들 또한 슈슈와 친구들의 천진난만한 숨바꼭질에 연민을 느끼고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귀도와 슈슈에게 경의를 표하게 될 겁니다. 본디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필자소개
    이루리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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