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유니폼을 입히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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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8일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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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어느 밥집에 9명의 젊은 여성들이 유니폼에 관한 수다를 떨었다. 이들은 모두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편집자 주>

    여성들에게 편한 옷? 남성에게 보이는 옷!

    사회 김은아 (이하 김) – 유니폼 얘기 해보려고요.

    브리짓(이하 브) – ‘유니폼’ 하면 나이 어리고, 직급 낮고, 보조자, 이런 이미지가 떠올라요.

    소소한 몽상(이하 소) – 유니폼을 ‘입힌다’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강제적인 옷이라는 거죠.

    프란체스카(이하 프) – 고객들도 유니폼 입고 있는 직원을 은연중에 하대해요. ‘유니폼 입으면 말단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실제 직급이 없거나, 젤 아래 직급이 입잖아요.

    꼬마마녀(이하 꼬) – 90년대에는 유니폼 선정할 때 여직원들이 입고 남자 심사위원들한테 선보였어요. 강당에 모여서, 날씬한 여성들이 새로운 디자인 입고 한바퀴 돌고 그랬지.

    뚜비(이하 뚜) – 우린 그 정도는 아니었고.. 여직원들이 투표해서 골랐어요. 어떤 옷을 입을까는 여직원들이 결정할 수 있었죠.

    꼬 – 젤 황당한 건, 여직원들이 투표를 해도 결국 사장님이 고른 스타일이 간택됐다는 거.

    업무와 무관한 꽉 끼는 상하의

    김 – 증권사 업무에 유니폼이 필요한가요? 유니폼 얘기하면 스튜어디스 빗대어 얘기도 많이 하던데.

    딸기쨈(이하 딸) – 승무원 유니폼은 손님과 구별하기 위해서 입는 거죠. 긴박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승객을 통제해야 할 역할도 있고요.

    프 – 남성들이 유니폼 말할 때 항공사 여승무원을 예로 드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적 환타지야.

    딸 – 좁은 좌석 사이를 짧은 치마 입고 돌아다니고, 음식도 나르고 그러면 무지 불편할 것 같아.

    꼬 – 증권회사 얘기는 아니지만, 임신한 여성한테, ‘유니폼이 이쁘지 않으니까 그만두라’고 한 일도 있어요. 유니폼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지.

    딸 – 서비스 업무, 금융기관, 고객응대 업무 이런 것 때문에 필요하다고들 하죠.

    소 – 고객응대 업무에 유니폼이 필요하다는 건 편견이에요. 오히려 상냥한 표정, 다소곳한 몸가짐 이런 걸 원하니까, 그런 옷을 입히고 싶은 거 아닐까?

    비혼천사(이하 비) – 여직원들은 업무시간에 잠깐 외출해도 불편해요. 길거리 다녀도 여직원인줄 다 알고, 지방 같은 데는 어느 회사 사람인지까지 알 수 있어요.

    심청이(이하 심) – 본사에는 영업부만 입거든요. 다른 부서 가거나 엘리베이터 앞에 있으면 저기서부터 불러요. ‘어이, 영업부~’ 이것저것 시키고, 물어보고. 유니폼 입고 있으면 영업부 여직원이라는 게 확실히 부각되죠.

    양복과 유니폼은 같은가?

    프 – 우리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한 부서에서 회사에 남성 유니폼에 관한 질의를 한 적이 있어요.

    브 – 회사는 구성원들의 통일적이고 전문적인 이미지 때문에 입어야 한다잖아. 이미지 제고하려면, 남성들도 유니폼을 착용해야 논리에 맞네.

    프 – 회사 답변은 남성에게 유니폼을 착용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죠. 첫번째 이유는 경비가 많이 들어서 이고, 두번째 이유는 영업 시 적절치 않다는 거죠.

    딸 – 유니폼은 낮은 직급의 여성이 입는 건데, 회사 입장에서 남성들한테 입혀가지고 이미지 구길 일이 없는 거겠죠.

    브 – 남성들에게도 양복이 억압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성들이 유니폼 입는 것에 대해 남직원들이 "우리도 양복 입어" 라고 말하면, 본질을 벗어나는 거지.

    뚜 – 남자들 유니폼 중 대표적인 게 군복이잖아요. 군복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고, 통일과 통제의 이미지가 강해요. 하지만 양복은 다르죠. 사무직, 화이트칼라 그런 이미지…

    꼬 –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남성들도 두발에 대한 규제도 있는 거고, 긴 머리, 염색, 파마, 귀걸이 이런 거 하기 힘들잖아요.

    소 – 여름에 넥타이, 긴팔 와이셔츠. 되게 더울 텐데, 남성들도 회사가 통제하는 거죠’

    ‘옷이 이게 뭐니…’ 여성의 부적절한 사복이 문제 ?

       
      ▲ 케세이패시픽 항공사의 유니폼패션쇼(사진=연합뉴스)  

    김 – 여성들이 니트, 파인 옷 등 적절치 못한 사복을 입어서, 유니폼이 필요하다고도 해요. 여성들도 유니폼이 편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딸 –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편한 면도 있죠. 하지만 잃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농협이나 우체국 가보면 나이 많은 여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하나도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뚜 – 우리는 유니폼 없앴다가, 한동안 ‘다시 입자’ 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 통제가 심해지니까.

    비 – 직무에 적합한 의상을 갖출 필요는 있다고 봐요. 동료나 고객이 보기에 깔끔해 보이는 의상이면 되는 거 아닌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복장 하나 하나 간섭하는 건 자존심 상하죠

    뚜 – 말나오고 간섭받으니까 차라리 유니폼을 입는게 낫겠다… 그런 의견이 나왔던 거죠. 다시 설문조사를 했는데 안 입는 쪽으로 결정되었어요.

    소 – 사복이 금전적 부담은 되죠.

    뚜 – 여성의 옷 색상과 디자인은 다양하죠. 요즘은 남성들 의상도 다양해지기는 하지만… 왜 특성을 받아들일 수 없고 통일해야 하는 건지. 차이를 인정 안하는 문화가 문제예요.

    소 – 회사 입장에서는 관리해야 되니까 획일화 되어야 통제하기 쉽고, 엄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원할 거 같아요. 그런 이미지는 유니폼이 짱이죠.

    옷차림이 그 사람을 말해주기까지…

    김 – 처음 유니폼을 입었을 때 어땠어요?

    심 – 어렸을 때는 멋져보였어요. 첫 입사 때 유니폼이 빨리 나오기를 바랬는데. 어수룩한 정장보다는 유니폼이 좋아보였죠.

    소 – 본사로 와서 유니폼 안 입은 지 6개월 되었어요. 다시 입고 싶지는 않아요.

    비 – 유니폼이 불편했지만 입사 때부터 입었기 때문에, 안 입겠다는 의사표현을 할 생각은 못해봤어요.

    꼬 – 나도 사회생활 초반에는 유니폼이 멋있다고 생각했어. 금융회사 다닌다는 특별한 의미도 있는 거 같고. 근데 시간이 갈수록 친구 만날 때 유니폼을 입고 밥 먹으러 가고 그러면 창피하더라고.

    소 – 전에 다니던 증권회사에서 대졸공채로 같이 들어갔는데,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는 유니폼을 입었어요. 상당히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빴어요. 유니폼을 입으니까 같이 입사했어도 왠지 낮아 보여서…

    뚜 – 팀장 되면 안 입고, 본사에서는 안 입고 그러다가 지점 발령 나면 다시 입게 되고. 안 입다가 입으면 차별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게 되는거죠.

    비 – 관리업무 하다가 영업할 때 유니폼 안 입으니까, 되게 편하더라고. 유니폼은 꽉 껴서 불편하고, 매일 같은 옷 입으니까 구겨지고. 사이즈 하나 가지고 2년 입으니까 후크 뜯어지고, 난감하고 짜증나는 옷이야.

    심 – 영업점에서는 유니폼 착용이 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요. 서로 문제점에 대해 말해보면, 인식도 달라질 것 같아요.

    은행계 지주회사들 유니폼 등 보수화 주도

    김 – IMF때쯤 유니폼이 많이 없어졌었잖아요? 여직원회를 중심으로 유니폼 폐지 움직임도 있었고.

    뚜 – 유니폼이 IMF 전후 없어진 이유는 비용절감의 속셈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로는 전문성을 강조했죠. 여성들도 공감했고.

    소 – 지주사 전환 후 기업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시대를 역행한다는 생각이 들어. 유니폼 폐지한지가 언젠데. 다시 입으라는 거야.

    꼬 – 은행계 지주회사들이 정말 보수적인 거 같아요. 하나금융지주가 계열사 유니폼 통일한다며 유니폼 부활 시도하고.

    심 – 우리증권도 합병하면서 유니폼이 부활했고, 남직원들도 감색 양복만 입으라고 한다던데요.

    꼬 – 굿모닝은 예전에는 남성들도 본사는 사복을 입었는데, 신한지주로 편입하고 합병하자 양복으로 바뀌었어요. 요즘 다시 여름에는 노타이 하고 있는데…

    소 – 유니폼에 대한 찬성 의견을 가진 분들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유니폼이 없어졌는데도, 일부 지점에서는 지점차원의 유니폼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고.

    프 – 유니폼 때문에 고민하다가,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CS모니터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 지켜본다. 유니폼 똑바로 입어.

    프 – 모니터 요원들이 지점 돌면서 평가하는데 외적인 면을 위주로 평가하거든요. 결과가 영업점 평가에 반영되니까 당연히 여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그래서 지점 자체적으로 유니폼을 맞추더라니까요.

    브 – 옷차림, 화장, 머리모양을 꼬치꼬치 문제 삼으니까 스트레스도 그만큼 가중되고. CS라는 명목을 빌어서 우회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거에요.

    꼬 – 초등학교 때 손톱검사, 가방검사 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브 – 예전에는 아르바이트생을 사서 숨어서 체크도 했다던데. 그 내용 중 제일 유치했다고 생각되는 건 ‘눈빛이 이상하다. 립스틱이 진하다’ 결과적으로는 여자는 용모가 이상하다, 남자는 자리를 비웠다 이런 내용이죠.

    딸 – 요즘 대한항공 유니폼 광고를 보면 여자들이 패션쇼 하듯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옷이 더 슬림 해져서 직원들로 하여금 살을 빼게끔 한대요. 유니폼이 몸도 통제하는 거죠.

    소 – 예전엔 회사가 스타킹 색까지도 지정했어요.

    프 – 지금도 그래요. 하나지주는 유니폼 착용지침이 공시되어서 사내게시판에 사진도 올라와 있어. 신발도 규정이 있어서 앞뒤 다 뚫리면 안 되고, 살색 스타킹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소 – CS(고객만족)교육에서 하는 말이 "머리 묶어라, 립스틱 색 바꿔라, 화장 더 진하게 해라." 등등이에요. CS교육이면 상담 스킬이라던가 고객별 응대방법 같은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옷이 날개? 비상(飛上)은 커녕, 추락이라도 안하면…

    브 – 처음 다녔던 데가 직군제 있던 증권사였어요. 신입대졸공채 같이 됐는데 남자는 브로커, 여자는 텔러 하라고 그랬죠. 여직원은 무조건 유니폼을 맞추게 하더라고요. 우리 여자동기들끼리 단합하여 유니폼착용을 거부했었어요. 선배들은 입고 있는데 신입들은 다 안 입었었죠.

    심 – 멋지다!

    브 – 지금 직장은 남녀간 업무 구분이 없는 상태인데. 지주사 편입이후 들리는 말이 여직원을 계약직화 한다는 말이었어요. 지금 유니폼을 다시 착용시키겠다고 하니까 자꾸 여직원 계약직화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프 – 맞아. 유니폼을 다시 입힌다는 건 여직원을 낮은 직급, 단순화, 계약직화로 하기 위한 음모 같아. 우울해요

    비 – 지점 인원도 줄어들고 해서 직무영역 자체도 넓어지고 직원개개인의 업무능력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관리직 업무는 무시해요.

    꼬 – 나도 영업하지만. 브로커가 관리업무에 비해 꼭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업무는 아닌 것 같아. 영업은 바로 실적 나오고 돈을 얼마 벌었는지 확인되니까 생산적인 일이라고 평가되고. 관리업무는 바로 돈이 안 되니까 임금 적게 주고 비정규로 하려는 거지.

    심 – 신입사원 때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좋은 게 좋은 거구. 튀기도 싫고. 부당한 경우를 당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싸우기도 싫고. 흠…

    브 – 유니폼 다시 입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해. 사기저하, 의욕상실이야, 과장 조금 보태면 유니폼 때문에 사직할지도 몰라.

    심 –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는데, 유니폼이 내 날개라면 너무 싫어. 날기는커녕 추락 할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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