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 그리고 어떤 자멸들,
    박원순 죽음 이후를 보며
        2020년 07월 16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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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의 여론은 또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각자의 소회와 느낌은 강하고 진하다. 이념지향, 지역, 세대별로 그 나뉨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이 사태, 박원순 죽음 이후의 사태에 대해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공유할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다. 다른 색깔의 의미 있는 글들이나 기고에도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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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세대에게는 기성의 질서나 권력을 존숭해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습니다. 과거의 업적이 아무리 훌륭해도 존중은 오직 현재의 모습과 역할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파괴적 생성 기능이겠죠.

    만약 새 세대와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무가 있다면, 오히려 낡은 모든 것을 경멸하며 ’자기 세대의 봉기’를 조직하고 수행해나가는 것이겠죠. 정의당의 젊은 의원들과 ‘혁신’을 지지합니다. 그들이 실낱 같은 ‘새로운 희망’ 아닌가요.

    늙은 ‘진보’와 ‘민주화’는 이제 뒤로 물러나고 생각이든 자리든 뭐든 다 양보해야 합니다. 당대표가 ‘호로OO’를 입에 올렸을 때, ‘시인’이 젊은 여성 의원의 악의적인 사진을 올리고 ‘구상유취’ 운운했을 때, ‘ 역사학자’가 정말 안드로메다에서 온 듯한 궤변을 올렸을 때, 또 이런저런 음모설과 ‘도덕적 순결주의’ 운운하는 말들에, 또 그런 데 광적인 ‘좋아요’를 누르며 ‘애도’라는 것을 소리 높여 행할 때…… 586과 70년대 학번들이 마치 일종의 집단 순사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말들은 그들에게는 이 비극적 사태를 제대로 감당하여 정당하게 해석하고 대처할 언어가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 같았습니다.

    우리/그들은 과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고 박원순 시장은 소위 ‘민중에서 시민으로’(feat. 최장집)의 시대, 90년대 이후 중산층/시민/운동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실로 많은 업적과 동지를 가졌던 박원순 자기 자신에게나 남은 이들에게나 너무나 아프고 무책임한 그 자살은, 분명 어떤 상징입니다. 그 죽음이 폐허, 아니 가루가 되다시피한 ‘진보’와 ‘(시민)운동’의 상징 자체거나 그것을 증폭하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조국 사태’로부터 정의연을 거쳐 지금껏, 그 ‘시민’과 그 ‘민주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맞았다 보이지만, 이 위기 이후를 어떤 운동과 주체가 채울지는 잘 안 보입니다.

    저 자멸과 전환은 각이 날카로워 심상정 의원 같은 이나 또 다른 신뢰할 만했던 박원순 세대의 어떤 이들이라도 뒤안길로 내쳐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7080들이 할 일은 자기 시대의 가치와 주체의 몰락과 자멸을 슬퍼하고, 성찰하고, 극도로 자제하는 일일 겁니다. 침묵이 증오와 비참을 그나마 줄이고, 그보다는, 결국 또 얼마 되지 않아 또 죽음을 피치 못할 우리 가련한 영혼을 더 비루하게 만들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겠죠.

    시대정신에 정말 민감하다면 여성주의와 젊은 정치인들의 등장을, 그들의 ‘어긋남’과 ‘저항’을 환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바로 그들이야말로 우리 7080들의 영혼과 생활과 친구들이 망하고 타락하지 않은 때에 행한 어떤 일들이 자기도 모르게 거름 한 줌으로 쓰인 건지도 모르니까요. 고 박원순 시장 본인이 그렇듯이요.

    필자소개
    성균관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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