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의 혁신,
    발목 잡는 이는 누구인가
    [기자수첩] 두 장면과 대표의 사과
        2020년 07월 14일 06: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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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두 개의 장면은 정의당이 혁신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첫 번째 장면은 비서 성폭력 혐의로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모친의 빈소를 가득 채운 정치인들을 비판한 것이다. 안 전 지사 모친의 빈소에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과 그들이 보낸 조화가 가득한 모습에 대해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2차 가해 앞에 피해자는 여전히 일상에서의 힘겨움을 겪고 있다”며 “(정치인의 조문 행렬이) ‘성폭력에도 지지 않는 정치권의 연대’로 비춰지진 않을지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이른바 ‘조문 정치’를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대외적으로 확인시킨 성범죄자와 그와 연대하는 중년 정치인들은 비판한 원내 정당은 정의당이 유일했다.

    두 번째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달리한 후, 일부 정의당 초선 비례대표 의원들이 조문 거부를 선언한 장면이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는 피해자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의 정치인들은 박 시장을 애도하고 추모만 했다. 추모의 거대한 물결 속에 4년간의 성추행 피해를 말한 고소인의 목소리는 지워졌고, 더 나아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류호정·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피해자를 향해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두 의원의 조문 거부 선언은, 성적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와의 연대를 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과거 당내 젠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당이 취해왔던 모호하고 불분명한 태도와는 상반된다. 이 두 장면이 혁신의 신호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다수에 눌려 감히 내기 어려운 목소리를 목청껏 낼 때, 기성정치의 문법으론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은, 여성들은, 소수자들은 감동한다. 그럴 때에 ‘나의 정당’이 이렇다, 자랑할 수 있다. 조혜민 대변인과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목소리는 정의당이 진보정당다운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누구나 명백하게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문제에만 입장을 내온 기성정당화된 정의당이, 어쩌면 새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였다.

    이 흥겨운 흐름을 발목 잡는 일이 벌어졌다. 심상정 대표는 “두 의원의 메시지가 유족분들과 시민들의 추모의 감정에 상처를 드렸다면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언론은 심 대표가 두 의원의 조문 거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당 대변인실은 “당 대표는 조문 거부 자체에 대해 사과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헤드라인 등이 대부분 그렇게 나가고 있다. 바로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소용없는 일이다. 어느 누가, 심 대표의 발언을 조문 자체에 대한 사과라고 보지 않을까. 공식 사과 표명 전 두 의원과 명확한 교감이 없었던 점은 더 큰 문제다. 당의 고질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그야말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조문을 거부한 두 정치인을 향해 “어린”, “똥오줌도 못 가리는”, “젖비린내 나는” 등의 청년 혐오적인 발언이 쏟아지고 있고, 차마 이 글에 옮기기 힘든 천박한 여성혐오적 표현도 넘쳐난다.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두 의원은 꿋꿋이 자신의 뜻을 지켜내고 있다. 옳다고 보기 때문일 거다.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당의 대표는 마치 ‘내 새끼 잘못 키운 죄’를 자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과했다. 청년, 여성 정치인을 이렇게나 뽑아놓고도 과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지금 진보정당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분에게 필요한 일은 누구도 부탁한 적 없는 사과가 아니다.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뜻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다. 그러려면 청년 여성 정치인을 ‘내 새끼’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 의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우선일 거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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