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의 정치투쟁, 최초 승자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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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7일 07: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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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마거릿 생어가 1914년 “여성이 주도적으로 임신과 출산여부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전까지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피임은 교육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고 임신은 여성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손에 놓여 있었습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많은 여성들은 혼자서 유산을 하려고 애쓰다가 죽어갔으며 아이를 낳았어도 그 아이들은 축복 받지 못한 채 버려졌습니다.

.1930년대 영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 피임법을 보면 체외사정과 콘돔, 자연주기법, 페서리 순이었습니다. 이 중 자연주기법은 실패율이 높았고 체외사정과 콘돔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남성의 ‘이해와 배려’를 구걸해야만 했지요.

피임법? "남편에게 지붕에 올라가 자라고 하시오" 비아냥

   
  ▲ 산아제한운동의 제창자 마가렛 생어

마거릿 생어는 간호사로 뉴욕의 빈민가에서 활동하면서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10명이 넘는 아이를 낳고 약해진 몸으로 40대에 사망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던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혼자 유산하려다 죽을 뻔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내를 치료하던 중에 “제발 다시 임신을 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애원을 듣게 되지만 간호사인 자신도 피임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고 의사는 "그렇다면 남편에게 지붕에 올라가 자라고 하시오"라고 비아냥 거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은 얼마 후 다시 혼자서 낙태를 감행하다 사망하게 됩니다. 여성이 자신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임신을 조절할 수 있는 피임법이 절실했지만 사회는 이를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국을 돌아다니며 피임법에 대해 공부하고 돌아온 마거릿 생어는 1914년『산아제한평론』을 발간했습니다. 그녀는 1914년 8월 피임법이 실린 잡지 <여성혁명>을 배포하면서 1873년 제정된 풍속교란방지법 음란출판물 간행 혐의로 기소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투쟁은 계속되었고, 결국 하나하나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 아내의 죽음과 간호사

1916년 10월6일 뉴욕에 첫 ‘산아제한 상담소’ 개소에 이어 1921년 미국산아제한연맹이 결성되었고 1927년에는 제1차 세계인구문제회의가 제네바에서 열리면서 보수적이었던 의학계도 점차 산아제한 운동에 참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39년에는 의사들에게 무제한으로 피임 처방권을 부여하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1960년 5월 9일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에노비스 10’이 승인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위대한 발명 중의 하나라는 경구용 피임약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코네티컷 주에서는 법적인 부부에게조차 피임약의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1968년 7월 독일 주간지 <콘크리트>는 ‘먹는 피임약을 사용할 자유를 달라’는 제목의 기사로 파문을 일으킵니다. 기사 내용 중에는 ‘미혼 여성에게 기꺼이 경구피임약을 처방할 의사들의 주소를 알려 달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편집실에 편지가 쇄도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습니다. 여성들이 좀더 자유롭게 피임약을 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경구용 피임약’ 엄청난 인기, 법으로는 판매금지

 

오랜 기간 룰렛 게임을 하듯이 자연주기법을 이용하고, 남성에게 피임법을 쓸 것을 애원하며 원치 않는 임신에 노출되어 있던 여성들이 투쟁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마침내 피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이 부여한 자손 번식의 의무를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 되었습니다. 성관계가 생식의 차원을 넘어 남녀 간 사랑을 확인하고 즐기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알약을 먹는 간편한 방식으로 여성들은 어머니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즉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애용된 피임법은 콘돔 착용, 체외사정 등 주로 남자가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었으나 이제 여성이 피임을 조절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수태조절은 한 세기 만에 여성의 평균 인생주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여성이 성생활을 하는 한 완경에 이르기까지 계속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시 되었으나 현대에는 특정 시기에 아이를 갖게 됩니다.

이전의 여성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임신-출산-육아에 소모한 것과는 달리 출산을 종료한 후 생식 의무에서 해방되어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국가가 뭔데? "낳아라 말아라, 통제하나"

   
  ▲ 70년대의 유명한 산아정책 포스터

근대 이후에는 출산의 통제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를 둘러싸고 정치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근대국가는 인구 통제의 한 방식으로 출산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출산 통제를 여성의 이슈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종교단체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내세워 낙태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 행위인 출산을 놓고 여러 세력들이 그 통제권을 전유하기 위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초의 승자는 국가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국가적으로 산아제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1968년 스웨덴이 덤핑 판매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경구용 피임약을 무료로 보급하고 각종 불임시술과 임신중절을 시술했습니다. 불임수술을 하면 공공주택 임대 우선권, 주택융자 우선권이 주어질 정도였습니다.

조형 교수(이화여대 사회학과)는 일부 농촌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피임용 자궁 내 고리(loop)를 이식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이웃이나 가족계획 요원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임신중절은 주된 피임수단으로 쓰였습니다.

남성 95%, 여성 80% 이상 혼전 성경험, 피임은 제자리 수준

남성의 95%, 여성의 80% 이상이 혼전 성경험이 있고(젝시인러브 20~30대 회원 2만명 대상 설문. 2005년) 성의식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위대한 발명이며 여성 해방을 주도한 경구피임약은 정확하게 복용하면 99% 높은 피임을 보장합니다. 경구용 피임약은 초기 에스트로겐 함량이 1정당 0.15mg에 달하여 ‘호르몬 폭탄’이라 불렸으며, 복용 시 각종 부작용을 동반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반세기 동안 에스트로겐 함량을 1정당 0.02mg까지 줄이며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되었지만 40년이 넘도록 한국 사회에서 입지를 넓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대생이 사랑에 빠져도 똑똑하게 챙길 것은 챙기자고 말하는 피임약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이 피임약에 가지고 있는 정서적 거부감은 상당합니다.

박금자 산부인과 전문의(피임연구회)에 말에 따르면 "심지어 낙태를 한 여성들에게 앞으로 피임약을 복용하라고 권하면 영구불임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피임은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출산 시기를 결정하는 권리이므로 이젠 낙태를 피임의 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일을 막아야 할 때다"라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피임’을 치면 온갖 정보가 쏟아지지만 피임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피임에 실패를 하고 임신이 되었을까를 상담하거나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묻는 글들도 그만큼 많은 걸 보게 됩니다.
100여 년 전 여성들은 끈질긴 투쟁으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쟁취했지만 국가가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피임을 강제한 후에 남은 기억과 상처 입은 몸은 4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피임을 위험한 것,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몸의 권리를 챙기세요. 피임을 꼬~옥 챙기세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임의 역사 속에 여성이 권리를 가지게 된지는 이제 겨우 100년 남짓입니다. 여성이 자신의 몸의 보호하고 출산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성의 삶과 인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우리는 언제쯤 투쟁으로 쟁취한 이 소중한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요? 피임하고 계시나요? 아니면 하실 계획이신가요? 어떤 피임법을 써야 할지 모르시겠다구요? 피임은 남자친구와 남편이 알아서 한다구요?

나의 몸과 건강을 지키는 일인데 언제까지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요. 이제 오랜 기간 빼앗겼던 우리의 권리를 제대로 찾아 누릴 때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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