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노동계급은 한 계급인가?
        2006년 09월 27일 07: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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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금속 사업장 노조들의 산별노조 전환 결정은 계급단결이라는 측면에서 전노협이나 민주노총의 출범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세계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산별노조운동이 한국에 도입되는데 왜 이리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인지, 그리고 그 지연으로 인해 어떤 일들이 있어 났는지,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오류가 무엇이었는지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최근 노경총 합의에 따라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가 ‘셋트’로 묶여 3년이 유예된 이후 산별 건설 움직임의 탄력이 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퇴행적이고 결국에는 노조운동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기업별 노조 의식의 문제점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1. 계급 분열의 세 가지 기원
    2. 기업노조 노선과 경제투쟁 노선
    3. 지도력의 문제, 문화의 문제

    노동조합은 시민사회의 토대이며, 민주주의의 척도다. 노동조합운동이 융성하다면 그 시민사회는 건강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주요 국가 중 최하위인 10%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율, 가장 민주적인 체하는 정부가 노동조합 사무실을 강제 폐쇄하는 상황이 한국 노동조합운동과 민주주의가 서 있는 지점이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60%,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의 50%라고 한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전두환의 군화발이 서슬 퍼렇던 시절, 100인 미만 소기업의 노동자들은 500명 이상 대기업의 99.1%를 벌었다.

       
     ▲ 비정규 노동자 투쟁

    우리 나라에서는 총소득 지니계수보다 근로소득 지니계수가 더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평균임금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세 배 차이가 난다.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북유럽 수준의 임금소득과 기업복지를 받고, 전체 노동자의 1/3쯤은 동남아 수준의 임금과 전태일 시절의 ‘불우이웃 돕기’를 받는다.

    “동지여 투쟁이다! 총단결!! 총파업!!!”을 외칠 때, 조합원 아닌 사람들이 피식 웃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착해서다. 대개의 역사에서, 21세기 한국 정도의 소득 격차와 복지 격차를 가진 사람들은 바리케이드 양편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소득이 아무리 차이가 나도, 같은 무산계급이라는 말 따위는 대학원생들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다.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차를 타고, 아이들을 다른 학원에 보내는 사람들이 계급의식을 공유하기는 어렵다. 주식투자하는 사람과 일수 찍는 사람은 같은 계급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 노동계급 양극화의 첫째 원인은 물론 자본 독점화다. 한국 재벌의 매출․영업이익․순이익․GDP 비중은 매년 늘어, 23개 대기업집단이 나라 경제의 절반 이상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지불능력’은 재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어느 경우에도 자본 독점화가 자연스레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국의 모든 정권은 재벌에 우호적인 금융․기술․노동력․영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법인세와 최고소득세율을 낮추고, 근로소득세는 예산 목표 이상으로 거두었다.

    1987년 이래의 민주화를 ‘자본의 자유’로 해석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 아래 노동조합 약화와 노동 유연화를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고 있는데, 결국 노동 유연화는 자구력이 없는 기업노조 외부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 독점화 – 노동 양극화 경향에 민주노조운동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열심히 투쟁했다는 자평은 필요 없다. 어떤 전략을 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냈는가 만이 역사에 남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택한 전략은 일관되게 기업노조와 경제투쟁이었다.

    기업노조 노선은 노동조합의 설립, 일상활동, 단체협약 성사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독점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근로조건이 양극화하는 데 일조했다. 돈 좀 버는 기업에서는 노조 만들기도 싸우기도 좋았고, 그렇지 못한 대개의 기업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노조의 78%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생기고 살아 남았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자본 독점화와 정치 자유화에 경제투쟁으로 대응한 유일한 노동운동이다. 머리띠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든, 언론에 어떤 요구사항을 내걸든 1980년 이래 모든 쟁의(쟁의발생 신고 기준)의 95%~99%는 단위 기업 노동조합원들의 경제이익 확대 여부에 의해서만 마무리되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비조합원의 임금이 대기업 조합원의 41%로 떨어지는 과정은 기업노조 경제투쟁의 20년 축적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기업노조와 경제투쟁이 의도적 선택인가, 불가피한 우회인가 하는 문제가 남지만,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기업노조의 경제투쟁은 자본 독점화, 정치 자유화와 호응한다. 그 세 가지는 모두 사회양극화를 향하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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