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발표에 정치권 왜 조용하지?
        2006년 09월 26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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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이 후분양제 도입을 발표한 당일 하루 종일 침묵하던 정치권이 다음 날인 26일 언론들의 비판 기사에 뒤늦게 입을 열었다. 조선일보나 경제지 등 일부 언론들은 26일 후분양제 도입을 크게 다루면서도 전날 시민단체들의 환영은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은 채, 후분양제가 실제 분양가를 낮추는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도 슬며시 이 비판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다.

    경제지 등 일부언론 후분양제 공격, 여당도 슬며시 동참

       
      ▲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은 25일 최근 은평 뉴타운의 고분양가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후분양제를 전격 도입해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오 시장은 “은평 뉴타운을 포함해 서울시가 건설·공급하는 모든 공공아파트에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이후 분양하는 후분양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분양가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 등 시민이 참여하는 ‘아파트 분양가 심의위원’ 설치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분양될 예정이던 은평 뉴타운 1지구의 분양이 내년 9~10월로 1년 정도 뒤로 늦춰졌다.

    아파트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도입을 주장해오던 시민단체들은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은 이날 논평을 내고 “분양가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아파트 분양가를 공개 검증하자는 것은 오랫동안 그 필요성을 강조해 온 사항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후속조치와 법제화 등을 통해 후분양제 확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나 경제지 등은 이러한 환영 논평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오 시장의 후분양제가 ‘미봉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신문은 부동산 전문가 등의 말을 인용해 오 시장이 고분양가 비난에 고육지책으로 후분양제를 내놓았지만 분양가를 낮추는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공급을 늦춰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건설 기간 금융부담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등 시민단체 환영 논평은 외면

    이에 대해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의 윤순철 국장은 “후분양제 흠집내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윤 국장은 “경제지는 건설광고로 먹고 살고 건설업체를 대변한다”며 “이후 후분양제의 확대를 막기 위해 비판을 하고 나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실 주택정책 담당자는 “집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원가공개와 후분양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택 건설시장의 투명화를 위해 하자는 것”이라며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거품이 빠지고 분양가가 하락할 수도 있고, 고분양가가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평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 있는 주택 구입에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후분양제를 통한 고분양가 인하 실효성 논란은 문제의 핵심을 흐리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이번 사안에 대해 정치권은 발표 당일인 25일 침묵으로 일관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오마이뉴스>에 “정확한 판단이고 잘한 결정”이라며 환영 기사를 게재했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이 다음날 비판대열에 가세했지만 정작 오 시장이 속한 한나라당에서는 여전히 환영 논평 한 줄 내놓지 않고 있다.

    후분양가 각 정당 왜 침묵하나

    최재천 의원의 ‘환영’ 주장과 달리 열린우리당의 공식 입장은 ‘환영’과 거리가 멀다. 우상호 대변인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은평 뉴타운 고분양가에 대한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후분양제 도입을 발표한 것”이라며 “좋은 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우 대변인은 일부 언론이 비판한 내용과 같은 이유를 들어 “실효성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분양가를 재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승용 원내부대표도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충분한 검토 없는 다급하고 졸속한 정치대응”이라고 폄훼했다. 그는 “후분양제의 계획은 이미 참여정부 정책으로 내년부터 40%, 60%, 2011년부터는 80% 공정 후 후분양제를 도입하기로 검토하고 있다”며 “서울시는 이에 대해 2년 7개월 동안 아무 말도 없고 정부와 협의도 없다가 어제 (갑자기) 발표한 것은 단순히 고가 분양에 따른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경실련 윤 국장은 “여당은 정부가 단계적 도입을 발표했다지만 수급을 이유로 2011년에야 비로소 80% 공정에서 원가공개를 한다는 계획은 현 정부가 후분양제를 이미 거부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여당은 결국 후분양제의 정책 인센티브를 서울시에 뺏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논평에서도 “대통령과 집권 여당조차 국민과 약속한 후분양제와 원가공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서울시의 후분양제 도입은 중앙정부도 실패한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지방정부가 앞장서겠다는 의지표명”이라고 평가했다.

    최재천 의원 역시 “당정협의나 의원총회에서 아파트 분양가격 원가공개와 후분양제 실시를 끝까지 주장했었다”며 “오세훈 시장의 결단이 우리당과 야당에게 큰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정도 되면 한나라당이 오 시장의 후분양제 도입 의미를 적극 홍보하며 여당의 주장들을 반박하고 나서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나라당 역시 그리 흥에 겹지 않은 모습이다. 나경원 대변인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정책을 과감히 시행한 지자체의 모습에 모든 정책에서 지지부진한 정부는 배워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짤막하게 논평했을 뿐이다.

    대신 “후분양제는 찬반이 나뉘는 제도로 이후 보환할 점이 많은 바 수렴해서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나라당, "당론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한나라당 제4정조위원장인 김석준 의원은 "오세훈 시장의 발표가 당론과 일치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론은 확인해봐야 한다”며 “일단 정책위의장단 회의에서는 오 시장의 발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혀 오 시장의 사전보고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한나라당 출신 다수 지자체장들이 서울시처럼 후분양제를 도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역에서는 분양가도 낮고 분양 자체가 안돼 주택시장이 얼어붙어 있다”며 “지역별로 단체장이 융통성 있게 해야지 전부 과열된 양 획일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4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비판하며 한나라당 주택 정책의 하나로 공공부문 후분양제 도입을 발표한 바 있다. 결국 선심용 정책 발표는 했지만 한나라당 역시 후분양제 도입에 대한 통일된 입장을 갖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세훈 시장이 고육지책으로 후분양제를 내놓으니 마지못해 수용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양당의 모습에 대해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참여정부 들어 땅값, 집값 오른 게 얼마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도 못 내놓는 열린우리당이 입이 열개라도 누구를 비판할 입장이냐”고 꼬집었다. 또한 이 의원은 “오세훈 시장이 문제를 비껴가고 상당기간 유보시키기 위해 자구책으로 후분양제를 도입했다”며 “한나라당이 후분양제와 관련한 어떤 정책화, 법제화 준비도 없는 것을 볼 때 한나라당 당론은 아니라고 본다”고 한나라당의 한계를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주택정책 전문가 역시 “이명박 전 시장이 저질러 놓은 은평 뉴타운 문제에 오세훈 시장이 몰려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대책”이라면서도 “정부는 훨씬 속도가 늦고 경기도 등에서도 후분양제 도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단 환영하고 제대로 실행할 수 있게 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저질러놓은 짓, 오세훈이 뒤처리

    한편 민주노동당은 분양가 검증위원회를 법제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이미 마련하고 국회 발의를 예고하고 있다. 분양가의 적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광역자치단체별로 분양가 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분양가가 발표되기 앞서 입주자 모집 승인 전에 검증위원회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가 검증위에 내역서를 제출하게 되면 자연 원가공개도 이뤄진다. 이영순 의원은 동료의원 서명을 거쳐 이르면 금주 중 국회에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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