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콘돔 이론에 강했고, 그걸 실천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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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6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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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친구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지난 달 초에 이민 2세와 약혼한 후 약혼자가 먼저 출국하고 연말에나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이국 생활을 할 친구다. 부쩍 외로워하는 게 보여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다짜고짜 하는 얘기가 "너 언제 임신하냐"는 것이었다.

    이제 결혼한 지 한달 남짓, 계획 임신으로 몇 년 뒤나 생각해 볼 참이었다는 나의 말에 금방이라도 메신저 대화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친구.

    아이들 낳으라는 친구의 독촉을 들으며

    "우리가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미 늦었다, 둘째는 언제 낳을 것이냐, 일찍 낳아야지 애가 똑똑하다더라, 나는 결혼하자마자 낳을 것이다" 등등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난 딩크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하면 반드시 출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낳겠지만 몇 년 후가 될거야" 라고 했더니 단박에 결혼을 했으면 아기부터 낳아야지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는데 이 주제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각자 생각과 상황에 맞게 하면 되는 게 아니냐"며 다른 얘기 하자고 화제를 돌리려하자, 친구끼리 이런저런 얘기도 못하냐며 기분 나빠한다. 뭐라고 더 할 얘기가 없었다. 오해하지 말라고 그냥 사과를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바로 요새 교육을 받고 있는데 콘돔은 윤활제가 몸에 나쁘고 피임약은 호르몬을 교란하고 몸에 뭔가를 넣으면 그게 다 해가 돼서 돌아오니 굳이 피임을 하려면 자연주기법만 쓰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졌다~~~~~

    피임은 자연주기법을 쓰라는 친구의 강의를 들으며

       
       ▲ 증권여성노동자 홈페이지 <여파>  

    난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한 후에나 꽤 긴 시간 동안 피임을 하고 있다. 대학 신입생 때 교양강의에서 피임에 대한 발표를 맡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이건 정말 다 알아야 한다, 정말 중요하다, 내가 알려주리라’는 사명감으로 발표 도중에 콘돔 포장지를 뜯은바 있다.

    난 콘돔을 좌중 앞에서 휘두르며 사용법을 설명한 이후 이론에 정통하게 되었고 그 이론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남자친구에게 먼저 성관계를 제의한 것은 나였다.
    ‘이제 나도 성인이고 내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을 격하게 사랑한다는 사실에 망설이지 않았다. 놀라서 식초를 한 사발 들이켠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놀랐지? 괜찮아. 신중하게 생각해봐."라고 안심시킨 것도 나였다.

    서로가 첫 이성교제이고 첫 키스였으며 곧 첫경험을 갖게 될 우리가 먼저 챙긴 것은 남성용 피임기구와 새 속옷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관찰해 온 점액관찰법과 월경주기법으로 오늘이 가임기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이었다.
    언젠가 내가 성관계를 갖게 된다면 내가 원할 때 그리고 상대방도 동의할 때 피임을 확실히 한 후에 해야지 하던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성은 안전하고도 즐거운 것이었다.

    확실하게 피임하면 성은 안전하고 즐거운 것

    결혼을 한 이후에도 비혼일 때와 마찬가지로 2가지 정도의 피임법을 병행하고 피임기구가 없이는 관계를 갖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피임을 하고 있다. 비혼이었을때는 비혼이라서 피임에 대해 말할 수 없었지만 결혼을 한 지금도 말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이렇게 친한 친구에게조차 죄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피임은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절할 수 있는, 나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부부가 언제 임신을 할지 의논하고 합의한 일인데 끊임없는 압력과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내 위장만큼 넓고 깊은 주변인들…..

    시간 날 때 마다 결혼하면 바로 임신을 해야 하지만 피임을 하려면 월경주기법 이외의 모든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고 쪽지를 날리는 친구 앞에서 "나 피임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이제부터 싸우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오늘도 친구는 "임신하기 최소 6개월 전부터 태교를 시작해야 한다’, ‘부부가 미리 엽산제를 복용해야 한다"며 모성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무개념 예비 엄마를 계몽한다.

    친구야. 너에게 결혼을 통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 못해서 변비에 걸린 데다가, 손에 익지 않은 살림한다고 고군분투하느라 다크서클이 코까지 내려온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구나. 우리 신랑은 장마철에 빨래가 잘 안 마른다고 걱정이 태산이야. 우리가 불쌍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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