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K-방역’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
간호사들이 말하는 현실...“죽을 힘 다 해도 부족한 인력으로는 안 돼”
    2020년 07월 06일 1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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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을 최대한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간호사의 일이라면, 저희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간호사들의 실패는 아닙니다. 모두 모여 죽을힘을 다했으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부족한 인력으로, 부족한 경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경력 간호사들이 수없이 떠나버리도록 방치한 시스템의 실패입니다…. 간호사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은 환자들이 견뎌야 하는 열악함이 됐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위협받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간호사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우리가 그만두지 않게 해주세요.”(대구로 파견갔던 김수련 간호사)

“2020년 대한민국에 병상은 많아도 입원할 곳은 부족하고 고가의 장비는 많아도 환자를 돌볼 인력이 부족합니다. 불규칙한 교대근무와 야간 노동, 과중한 업무, 중증 환자에 대한 부담감, 나아지지 않는 근로조건. 젊은 시절 한때는 사명감과 헌신으로 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힘들게 들어간 병원을 그만 둡니다. 이게 그들만의 잘못일까요?” (메르스·코로나19 돌본 최은영 간호사)

코로나19 감염병 환자들을 최전선에서 치료한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절박했다. 코로나19로 전국민이 공포에 떨던 시기, 확진자 가장 가까이서 머물던 그들에겐 ‘영웅’, ‘전사’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덕분에 챌린지’도 이어졌다. 1인당 봐야 할 환자가 10명이 훌쩍 넘어 “안간힘을 써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영웅’이라는 수식어는 오히려 간호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이 됐다.

코로나19 현장 간호사들은 6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뿐인 덕분에 벼랑 끝에서 휘청거리는 병원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간호사가 코로나 전쟁의 전사라고 말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절절히 호소하는 간호사에게 지금 당장 대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회견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공동주최했다.

사진=유하라

부족한 인력과 적은 급여, 초월적인 업무량으로 내버려진 간호사들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김수련 신촌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입사 후 5년째 중환자실에서 근무 중이다. 지난 3월에는 한 달간 코로나19 현장에 자원해 근무했다.

김 간호사는 “간호사들은 안전하지 않았고, 장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했다. 인력이 몹시 모자랐고 특히 능숙하게 중환자를 돌볼 수 있는 경력 간호사들의 수가 적었다”며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가장 밀접하게 모니터링해야 하는 책임을 지지만, 대구에서 간호사의 태반은 트레이닝 받지 못했거나, 오랜 기간의 유휴기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호사의 처우는 견딜 수 없는 수준이다. 적은 인력, 적은 급여, 무시되는 안전, 동료와 환자로부터의 폭력, 초월적인 업무량에 짓눌려 간호사들은 매일매일 떠나고 있다. 어렵게 쌓은 소중한 경력들은 코로나 19 현장에서, 혹은 여러분들의 위기상황을 위해 귀하게 쓰일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내버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K-방역의 실패를 말하는 간호사들
2, 3차 대유행 온다면…“이대로면 우린 다 무너진다”

정부의 K-방역 자화자찬과 달리 의료 현장에선 ‘실패’했다는 울부짖음이 나온다고 한다. “이대로는 2, 3차 대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회견 참석자들은 “K방역을 자랑스럽게 외쳤지만 현실은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했다. 또 1차 대유행 당시 부족한 인력과 병상 문제를 의료진 개인의 희생으로 막아냈지만 더 이상의 여력은 없다는 것이다. 또 간호사들은 살 수 있는 환자들을 더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도 시달리고 있다.

김 간호사는 “저희는 3월 대구에서 매일 긴장 속에서 질본의 발표를 봤다. 보건복지부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쏟아부었고, 우리도 온 힘을 다했지만 인력은 부족했다”며 “같은 규모의 집단감염이 한번만 더 온다면 우린 다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매일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감염병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다시 감염이 퍼져나가면 한줌 짜리 우리는 또 여러분 앞에 서겠지만 이 숫자로는, 이 경력으로는 못한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간호사들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인력 부족과 열악한 처우로 인해 환자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기도 했다.

김 간호사는 “모든 사람은 삶의 한번은 중환자실에 온다. 여러분이 거기서 만난 간호사들은 트레이닝 받지 못했거나, 바빠서 죽을 지경일 것이고,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위해, 더 응급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여러분의 안위는 언제든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며 “업무가 미숙한 간호사들이 충분한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채로 여러분을 돌보러 들어올 것이고, 여러분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확진자 10명 중 8명…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으로?
정부는 공공의료 대신 재벌 배불리는 원격의료 추진

한국의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2.6배가 넘는 세계 2위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의 병상수는 10%로 최하위권이다. CT, MRI 등 고가장비의 보유률은 높지만 국기지정 음압격리병상은 198개, 인구 1000만명이 거주하는 서울에는 고작 43개밖에 없고, 간호인력은 OECD평균도 못 미친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대구경북 집단감염 당시)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 78% 감당해야 했다. 정부가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공병원 부족으로 인해 살릴 수 있는 많은 환자들이 사망했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공공병원을 늘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1, 2, 3차 추경에도 공공병원 확충은 담기지 않았다. 대구 집단 감염 당시 상태 그대로”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감염을 의료진들은 맨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 정부는 공공병원 확대가 아니라 3조원 가까운 돈을 제약회사에 퍼주는 등 원격의료에 올인하고 있다. 병상과 인력이 없는데 비대면의료가 무슨 소용인가”라고 반문했다.

전 국장은 “정부는 지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는 데에 집중해달라”며 “공공의료와 인력 확충 요구를 외면한다면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는 환자와 또 다시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현장 간호사들과 시민사회계는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 ▲안전하게 일할권리 보장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 보장 ▲감염병 대응 세부지침 마련 ▲공공병원 설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정희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영웅이나 전사라는 말로 간호사들을 더 이상 희생시켜선 안 된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우 받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간호사들의 절박한 요구에 답해야 한다”며 “병원이 달라지지 않으면 방역과 의료 실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원격의료나 의료상업화를 논할 때 아니다. 간호사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속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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