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이 잘생겨 뵈는 건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2006년 09월 25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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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토종 종자로 농사를 시작했다. 종자 중에 그래도 토종이 대부분인 곡류는 계속 씨를 받아서 심었지만 채소류는 거의 종묘상에서 사다가 심었다. 토종 종자 보급에 평생을 바치신 농진청의 토종 박사님을 알게 되어 올 봄 몇 가지 채소 토종을 얻을 수 있었다.

    토종을 심으니 농사가 다시 새록새록 재미있어진다. 무엇보다 잘 생긴 겉모습이 꼭 화초 키우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토종닭이 다른 일반 닭보다 잘생긴 것과 같은 이치다.

    일반 작물보다 잘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작물은 다수확, 곧 생산을 많이 하도록 개량되었기 때문에 살만 뒤룩뒤룩 찐 양돼지와 비슷하다. 토종에 비해 새순을 많이 내는 개량종은 정신이 없다. 여러 갈래로 뻗은 줄기들을 잘 잘라주어 열매를 한 곳에 집중적으로 열리게 해야 한다. 반면 토종은 줄기를 많이 뻗질 않는다. 자기가 알아서 한 두 가지 정도만 뻗는다. 그래서 토종은 매끈하다. 잘생긴 것이다.

       
     
    ▲ 멸종될 뻔 했다가 최근에 한 농부에 의해 산골에서 발견된 동부콩이다. 갓끈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붙여졌다. 콩으로보다는 껍질째 채소처럼 먹는 게 맛있다.<사진 안산농장>
     

    종묘회사들은 왜 불임씨앗을 만들까?

    종묘상에서 돈 주고 사다 심는 개량종은 이른바 일대잡종F1이라 한다. 이 일대잡종의 특징은 불임잡종이라는 사실이다. 이 작물을 키워 씨를 받아 심으면 발아율도 현저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어미와 똑 같은 자식이 나오질 않는다. 엉뚱한 게 나오는 것이다. 발아해서 자라도 병에 약하고 생산성도 뚝 떨어진다. 그럼 종묘회사들은 왜 불임 씨앗을 만들까?

    우선 가임 씨앗을 만들면 다음부터는 농부들이 씨앗을 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상품성 있는 종자를 만들면 다른 회사에서 베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터미네이터 종자라고 해서 아예 발아조차 100% 되지 않게끔 만드는 기술까지 나왔다.

    개량종과 토종의 차이를 알아보자. 먼저 가장 특별한 이유는 토종엔 저작권이 없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팔아먹기에 적당하지 않은 상품인 것이다. 불임이 되지 않으니 한번 팔아먹으면 그걸로 끝이다. 저작권이 없으니 사용료도 없다. 이래저래 토종은 장사꾼들에겐 매력이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네 장사에 방해만 되는 존재다.

    우리가 즐겨 먹는 딸기를 보자. 이 딸기는 90%가 일본 종자다. 원래 딸기는 5월말에서 6월초에 먹는 과일인데 지금은 다들 겨울 과일인 줄 안다. 2008년부터 이 딸기를 먹는데 우리가 지급해야 할 종자 사용료만 자그마치 연 700억원이 될 것이라 한다. 종자 값까지 치면 상당한 숫자가 될 것이다.

    식량주권에 이어 종자주권도 외국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현재 종묘 회사가 IMF 때 대부분 외국회사에게 넘어갔다. 식량 자급율이 26%밖에 되질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도 쌀을 빼면 겨우 한자리 숫자에 불과한 자급율인데, 그 자급율을 유지하는 작물들의 종자가 대부분 외국 회사의 것이라니 식량 주권만이 아니라 종자 주권까지 남의 손에 넘어간 꼴이다.

    다음으로 개량종과 토종의 차이점으로 심각한 것은 종의 다양성 문제다. 토종은 종이 다양한 반면 개량종은 종이 단순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나나다. 바나나는 육종에 의해 품종이 아주 단순해졌다. 게다가 대부분은 씨 없는 바나나다. 전통 농부들에게서 종자 주권을 종묘회사가 빼앗아 가버려 팔기 좋게 씨도 없고 품종도 단순화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바나나는 앞으로 10년 안에 멸종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바나나야 남의 작물이니 상관없다 하겠지만 그런 조짐들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다. 볍씨 같은 경우는 우리 토종이 600종이 넘었다. 그런데 이 종자들은 종자 은행에서 잠자고 있고 현장에선 일본 종자들만 심어지고 있다. 이른바 ‘아끼바레’ 종류들이다. 구수한 우리 토종보다 찰진 일본 종자가 소비자들 입맛을 장악한 것이다.

    쌀만큼 멸종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곧 멸종될 가능성이 있는 토종으로는 콩이 있다. 콩은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다. 쌀과 함께 콩은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켜온 고마운 작물이다. 이 콩의 종류가 무려 5천종이 넘는다. 이를 미국이 수집해 가 보관하고 있는 것만도 3천종이 넘는다. 우리 종자 은행엔 2천여종 정도만 보관하고 있다.

    종자란 현장 농부들에 의해 계속 재배되어 자연스럽게 육종을 거쳐야 건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농부들은 훌륭한 육종가들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재배되고 있는 콩은 절대적으로 적다. 강원도에서 토종 콩 농사로 유명한 농부 한 분이 재배하고 있는 종자수는 80여종밖에 되지 않았다.

    멸종 직전에 겨우 복원된 우리밀

    멸종될 뻔했다가 겨우 복원된 작물로 유명한 것은 우리 밀이다. 우리 밀이 지금 세계 밀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밀 육종에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서양 밀은 잘 쓰러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해 준 게 우리의 앉은뱅이 밀이다. 이 밀을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새로운 종자 개발에 사용하고 다시 이것이 지금의 미국 밀 종자개발에 이용된 것이다.

    종이 다양할수록 생태계는 건강한 법이다. 먹이 사슬이 그만큼 다양하고 살아있다는 것이다. 종이 단순해지고 표준화되면 종은 멸종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게 토종을 살려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우리 토종이 종자수가 다양한 것은 작은 땅임에도 산골이 많아 지역의 기후와 환경의 차이가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종자수가 다양하면 자연의 변화에 대응력이 커진다. 예컨대 볍씨 같은 경우 한 종자만 심지 않고 여러 종류를 심어둔다.

    가뭄에 강한 종자나 일찍 이삭을 패는 종자 등 여러 개를 심어 두었다가 때 기후 상태를 보아가며 그에 맞는 종자를 모내기하는 방식이다. 자연이 종자를 다양하게 해 준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도 종자가 다양해진 것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토종을 심지 않고 비싼 돈 주고 개량종을 갖다 심는 것일까?

    먼저 개량종은 수확량이 많다. 다수확 종자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찍 수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열매에서 씨보다 과육질이 많고 열매도 크다.

    그럼 단점을 살펴보자. 우선 개량종은 병에 약하다. 특정한 병에 강하게 육종을 하다보니 그 외 다른 병에는 약하다. 그리고 전염이 잘 되어 금방 창궐한다. 반면 토종은 병에 걸려도 잘 버틴다. 잘 퍼지지 않는 것이다. 토종은 여러 병에 걸려가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량종은 토종에 비해 맛이 덜하다. 물고기로 치면 양식과 자연산의 차이다.
    개량종을 심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다수확성 말고는 신통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병과 기후 변화에 약하다. 매년 농산물 가격이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올 초 남부 지방에 눈이 많이 와 상추 값이 폭등했다.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고추가 병이 많이 왔다. 고추값이 금값이라고 한다.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은 토종 잡곡으로 성공한 유일한 사례이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많아져야 토종도 살 수 있을 것 같다.<사진 안산농장>
     

    병에 강한 토종 고추

    올해 내가 심은 고추들은 세 종류인데 다 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그 중 토종이 특히 병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자리를 잘못 잡아 장마 때 거의 물 구덩이에 토종 고추 네 포기가 잠기다 시피 해서 풋마름병에 걸렸는데 한 포기만 죽고 세 포기가 완전하게 살아남았다.

    이처럼 토종이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병에 강하다면 개량종처럼 등락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정한 량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결국엔 개량종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

    그 외 개량종은 열매가 크고 과육질이 많으며 모양이 일정하다는 장점을 보자. 열매가 크다는 것은 인간이 많이 먹으려고 그렇게 육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열매란 작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 속에 있는 씨앗의 영양분이거나 씨앗을 보호하는 장치일 따름이다.

    그런데 개량종 씨앗은 양도 적고 크기도 작고 튼실하지는 않은데 과육질은 많은 것이다. 말하자면 기형이다. 제대로 된 생명을 먹어야 사람도 제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텐데 이런 기형을 먹어서야 어찌 제대로 생명을 누릴 수 있겠는가?

    원래 사람은 작물을 먹는 대가로 그 작물을 번식시켜줄 의무가 있다. 그게 자연이 맺어준 사람과 작물의 영원한 약속이다. 넓게 보면 식물과 동물의 영원한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약속을 인간이 먼저 깼다. 그것이 불임잡종 종자다.

    이렇게 되면 종자 수는 단순해지고 자가 번식력을 잃어버려 멸종으로 치달아 갈 것이고 결국엔 인간에게는 먹을거리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게 우리가 토종을 지키고 스스로 종자를 채취하는 농부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토종은 없어지고 농부는 가난해지고

    토종이 없어지는 데에는 농부보다 도시 소비자의 책임이 더 크다. 토종이 없어진 것은 농사가 상업화되었기 때문이다. 토종은 상업적인 농사에 적합지 않다. 많은 양을 생산하여 도시로 떠난 사람들을 먹여 살리려면 수확이 적은 토종보다 수확이 많은 개량종을 심어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통일벼다.

    다수확을 했다고 해서 농부가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도시에선 대량생산에 성공하면 돈을 벌지만 농작물은 대량생산이 되면 똥값이 되어 오히려 쪽박 찬다. 토종도 없어지고 농부는 가난해지고 그러니 농부도 없어지고 더불어 토종이 급속도로 없어진다.

    앞에서 소개한 토종 박사님이 1985년에 수집한 종자수가 10년 뒤 수집한 장소를 다시 찾아가 계속 재배되고 있는 토종 수를 알아보았더니 10%도 남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그걸 증명해준다.

    이젠 한미 FTA로 쌀마저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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