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투표 요구는 도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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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5일 0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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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이 한미 FTA 협상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운동권 내부에서 말들이 많다. ‘국민투표 요구’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답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제 각각이다. 정세 상 지금 거기에 집중할 때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고, 국민투표 자체를 위험한 제안으로 몰아붙이는 주장도 있다. 걔 중에는 거리의 투쟁과 국민투표가 서로 대립된 것인 양 이야기하면서, 국민투표 요구는 합법주의적 편향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마저 있다.

    과연 국민투표 요구가 그런 혐의를 받을만한 것이라면, 룰라 정부에 맞서서 외채 상환 문제나 FTAA(미주자유무역지대.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대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려 한 시도) 협상을 국민투표로 처리하자고 주장한 브라질의 민중운동이나 급진좌파는 그럼 무엇인가? 1970년대부터 중요한 정치적 순간마다 국민투표 제도를 활용해온 이탈리아의 좌파는? 한국의 운동권은 정말 이들보다 훨씬 더 원칙적이고, 더 변혁적인 것일까?

    필자는 한미 FTA 반대 투쟁의 당면 전술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논의들을 다 훑을 생각은 없다. 다만 국민투표 전술 자체가 뜻밖에 폄훼의 대상이 되는 데 대해 이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칫하다가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중 민주주의의 중요한 무기 중 하나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운동권들의 손에 고사될지도 모르겠기에 말이다.

    국민투표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

       
      ▲ 우루과이 민중들은 2004년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물 민영화를 금지시켰다.  

    신자유주의 시대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헌법적 쟁점들을 이른바 전문가들이 좌지우지한다는 데 있다. 민중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들이 한 줌의 엘리트들의 손아귀에서 왔다 갔다 한다. 작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부결된 유럽연합 헌법안이란 게 그런 것이었고, 한미 FTA 역시 그 좋은 사례다.

    바로 여기에 국민투표의 정치가 필요한 첫 번째이자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신자유주의 담론이 제도 정치권의 대다수를 점령하고 있고 따라서 ‘정치적 다원주의’란 게 실제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국민투표는 그것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거의 예외적인 제도적 장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투표가 현실 정치 일정에 오르는 순간, 대중이 발언하기 시작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발언의 형식적 가능성이 열릴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이 될 수 있다. 그간 소위 전문가들에게 주눅 들었던 사람들이 일단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제 누구도 그것을 제 맘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위험이겠지만, 이런 ‘위험’말고 다른 무엇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곧바로 두 번째 이유로 넘어가게 된다. 국민투표는 결코 투표일 당일의 투표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3공, 4공 시절의 국민투표는 그런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국민투표는 필연적으로 전 사회적인 토론과 논쟁의 국면을 연다. 민중들이 입을 연다는 것은 서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대화하는 사람들은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권은 별 고민 없이 ‘선전, 선동’을 말하곤 하지만 그게 실제로는 얼마나 어려운 건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은 결코 운동권의 선동의 불씨 하나로 무섭게 폭발하고 말 분노의 화약고 같은 게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냉소주의의 만년설이 두껍게 쌓인 빙하 지대와 같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말들의 인플레이션과 자본주의의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이러한 냉소주의의 굳건한 토대가 된다. 선전, 선동이 먹히기 위해서도 그 단단한 얼음 층에 균열부터 생겨야 한다. 국민투표는 그런 균열의 계기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민중들이 한미 FTA를 자신의 문제로 서로 이야기하게 될 때 정치적 선전도 여태껏 느끼던 것과는 다른 무게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입말에서 입말로 오고가는 선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런 생명력을 확보할 다른 명확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국민투표의 문을 두드리는 게 결코 생뚱맞은 일일 수 없다.

    국민투표 요구가 투기적 주장인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국민투표를 해서 한미 FTA 협상이 혹은 그 협약안이 통과되는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는가?

    필자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그 전에 집회와 시위로 한미 FTA를 파탄 낸다면 당연히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결국 협약안이 국회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국민투표를 하면 질 수도 있지만, 국민투표 실시라는 전제 없이 국회로 넘어가면 우린 그것으로 이미 진 것이다.

    아니, 돌 맞을 각오로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보겠다. 한미 FTA만 막으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한미 FTA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여러 정책적 경로 중 하나일 뿐이다. MAI(다자간 투자협정)가 좌절됐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미 FTA를 대신할 또 다른 공격 수단이 등장해 새로운 공세를 벌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한미 FTA를 막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는 다른 미래 전망에 공감하는 거대한 대중의 존재와 그 힘을 확인하는 게 핵심이다. 이러저러한 기존 대중조직 말고 전체 국민의 수십 퍼센트 규모의, 그야말로 거대한 대중말이다.

    한미 FTA를 막더라도 거리에 나서는 대열은 여전히 이제까지의 깃발들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역사의 방향을 바꾼 게 아니다. 하지만 비록 국민투표에서 단 몇 %의 차이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 할지라도 그와 함께 우리의 대의에 공감하는 대중의 굳건한 블록을 확인한다면 이제는 한미 FTA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새롭게 확인한 ‘우리’를 기반으로 우리의 미래 전망을 더욱 힘차게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투기적 관점이 아니다. 원래 우리의 관심은 단지 저들의 역사를 막아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 아니었던가?

    30년 전 이탈리아의 이야기 하나

    필자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마무리는 옛날이야기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30년 전 이탈리아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에 국민투표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래서 어떤 정책 사안이든 유권자 50만 명 이상의 청원 서명만 있으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돼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가톨릭 문화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1960년대까지도 이혼이 불법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에 처음으로 이혼이 합법화됐다.

    하지만 교회와 보수 우파가 가만있지 않았다. 무솔리니의 후예인 네오 파시스트들까지 가세한 우파 연합은 국민투표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국민 중 다수는 이혼 합법화에 반대할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

    결국 1974년 5월에 이혼법을 둘러싼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투표함을 열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한 것은 우파 쪽이었다. 반면 진보 좌파의 대표 주자인 이탈리아 공산당은 좌불안석이었다. 워낙 가톨릭의 전통이 막강하기 때문에 그나마 어렵게 통과시킨 이혼법안조차 무효가 돼버릴 거라는 비관이 우세했다. 한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이혼법안 찬성 쪽이 59.1%가 나왔다.

    우파는 역사의 흐름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대중은 그들의 눈길 바깥 저만치에서 앞서가고 있었다. 하지만 잘못 본 쪽은 우파만이 아니었다.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한 그들이었지만, 정작 세상이 진짜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는 새로 학습해야만 했던 것이다.

    왜 하필 이 수십 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 이론의 전위들의 소심함, 그리고 그 어느 틀도 비껴가는 현실의 대중의 역동성. 그것은 결코 오래 전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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