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차별 반대" 말하지만···
21대 국회 발의도 힘겨웠던 차별금지법
노무현 정부 때 정부입법예고까지, 민주당은 모르쇠
    2020년 06월 30일 1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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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29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인종, 사상, 고용형태, 학력, 성적지향, 장애 등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차별금지법 대표발의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우리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코로나 위기에서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지키는 마스크와 같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법”이라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은 정의당 의원 6명 전원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이동주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 4명의 의원이 발의에 참여해 법안 발의 요건인 의원 10명을 겨우 채웠다. 특히 발의 참여자 대부분이 비례대표 의원이다. 심상정 의원을 제외하곤 지역구 의원은 단 한 명도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의당 의원 외에 발의에 동참한 의원들은 국회 입성 전부터 소수자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해왔다. 권인숙 의원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출신으로 여성운동가이고, 이동주 의원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상임부회장을 역임했다. 청년 정치인인 용혜인 의원은 21대 국회 시작 후 꾸준하게 청년, 여성 문제와 관련한 입법 활동을 벌이고 있다.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한 노력의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했고, 국회에선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18~19대 국회에서도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진보정당 의원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차별금지법,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 난민, 이주민, 여성,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모든 소수자들에겐 생존과 직결돼있다.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건은 인종차별이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회견에서 “누군가의 절박한 오늘을 정치가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법이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사회안전망’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장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날로 심각해져가는 불평등에 단호히 맞서는 법이다. 차별에 맞서지 않고 불평등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별의 가장 나쁜 점은 차별을 통해 구조적으로 취약해진 개인의 삶을 마치 처음부터 그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라며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아우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철없는 청년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가파른 불평등의 절벽으로 떠밀린 청년들의 두려운 외침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 두려움을 감싸 안는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과대 대표되는 보수 기독교에 몸 사리는 기성 정치인들
장혜영 “일부 개신교 교단의 압박 두려워 차별금지법 외면 말아야”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법안’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 23일 인권위가 발표에 따르면,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특히 응답자 73.6%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성적 지향·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는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 보수 기독교계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사는 인권위의 의뢰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4월 22~27일 전국 성인 1000명(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 반대로 번번이 좌절돼왔다. 과거 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차별금지법을 중도 철회한 것도, 180석을 거머쥔 슈퍼여당이 된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미래통합당이 ‘성적 지향’을 뺀 차별금지법 발의를 검토 중인 것도 보수 기독교계를 의식한 처사인 셈이다.

장혜영 의원이 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사실과 다른 왜곡된 정보를 만들고 퍼뜨리는 일부 개신교 교단의 압박을 두려워하며 시민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합의를 애써 외면해왔던 과거의 용기 없는 국회와 지금의 21대 국회는 완전히 다른 국회”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1대 국회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 수 있는 법”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 의원을 비롯한 청년 정치인들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이 두려워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주저하는 기성 정치인과 거대정당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30일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국회의원들이) 너무 조심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지금은 사회가 많이 변해서 인식도 충분히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국회에 오래 계셨던 분들은 너무 과거를 생각하면서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집권여당으로서 명확한 입장을 낼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커다란 권력을 가지게 했는데 도리어 그 가진 것을 잃을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피한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상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공동입법토론회 개최 제안”

보수 기독교계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미래통합당은 성적 지향을 삭제한 차별금지법 검토를 통해 특정한 소수자 차별에 대한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지만, 민주당은 입장조차 내지 않고 있다. 정의당이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차별금지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재차 촉구하는 이유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회견에서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당시 정부입법예고까지 됐고, 욕을 먹어도, 당장의 이득이 없어도 그 길이 옳다면 그 길로 가는 우직함이 노무현 정신이다.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함께 하는 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잇는 길”이라며 “게다가 국민여론 88%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다. 국민께서 여당에 보내준 압도적 지지를 상회하는 수치이며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할 중요한 명분”이라며 민주당의 동참을 호소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던 미래통합당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의 장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의 의지로 시작되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18대 대선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던 만큼 민주당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결코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이견을 좁혀나가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공동입법토론회 개최를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의당은 보수 기독교계에 대한 설득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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