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친 사랑한다고 22살에 아이를 낳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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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5일 0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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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계간지 <여파 女波>가 최근 창간호를 선보였다. 이 잡지는 증권노조에서 발행하지만,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부딪치는 다양한 일상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이 책의 내용은, 따라서 남성들의 필독이 요구된다.

    <여파>는 창간특집으로 차별, 피임, 유니폼 문제를 다뤘으며 이밖에도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레디앙>은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여파>의 편집진 동의 아래 관련 내용을 싣기로 했다. 먼저 피임 특집을 몇 차례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 주>

    01

       
      ▲ 증권여성노동자 잡지 <여파女波>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오랜 침묵이 흐른 후 간신히 말했다.
    "나, 생리를 안 해"
    남자친구는 놀랐는지 금방 대꾸하지 못했다.
    "좀 늦어질 수도 있지 않아?"
    약간 잠긴 목소리로 남자친구는 작게 말했었다.

    임신을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를 빨리 결정해야 했다.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22살에 결혼을 한다거나,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산부인과는 낯설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그 나이엔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몸에 좋은 거 먹어야 된데"
    "별로 배고프지 않아"
    "그래두…"
    둘도 없는 믿을 만한 여자친구와 나는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우리는 조금 우울하게 햄버거를 먹었고, 몸을 생각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02

    ‘이게 뭐람. 첫 피임이 낙태라니….’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만으로 모든 준비가 된 줄 알았다. 누구도 이제는 섹스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해주지 않지만, 피임과 안전한 섹스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시절 ‘안전한 섹스’와 ‘피임 준비’, 이런 말을 들어보기나 했었나?

    03

    "몸으로 하는 대화…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섹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난 더듬거리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술을 따르며 물었다.
    "어떨 때가 좋아?"
    섹스에 대해서는 나보다 진보적인 남자친구에게,
    "너랑 하면 다 좋아"
    참 바보 같은 답변을 했었다.

    2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몸과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져갔다.
    그러나 남자친구 앞에서 때때로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수줍은 여자’를 연기했고, 나의 욕구를 드러내거나 욕구대로 하는 것은 음탕한 냥 스스로 검열하고 있었다.

    콘돔을 챙겨 다니며 적극적으로 피임을 하고, 나의 느낌을 묻는 남자친구 앞에서 왜 난 덜 경험 있는 여자처럼 행동하려 했을까?

    20대 초반처럼 여전히 나는 피임을 상대에게 맡기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거다. 박약한 안전감도하의 섹스로도 임신이 되지 않았던 것은.

    04

    [응급 피임약의 임신예방율(피임율)은 일반적으로 첫 한 알을 72시간 이내에 복용할 때 임상문헌에 따라 평균 85% 정도입니다. 첫 한 알을 24시간 이내에 복용할 때 95%, 48시간 이내에 복용할 때 85%로서 빨리 복용할수록 임신예방율은 올라갑니다. 응급피임약을 복용할 때, 산부인과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전문약)]

    네이버 검색을 뒤지는데 머리가 빙빙 돈다.
    ‘주기를 알면서도 콘돔 없이 섹스라니. 미쳤어’
    24시간 내에 복용해야 피임율 95%….. 밤이 너무 길었고, 내가 끔찍했다.

    05

    "삼순이가 그렇게 굶었어도 진헌이 밀어내는 거 못 봤어? 콘돔 없이는 안돼"
    "결혼 전부터 남편이 알아서 피임하는데…, 질외사정 하는데 별 문제없어"
    "난 먹는 피임약. 성감 별로네 하는 말에 속아서 실수하면 어쩌려고, 먹는 게 더 안전해"
    "먹는 약은 몸이 임신한 상태로 착각하는 거잖아. 깜빡 잊거나, 살찌고 그러지 않아?"
    "첫째 낳고 루프 했는데. 편하긴 한데, 생리량도 너무 많고, 피곤하면 염증 생기고"

    안전 불감으로 20대를 보낸 나와 내 친구들은 다양한 경험을 말하고 있다. 여성들끼리는 다양한 경험을 드러내는 일이 지지되고 격려 될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만큼 몸을 사랑하지 못하고, 몸의 권리를 실천하는데 주저하기도 한다.

    다음번 우리들의 수다에서는 다짐을 받아야지. "사랑이라는 신흥종교에 깊이 빠져 내 몸을 사랑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잊는 일이 없도록 하자." "항상 안전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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