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벼슬이 될 때
노동자 계급은 분열한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 "비정규직 없는 공항을 만들자"
    2020년 06월 30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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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활동가조직 ‘노동자가 여는 평등의 길’ 소식지에 실린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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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광경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슬프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보안검색 노동자 1,900여 명을 청원경찰 형식으로 정규직 전환한다는 결정을 놓고 청년 일자리 빼앗기이며 반칙이라는 여론의 반발이 거세다.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뜨겁고, 뉴스 댓글 창이 소란하다.

이미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논란의 배경은 25일 경향신문 1면이 잘 정리했다. “비정규직·정규직 간 격차를 좁히는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 마련 없이 오랜 기간 방치된 노동의 양극화 사회가 ‘을과 을의 대립’을 만들”었고 “비정규 노동 자체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인 대안 없이 일부 사업장만 정규직화하는 것이 불공정 시비를 불렀다.”

새로운 상황은 아닌데 인천국제공항 건은 다른 경우와 달리 임금과 업무에 대한 가짜뉴스가 끼어들면서 내전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었다.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는 이미 많은 언론이 다루었으므로 반복하지 않겠다.

다만 언론이 놓친 것 하나만 덧붙이자면, 많은 청년들이 말하는 ‘정규직화로 인해 뽑아야 할 일자리가 줄어 많은 취업준비생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다수의 노동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이들을 배제해서 생긴 소수의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것이다. 왜 선발인원이 줄어드냐고 항의할 것이 아니라 왜 이거밖에 안 뽑느냐고, 왜 이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뽑느냐고 항의하는 것이 진짜 정의로운 것이다. 청년도, 조직노동운동도 그동안 이런 주장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우리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지난 20여 년간 비정규직을 늘리고, 차별하고, 유지한 정부와 자본에 있다. 자기들의 욕망을 위해 만든 불안정노동이 이제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자 부랴부랴 정규직으로 되돌리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갈등은 모두 당사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자랑, 세계 경쟁력 1위의 인천국제공항이 비정규·불안정 노동에 의해 지탱하고 유지한 신기루였다는 사실은 쏙 빼낸 채 정규직화의 시혜를 베푸는 존재로 자신을 포장하고 갈등에 대해서는 뒷전으로 쏙 빠진 것이다.

이 와중에 이상한 현상도 목격된다. 민주노총을 못잡아 먹어 안달이고, 정규직화를 철밥통 늘리기라고 비난 일색이던 친민주당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천국제공항 논란을 두고는 나서서 가짜뉴스를 검증하고 정규직화를 옹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문재인이 취임 첫날 인천공항에서 정규직화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기준과 원칙이 없기는 청와대나 그 지지자들이나 똑같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은 한국사회에 노동자는 없고 피고용인들만 존재하며, 노동계급 대신에 분절된, 지배 이념에 포섭된 개인만 존재한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LG전자의 렌탈가전을 관리하는 노동자가 금속노조로 조직되면서 드러난 사실도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진짜 부자들은 청소기며 세탁기며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해서 쓴다는 것도 몰랐지만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청소기의 먼지까지 직접 버려준다는 것도 몰랐다. 회사는 이 작업을 하면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숙제검사 받듯 과정을 고객에게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가전이 상전’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신분사회’를 살고 있다.

노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지만 인간 그 자체는 만들지 못한다. 노동의 결과물은 그 자체로 우열을 나눌 수 있지만 인간은 노동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을 그들이 하는 노동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거래하거나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폴라니도 그래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상품이어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인 것이다. 오직 사악한 자들만이 인간과 노동을 상품으로 바꾸어 거래했다. 전자가 노예제고 후자가 바로 자본주의다. 인천국제공항과 LG전자의 사례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지주와 소작농이라는 봉건제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공항에는 많은 비행기가 나고 든다. 비행기는 절대 수직으로 날지 못한다. 오직 지면을 따라 수평으로 날 뿐이다. 공항의 노동만이 수직으로 곧추서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공정을 낳지 않는다. 더 많은 평등을 만든다. 세상이 비행기보다는 평등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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