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계개편을 보는 각 정파의 노림수
        2006년 09월 23일 05: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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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흐름에는 두 개의 차원이 있다. 하나는 표층의 흐름이다. 매 시기 이슈를 갈아타는 가변적 흐름이다. 8월의 ‘바다이야기 사태’와 9월의 ‘전효숙 파문’이 그렇다. 다른 하나는 심층의 흐름이다. 특정한 정치적 시간대를 관통하는 기조적 흐름이다.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정계개편 문제가 그렇다.

    정계개편은 일찌기 예고되어 온 정치일정이다. 정치권 누구도 그 불가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 구도에서는 어느 정파도 내년 대선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들어 정계개편 논의가 봇물터지듯 나오는 것은 그동안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이 문제가 임박한 현실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 시기와 형태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열린우리당, ‘반한나라 연합전선’ 구축에 주력 

    열린우리당의 기본 구상은 ‘반한나라 연합전선’의 구축이다. 열린우리당이 최근 한나라당의 수구성을 부쩍 공격하는 것도 ‘연합전선’ 구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 고건 전 총리, 시민사회의 명망가 그룹 등이 연합의 파트너로 거론된다.

    김근태 의장은 지난 20일 "국정감사가 끝나고 예산안이 통과되는 시점이 되면 수구 기득권 대연합에 대항한 민주 개혁세력의 대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12월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이뤄내야 한다"고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고건 전 총리를 만나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 김한길 원내대표(좌)와 고건 전 국무총리(우) {=연합뉴스)  

    고건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여당이 주장하는 중도개혁 세력의 연합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개방형 국민경선제 참여와 관련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이뤄지는 경선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손짓하는 이유

    한나라당은 중원으로의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민주당과의 합당론도 그래서 나온다. 최근 강재섭 대표, 이명박 전 시장, 홍준표 의원, 김무성 의원 등이 잇달아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제기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당내 유력 주자들간에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주장이 단순히 ‘부자 몸사리기’는 아닌 것 같다.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은 30%대 후반이다. 바닥을 기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을 뿐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확장된 것으로는 보기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김헌태 소장은 지난 6월 한 토론회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확장된 것으로 보기는 힘들고 전통적 지지규모인 45% 선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층 또는 보수층의 결집력이 최고 수준에 달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 보수층의 규모를 45% 안팎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46.7%의 지지율을 얻어 노무현 후보에 패했다. 지금 상태에 머물러서는 내년 대선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의 중도화

    그러나 ‘한-민 통합’의 정치적 효과는 미지수다. 민주당과 몸을 섞는다고 해도 호남지역,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얼마나 따라올지 불확실하다. 지금 민주당은 호남 민심을 주도하고 있다기보다 ‘비노반한’의 호남 정서에 한시적으로 얹혀있다. ‘한-민 통합’은 민주당의 정치적 근거만 소멸시키고 한나라당에는 별 실익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중원으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정책의 중도화가 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나라당이 전작권 환수 반대 등 보수적 아젠다에 집중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계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유기준 대변인의 ‘태국쿠데타 타산지석’ 논평은 이 같은 전략 부재, 감각 부재의 한 극단적 사례로 보여진다.

    민주당이 ‘한-민 통합’ 불가를 선언한 이유

    민주당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정치적 지분을 최대한 늘리는 게 목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민주당의 줄타기는 열린우리당과의 연합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연합의 방식과 시점은 지금으로선 예상하기 힘들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거취다. 노 대통령도 민주당과의 통합에 시큰둥하고, 민주당도 노 대통령의 배제를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기는 쉽지 않다. 한나라당과의 연합은 곧 민주당의 존재 근거 소멸로 귀결될 수 있다. 민주당 사람들 자신이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한나라당과 정치적 매춘행위를 하고 있다"고 민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은 ‘정치적 매춘’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에 주로 초점을 맞춰 보도하느라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민 의원의 비난이 있고 난 후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 한화갑 대표는 잇달아 한나라당과의 합당 불가론을 공식화했다. 민 의원은 민주당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렸던 것이다.

    고건, ‘아웃복싱’에서 ‘인파이팅’으로

    고건 전 총리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아웃복싱’에서 ‘인파이팅’으로 스탠스를 바꿨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LA를 방문 중이던 지난 21일 "연말에 우리 정치 질서에도 구조조정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때 늦지 않게 밝히겠다"고 말했다. 전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12월 초가 되면 한나라당의 수구 보수 대연합에 대응하는 민주개혁 대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읽혔다.

    고 전 총리의 정치적 자산은 비교적 높게 형성되어 있는 대중적 지지도다. 그 외 정치적 기반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고 전 총리의 선택지는 분명해 보인다.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밑돌 삼아 범여권의 ‘선장’이 되는 것이다.

    합의추대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여권의 역학관계상 그건 쉽지 않다. 결국 잃을 각오를 하고 내기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좌고우면 하는 동안 종잣돈도 줄고 있는 상태다. 지난 12일 김한길 원내대표와 만나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일각에선 고 전 총리가 한나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박근혜, 이명박 두 유력 주자는 고 전 총리보다 대중적 지지도도 높고 당내외의 정치적 기반도 압도적으로 탄탄하다. 고 전 총리가 이들을 꺾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될 확률은 아주 낮다.

    실제로 지난 주말 김한길 대표와 만남을 가진 이후 정치권에서는 고건 전 총리가 한나라당 쪽으로 몸을 움직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통령직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누려본 고 전 총리가 한나라당과 손을 잡아서 얻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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