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사 잘한 한나라, 정치 고수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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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3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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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열린우리당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포함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늘상 국민연금 관련 사안만 생기면 그렇듯이, 언론들은 마치 새로운 개혁방안이 나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실상은 지난 6월 유시민장관이 내놓았던 내용을 조금 각색한 방안이다.

    여당의원 손을 빌린 유시민안

    2004년에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도 안 된 채 계류 중인데 다시 보건복지부가 정부 개정안을 발의하려니 모양이 안 좋아, 여당 의원들의 손을 빌린 것이다. 다음 주에 법안으로 발의될 예정인 여당의원안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자.

    주 내용은 전체 노인의 60%에게 월 7~1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여당은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하여 급여율을 인하하고 보험료율을 올리는 부분적 개혁을 추진한 반면,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구조적 개혁안을 요구해 왔다.

       
      ▲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연합뉴스)

    기초연금 도입 여부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이 2년을 넘고 있다. 이에 정부가 타협안으로 제시한 것이 기초노령연금이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과 기초연금은 족보가 다른 제도다. 급여율을 보면, 기초노령연금은 가입자 평균소득의 5%에 불과한 반면 민주노동당안은 15%, 한나라당안은 20%이다. 지급대상에서도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되, 상위계층 일부만 제외하는 보편적 제도다.

    요약하면 기초노령연금은 공적부조에 가깝고, 기초연금은 대부분의 노인에게 15%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공적연금의 한 층이다. 여당안이 기존 유시민안과 다른 점은 급여대상을 45%에서 60%로 확대한 정도이다. 그럼에도 정부여당 의원들의 ‘공식적’ 발표는 하반기 전개될 국민연금 드라마의 개막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한나라당의 심각한 정책모순과 불가피한 유연성

    정부여당의 입장에선 기초노령연금제는 한나라당에게 던지는 승부수다. 애초 한나라당이 국민연금 의제를 내년 대선까지 끌고갈 것이라고 전망이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7월부터 한나라당 내부에서 변화 조짐이 감지되었다. 신임 정책위 의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국민연금에 대해 유연한 자세가 엿보였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은 도입 첫 해인 2006년에 당장 9.5조원이 소요되고, 이후 노인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필요재정도 급속히 증가해 2030년에는 현행 불변가격으로 91조원에 달하는 제도다. 민주노동당안보다도 더 후한 급여를 약속했으니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이 재원을 조세로 마련한다는 것이 한나라당 기초연금제안이다.

    그 결과 현재 한나라당은 대표상품인 감세론과 기초연금 증세론이라는 심각한 정책 모순을 내부에 안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공론화되지 않았으나 대선 국면에서 이것이 드러나는 순간 자칫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초연금을 가지고 충분히 장사를 했으니 이제 빠져나오자는 정치적 판단이 들었을 것이다.

    급여율이 어떻게 수정되든 국민연금법을 올해에 매듭짓되 새로운 법안에 노인을 공경하는 ‘기초’와 ‘연금’자만 포함되면 자신의 판정승이라는 셈법이다. 물론 정치 고수 유시민 장관도 이를 눈치 챈 모양이다. 양자가 지난 7월부터 접촉을 해 왔다. 당분간은 샅바싸움이 계속되겠지만 연말로 가까이 가면서 ‘약속대련’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도 있다.

    연말 국민연금 놓고 ‘짜고치는’ 전투 벌어질 수도

    한편 이번에 발표된 여당 의원안에는 도를 넘는 편법이 발견된다. 지난 6월에 발표된 유시민안은 현행 9% 보험료율을 2017년까지 13%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급여율은 현행 60%를 2008년에 50%로 인하한 후, 다시 2028년에 40%로 낮추는 방안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급여율을 40%로 인하하는 안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중장기 보험료율과 급여율을 밝히는 것은 장기 재정추계를 행하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원리 상 필수적인 조치이다.

    그런데 엊그제 여당의원들은 2008년 시점의 보험료율과 급여율 변화만 밝히고 장래 수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에는 보험료율을 9%로 유지하고 급여율은 50%로만 인하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여당의원들은 중장기 필요보험료율과 급여율을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민주노동당에게 하반기 연금정세가 유리하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국민연금 전선이 정부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형성되어 있어 개입 여지가 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최근 기초연금의 재정 부담을 감안하여 다소 유연한 개정안을 만들었다.

    2008년에 기초연금을 도입하되, 5% 급여율에서 매년 0.5% 포인트씩 높여 2028년에 15% 급여율에 도달하자는 안이다. 이 안에 따르면 도입 초기 필요재정은 정부여당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기초연금이 정부여당안처럼 계속 급여율 5% 수준으로 머무는 공적부조가 아니라 이후 15% 급여율로 커가는 줄기세포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여당 제출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

    한나라당도 당분간은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말까지 국회에서 기초연금 ‘줄기세포’ 공방이 이루어지겠지만, 마무리 시점에서 줄기세포를 포기하는 보수정당의 타협안과 기초연금안을 고수하는 민주노동당안으로 나뉘어질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으나 필자가 보기에 여당의원안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차상위계층 ‘지역가입자 100만명에 대한 보험료 지원’이다. 이는 유시민안에 없던 내용이다. 내용에서 이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보험료의 35%를 지원하는 산정기준이 표준소득월액 13등급(48만원)이어서 실제 지원금액이 너무 작다(연 1,814억원 소요).

    그럼에도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방안이 포함된 것은 전향적인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오래전부터 저소득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을 주창해 왔다. 하반기에 가입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보험료를 낼 수 없는 저소득 노동자 및 지역가입자 지원방안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를 바란다.

    정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주제가 국민연금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는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 문제다. 현재 비정규노동자 839만명 중 564만명이 사업장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다.

    국민연금은 제도 내부 가입자에게는 상당히 후한 연금 수혜를 제공하지만, 가입하지 못한 사각지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 만약 지금 상태가 방치되는 한 국민연금은 오히려 노후양극화를 초래하는 제도가 될 것이다.

    저소득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이 핵심 과제

    이에 하반기 국민연금 개혁에서 진보진영이 제기할 핵심 의제는 저소득 노동자들이 국민연금 안으로 들어오도록 보험료를 지원하는 일이다. 이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국가와 고소득계층의 책임이 강화되어야겠지만, 사회연대 취지에서 전체 사회구성원이 지원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할만 하다.

    외국의 경우 공적연금은 진보운동의 주요 의제다. 비록 고령화와 저성장 체제를 맞아 공적연금의 기존 권리가 저하하고는 있으나 연금투쟁을 진보세력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반기 진보운동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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