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주도 벤처캐피털' 도입 본격화
    재난 빌미 재벌 퍼주기···이게 개혁인가?
    “또 금산분리 원칙 훼손···재벌공화국 넘어 재벌왕국”
        2020년 06월 23일 05: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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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여당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Corporate Venture Capital)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를 허용해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인데, 실제론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한 금산분리의 대원칙을 허물어 결국엔 재벌 대기업의 경제적 지배력 강화와 부의 집중만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CVC 도입은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담겼다. 대기업 자본을 활용해 벤처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둘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에 여당은 법 개정 절차에 돌입했다. 김병욱·이원욱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일반지주회사도 금융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친기업 성향 소수 의원들의 개별적인 법안 발의로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기업 주도 벤처캐피탈 CVC 활성화 토론회’엔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을 비롯해 김태년 원내대표, 김진표 의원 등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정부여당이 내세우는 CVC 도입 추진의 가장 큰 명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다.

    사진=경실련

    정부여당, 또 금산분리 원칙 훼손
    CVC 도입 본격화…재벌의 경제력 집중 강화 우려
    “하나 남은 지주회사 규제마저 무력화하려는 것”

    정의당 배진교·장혜영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은 2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VC에 의한 외부 투자자금 유치가 허용되고, 그 자금이 총수일가가 소유한 벤처기업에 투자되게 된다면 CVC는 외부 자금을 동원한 투자 몰아주기와 같은 형태로 재벌총수의 사익편취, 경제력 집중 등 최악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정부의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 허용 방안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주회사 체제 하에서 재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규제 중 하나가 공정거래법에 담긴 ‘금산분리 원칙’이다. 이 법을 개정해 금산분리 원칙을 무력화해 벤처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입장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마지막 규제 장치인 금산분리 원칙이라도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CVC 도입에 줄곧 반대해왔다. CVC 소유를 허용할 경우, 재벌 대기업이 내부거래와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및 편법적인 경영승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말 국회 입법조사처도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는 금산분리 완화에 따른 경제력 집중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과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CVC 도입이 벤처산업 활성화를 불러올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기존에도 재벌 대기업들의 벤처기업 투자 길이 막혀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삼성처럼 지주회사가 아닌 대기업 집단, 하나금융지주와 같은 금융지주 회사들은 CVC를 이미 설립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고, SK와 같은 일반지주회사는 CVC 없이도 직접 지분 투자를 통해서 이미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벤처 생태계에서 가장 큰 자금줄인 정부의 정책 자금 역시 올해 설립을 목표로 하는 벤처펀드 규모만 5조원에 달한다”며 “대기업 일반지주회사에 CVC가 도입되지 않아서 벤처 생태계 자금이 부족하다는 전제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CVC 도입 추진 이면엔 지주회사 규제를 완전히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경신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 지주회사의 자회사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재벌 대기업들이 지주회사로 갔고, 세습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이용해왔다. 그리고 현 정부에선 지주회사 규제 자체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CVC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주회사 규제 자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너무나 익숙한 수법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 끝없이 예외 규정을 만들고 결국 2009년 폐지해버렸던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다”며 “하나 남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이렇게 심각해서 그나마 하나 남아있는 지주회사 규제마저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 CVC 도입의 저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벤처혁신을 원한다면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서 기술탈취부터 막아야 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인해 기회가 없는 것을 풀어주기 위해 재벌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차등의결권 도입으로 대주주 권한 강화까지 추진
    “재벌공화국 넘어 재벌 왕국 만들려 하나”

    정부여당은 CVC 도입과 함께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등의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이란 특정 주주에게 한 주당 2~10까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자는 뜻이다.

    정부는 비상장 벤처기업에만 차등의결권 도입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관련 내용을 담은 벤처기업법 개정안엔 차등의결권과 관련한 규정을 모두 시행령으로 넘겼다. 상장 벤처기업이나 일반 대기업까지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안 그래도 소수 주주의 권리 보장이 취약한 상황에서 차등의결권까지 도입되면 대주주는 기업 내에서 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기업의 중요한 결정이 대주주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는 재벌 세습을 제도화해줌으로 인해서 재벌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넘어서 재벌 왕국을 만들어주는 제도”라고 규정했다.

    재난 빌미로 재벌 퍼주기 하는 문재인 정부
    정의당·시민사회, 법안 저지 위한 강력 투쟁 예고
    “재난자본주의 1호법…재벌 뒤 봐주라고 180석 준 것 아니다”

    인터넷전문은행법 추진 이후 금산분리 원칙을 허무는 작업들은 이 정부 아래서 꾸준히 추진 중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과 진보정당은 인터넷전문은행법 이상으로, 정부여당의 CVC도입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상인 교수는 “CVC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재난자본주의 1호법”이라며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면서 벤처혁신을 위해서 CVC를 도입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주장을 하며 재난자본주의 입법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촛불혁명으로 시민들이 재벌 뒤를 봐주고 세습을 영구화, 법제화해주라고 민주당에게 180석을 준 것도 아니고,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켜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이 분명히 의사를 표시할 때가 됐다”며 정권 퇴진운동까지 언급했다.

    장혜영 의원도 “CVC 도입 이후에 어떤 조건을 달아도 이는 결국 점진적이고, 강고한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 요구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산업은행의 의결권 지분율을 확대해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 대주주 요건까지 완화했다”며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어떤 한 요구도 답은 하나다. 시작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정부여당의 금산분리 완화를 단호히 막아설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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