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1월 한인 20여명이 모여 재일 최초 사회주의그룹 흑도회 결성. 동경 이여성의 집에서 결성. 20여명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음. 이여성은 경북 칠곡의 만석군의 장남. 1개월도 못가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박렬파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김약수(다수파)의 노선 차이로 해산. 1923년 1월 김약수 이여성 송봉우 김종범 등 60여명으로 사회주의단체인 북성회를 결성.
1923년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국내로 귀국.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였는데 대박을 터트림. 새로운 사상으로 모여든 엘리트들의 연설에 인민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음.
김약수 등은 생각을 바꿔 아예 국내에 체류하기로 결정. 23년 10월 재동에서 1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건설사를 조직. 북성회는 하루가 다르게 도약했지만 문제가 발생. 일본에 남아있는 회원들의 항의가 계속됨. 1924년 11월 조직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북풍회를 조직함.
1925년 4월 17일 화요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회와 함께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 이후 화요회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당에서 이탈. 당을 결성한 것이 아니라 협의를 위한 자리였다고 주장. 당은 화요회의 당으로 전락.
해방 후 김약수는 고향 부산 동래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됨. 초대 국회부의장으로 선출. 당시 국회는 대통령을 의회가 간선으로 선출. 숫자로 불리한 이승만이 남로당프락치사건을 조작해 김약수 등을 구속.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김약수는 자진 월북함.
1959년 반당 반혁명 혐의로 숙청되어 수용소로 수감됨.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음.
조선노동당 회관 터 / 운니동 노인회관
1924년 8월 전일 이남두 이극광 김연희 등이 조직한 공개단체. 비밀전위조직은 스파르타쿠스단. 7인으로 구성. 무산노동자의 단결과 공산주의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내걸었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이남두와 이극광은 러시아교습소를 차리고 동향을 탐지.
11월 기관지 프롤레타리아를 발간하던 중 발각되어 전일 이남두 이극광이 체포됨. 전일은 곧 석방되고 이후 석방된 이남두 이극광은 러시아 연해주로 도주.
김연희·이충모 등은 4월부터 북풍회·화요회·무산자동맹회와 합동위원회를 조직. 4월 17일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 여름에 러시아에서 돌아온 이정수와 김덕한 등은 강력 반대. 두 세력은 가을까지 계속 충돌했고 결국 결별함.
합동파는 정우회가 탄생하자 발전적으로 해소함.
조선노동당의 대표격인 전일은 비극적으로 사망. 1925년 여름 물난리가 나자 사회주의자들은 구제위원회를 조직. 집행위원장을 맡은 전일은 현장을 독려하다 수마에 휩쓸려 허무하게 세상을 떠남.
북풍회 회관터 / 재동 84-1
1921년 11월 한인 20여명이 모여 재일 최초 사회주의그룹 흑도회 결성. 동경 이여성의 집에서 결성. 20여명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음. 이여성은 경북 칠곡의 만석군의 장남. 1개월도 못가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박렬파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김약수(다수파)의 노선 차이로 해산. 1923년 1월 김약수 이여성 송봉우 김종범 등 60여명으로 사회주의단체인 북성회를 결성.
1923년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국내로 귀국.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였는데 대박을 터트림. 새로운 사상으로 모여든 엘리트들의 연설에 인민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음.
김약수 등은 생각을 바꿔 아예 국내에 체류하기로 결정. 23년 10월 재동에서 1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건설사를 조직. 북성회는 하루가 다르게 도약했지만 문제가 발생. 일본에 남아있는 회원들의 항의가 계속됨. 1924년 11월 조직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북풍회를 조직함.
1925년 4월 17일 화요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회와 함께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 이후 화요회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당에서 이탈. 당을 결성한 것이 아니라 협의를 위한 자리였다고 주장. 당은 화요회의 당으로 전락.
해방 후 김약수는 고향 부산 동래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됨. 초대 국회부의장으로 선출. 당시 국회는 대통령을 의회가 간선으로 선출. 숫자로 불리한 이승만이 남로당프락치사건을 조작해 김약수 등을 구속.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김약수는 자진 월북함.
1959년 반당 반혁명 혐의로 숙청되어 수용소로 수감됨.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음.
조선노동당 회관 터 / 운니동 노인회관
1924년 8월 전일 이남두 이극광 김연희 등이 조직한 공개단체. 비밀전위조직은 스파르타쿠스단. 7인으로 구성. 무산노동자의 단결과 공산주의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내걸었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이남두와 이극광은 러시아교습소를 차리고 동향을 탐지.
11월 기관지 프롤레타리아를 발간하던 중 발각되어 전일 이남두 이극광이 체포됨. 전일은 곧 석방되고 이후 석방된 이남두 이극광은 러시아 연해주로 도주.
김연희·이충모 등은 4월부터 북풍회·화요회·무산자동맹회와 합동위원회를 조직. 4월 17일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 여름에 러시아에서 돌아온 이정수와 김덕한 등은 강력 반대. 두 세력은 가을까지 계속 충돌했고 결국 결별함.
합동파는 정우회가 탄생하자 발전적으로 해소함.
조선노동당의 대표격인 전일은 비극적으로 사망. 1925년 여름 물난리가 나자 사회주의자들은 구제위원회를 조직. 집행위원장을 맡은 전일은 현장을 독려하다 수마에 휩쓸려 허무하게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