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정, 대남 비난 담화
    청와대 “신뢰 훼손” 경고
    정세현 “김정은,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은 관계개선 여지 남겨놓은 것”
        2020년 06월 17일 03: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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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우리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남북 관계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북한은 전날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17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명의의 담화문을 내어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 비난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감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북한은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등에서도 군대를 주둔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 공화국 주권이 행사되는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이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할 연대급 부대들과 필요한 화력구분대들을 전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수위 높은 비난도 이어가고 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도 이날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발언을 문제 삼아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며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김 제1부부장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등에 대해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다짐이 아닌 변명과 술수로 범벅된 미사여구”라며 “신뢰가 밑뿌리까지 허물어지고 혐오심은 극도에 달했는데 기름 발린 말 몇 마디로 북남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남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한 굴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로 줄달음치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 이상 북남관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굳어질 대로 굳어진 우리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물밑에서 제안한 특사를 거절한 사실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남조선 당국이 특사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며 “남측이 앞뒤를 가리지 못하며 이렇듯 다급한 통지문을 발송한 데 대해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특사 파견을 제안했다.

    통신은 “남조선 집권자가 ‘위기극복용’ 특사파견 놀음에 단단히 재미를 붙이고 걸핏하면 황당무계한 제안을 들이미는데 이제 더는 그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며 “김여정 제1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이 특사파견과 같은 비현실적인 제안을 집어들고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시늉만 하지 말고 올바른 실천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북한의 이 같은 연쇄적 도발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을 원색 비난한 것 등에 대해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맞섰다.

    윤 수석은 “그간 남북 정상 간 쌓은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며, 북측의 이런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감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이 대북특사 파견 비공개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며 대북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에도 도움 안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동사무소 폭파장면(영상 캡처. 국방부)

    여당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금도 넘은 행위”

    북한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더불어민주당도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북쪽의 이런 행동은 반짝 충격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한국인들의 마음에 불안과 불신을 심어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가져올 뿐”이라며 “판문점선언의 상징을 폭파하는 북쪽의 행동은 이 금도를 넘었다고 판단된다. 북쪽이 더 이상의 도발을 중지하고 즉각 대화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정상 간 남북합의를 깨뜨리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명백한 도발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대남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것에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 북한의 도발행위는 복잡한 한반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뿐”이라며 “북한은 어렵게 쌓은 남북 간 신뢰를 허무는 이런 도발행위를 즉각 중단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추가도발이 있을 경우에는 북측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세현 “김정은,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은 관계개선 여지 남겨놓은 것”

    국내 정치권 안팎에선 북한의 이 같은 도발을 엄중하게 판단하면서도 북한이 남북관계를 완전히 훼손하는 상황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UN 대북제재에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면서 경제발전 목표가 하나도 달성이 안 되니까 북한 주민들로부터 김정은을 비롯한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을 단속하기 위해 남쪽을 상대로 적대적인 행동을 하면서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 수석부의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과거의 관계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여지는 살려놓았다”며 “김여정 부부장이 일종에 악역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에 관해선 “(북한이 사소한 분쟁을 야기하며) 피곤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을 벌이면 우리 국민여론도 그렇고, 미국의 대북강경론을 불러 일으킨다”며 “북한이 아무리 막가파라고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까지 저지를, 그 정도 바보는 아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완전 철폐 가능성에 대해선 “쉽지 않은 일”이라며 “북한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선 국제사회와 협력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지원 전 의원도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예고한 대로 추후 금강산 관광시설 폭파나 국지적 군사 도발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정부와 미국이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대북정책으로서 실효를 다 했다며 남북경협을 위한 새로운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전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햇볕정책,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상호주의 정책도 20년쯤 된 정책들이다. 이 정책들도 각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금강산이 폐쇄되기 직전에도 관광지로써의 자연적인 매력보다는 국가가 지원해서 수학여행 보내는 그런 곳이었다. 과연 북한이 만족할 만큼의 경협이 되겠나”라며 “개성공단도 이미 불안정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개성공단에서 다시 사업을 영위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실질적 성과가 있는 남북경제협력에 대해 여당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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