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연락사무소 폭파
    남북 위기, 실천 없이 해결 없다
    [기고] 대북특사는 물론 정상회담으로도 현재 국면 전환하기 어려워
        2020년 06월 17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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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김여정의 담화에 이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까지 실행했다. 그리고 추가적 조치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도 강한 유감의 입장을 밝히면서 그렇지 않아도 경색 국면이던 남북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런 정세에 대해 이도흠 선생이 급하게 기고문을 보내와서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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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남한과 북한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3일에 담화를 통해 건물 폭파를 예고한 지 사흘 만에 북한은 속전속결로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따라 이를 세운 것이기에 이는 판문점 선언의 파기를 의미한다. 사실상 남북관계는 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미 상황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놓였고, 북한은 대북특사마저 거절하며 추가도발을 예고하고 있다. 추가도발의 수준에 따라 남북한 관계가 상당한 진폭으로 출렁일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장면(방송화면 캡처)

    외부 환경도 좋지 않다. 북한에 가장 설득력을 갖는 중국은 남한과 경제 교역과 동아시아 질서의 면에서는 북한을 달래기는 하겠지만, 사드 배치나 미국의 대 중국 전략과 남한의 역할을 생각하면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오랜 동안 중국 포위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 들어 무역제재와 코로나로 인하여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한반도 주변의 4강이 모두 권위적인 정부나 지도자가 권력을 잡고 있고, 트럼프 등장 이후 미일동맹은 강화되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는 악화하였고 한일관계는 최악이며, 국제질서는 협력보다 대결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전환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전쟁의 조건은 이미 충분하기에, 여기에 지도자의 오판과 광기만 더해지면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종전선언으로 가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과 북한, 남북의 정상이 만나 남북화해와 평화적 교류,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과 통일의 꿈이 8천만 민족의 가슴에 메아리쳤다. 작년 6월 30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고, 남과 북, 미국의 정상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이는 상징적인 종전선언이었다. 무엇보다 북한을 악마화하고 냉전을 강화하여 독재를 정당화하는 정권 대신 촛불을 토대로 민주주의를 펼치고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정권이 남한에 들어섰다. 북한에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내부적으로는 인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대외적으로 활발한 교역을 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는 자가 위원장에 올랐다. 워싱턴 정가의 대한반도 정책과 군산복합체의 로비를 떠나 경제논리로 남북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자가 미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실질적인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끌어내기는커녕, 사태를 이리 악화시킨 것인가.

    이런 때 필요한 것이 대립적인 것을 자신 안에 모시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대(待對)의 사고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가뭄이 심하게 든 2015년을 제외하고 경제가 계속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고, 농업개혁을 통해 연 350만t에서 503만 톤으로 식량증산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경제나 식량 문제 모두 안정 기반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기에, 언제든 가뭄 등의 변수에 따라 탈북자가 속출한 고난의 행군 시대로 되돌아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남한의 21배의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제 사모펀드 ‘SRE 미네랄스’와 합작 개발하기로 한 정주시의 희토류의 가치만 약 65조 달러(약 6경 8,799조 원)에 이른다.(<Voice of America> 2013년 12월 7일) 잠재매장량까지 따지면 서해유전의 가치를 1경 5천 조 원이라고 파악하는 이도 있다. 대북제재만 해제하면, 북한은 광물자원을 팔아 식량위기에서 벗어남은 물론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체제 안정을 확고히 할 수 있다.

    북한 사회는 인민이나 지도자 모두 미국의 폭격과 침공에 대한 두려움이 지대하다. 미국은 작전계획 5027과 5055에 기반하여 언제든 평양을 폭격하거나 핵무기 제거를 구실로 이라크처럼 북한을 초토화할 수 있고 지도자를 처단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평양과 영변 폭격을 실행 단계로 옮겼는데, 한 번은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폭격기가 발진하기 직전에 이를 중지하였으며, 한 번은 시뮬레이션을 한 후에 미군의 희생자가 많은 것 등의 요인으로 사전에 취소하였다. 북한은 김일성 집권기부터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확보해야만 핵 억지력으로 미국의 침공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결국 핵무력을 완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先) 비핵화 후(後) 경제제재 해제’나 ‘리비아 모델’은 북한이 절대 받을 수 없는 카드다. 북한에서는 리비아가 미국의 요청대로 핵을 포기하였기에 결과적으로 미국의 침공과 아랍의 봄을 불렀고 결국 카다피가 죽음을 맞았다고 분석한다. 이 상황에서 북한에 핵을 먼저 포기하라는 것은 무장해제를 하라는 것이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및 평화협정을 맞바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런 토대에서 북한은 때로 도발을 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협상을 도모했다. 조미(북미)정상회담과 북남(남북)정상회담, 더 나아가 6자 회담은 대북제재 완화와 국제교역, 체제 보장,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을 일거에 이룰 수 있는 프로세스다. 개성공단 자리만 하더라도 이곳은 최우선 남침 통로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북한의 최정예 군대인 6사단과 62포병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2003년 6월 공단 조성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개성시 판문읍에 주둔하고 있던 군 기지들을 북쪽으로 최대 10km까지 후퇴시켰다. 유사시에 10km의 거리와 군사요충지가 갖는 작전의 유리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북한으로서는 말 그대로 ‘통 큰 양보’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는 이를 폐쇄하였고, 문재인 정권에서도 숱한 요청에도 개성공단의 재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났다. 남북한이 모두 크게 기대했지만, 하노이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북한 정상이 만나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발전으로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는 ‘4.27 판문점 선언’을 하였다.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자”는 “9.19 평양공동 선언”도 하였다. 이에 따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 및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남북한 철도 연결 등의 조처들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대북제재의 완화 등 실질적인 변화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시늉만 있었을 뿐이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과 4대 합의의 국회 비준이 사태 해결의 디딤돌

    몇몇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회주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실패하자 체제의 위기를 외부의 위협으로 돌파하기 위함이라고, 또 김여정 부부장이 권력을 강화하려는 술책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 여러 요인들이 얽혀 있고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있기에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설혹 그런 목적으로 북한이 폭파를 수행했다 하더라도 이런 요인은 지극히 지엽적인 것이며, 이를 주요 원인으로 간주하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6.25 이후 북한이 호전적인 행위를 한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남북의 화해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긴장으로 돌변한 이번 사태만큼은 미국과 남한 정부에게 대부분의 책임이 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매파들이 한반도를 ‘냉전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유지해야만 위기를 고조하여 무기를 팔아먹고 한미일을 필두로 하는 중국 포위전략을 추진할 수 있기에 온갖 훼방질을 하였다. 미국 정계는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고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를 고집하며 오히려 북한을 더욱 압박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일국의 지도자로서 납득할 수 없는 발언과 행동을 일삼았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로 권력을 획득했음에도 미국의 눈치만 보며 중개자나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개성공단의 재개나 대북 전단 살포중지는 유엔이나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임에도 이를 전혀 행하지 않았다.

    대북전단 살포만으로 국한하더라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의 지속적인 살포와 문재인 정권의 방관은 충분히 분노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선전전을 중요한 군사전술로 간주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이는 무력도발을 감행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한다는 협정을 한 상황에서 이는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위반이자 배신행위다. 더구나 ‘최고 존엄’에 대한 비방은 공화국에 대한 전면 부정이자 중대한 모욕이다. 조선조에 유교 사상이 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윤리의 지표와 생활의 준칙으로 작용한 것처럼, 북한사회에서는 주체사상이 그런 기능을 수행한다. 대개 명분을 주고 실리를 얻으려 하지만, 북한은 다른 것은 다 내주어도 자존심과 명분만은 지키려 한다. 이런 이들에게 지속적인 전단 살포와 배신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북한에 대북특사를 파견하려다가 거절당했다. 이는 정부든 대통령이든 아직도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증좌다. 현 상황에서는 설혹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도 북한은 거세게 거부할 것이다. 지금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한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000만 겨레 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으며 … 어떠한 정세 변화에도 흔들려서는 안 될 확고한 원칙”이라고 강조하였다. 북한의 일련의 조치는 다소 과격하지만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면서 남북정상간 합의조차 위반하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정부와 국회는 당장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통과시키고, 국회는 남북정상간 4대 합의(6.15, 10.4, 4.27, 9.19선언)를 비준 동의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하여 북미 교착상태에 활로를 열고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야 한다.

    멀리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비전을 갖고 미국과 한국의 냉전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4강과 세계 여론을 움직여 대북제재를 완화함은 물론,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박하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주도해야 하지만, 전쟁 위기의 시급한 상황에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주 독립국의 정상으로서, 촛불정권의 수장으로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지도자로 거듭날 것을, 국회가 한반도 평화의 견인차가 될 것을 촉구한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전 민교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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