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파시즘을 우려한다
    [상선여수] “고시” 하나만으로 손쉽게 집회 규제
        2020년 06월 16일 03: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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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밤 8시 경에 SNS를 통해 급한 연락이 왔다.

    “오늘 종로구청이 16시쯤 아시아나 케이오(KO) 농성장에 다녀갔습니다. 내용과 예상 지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구청이 자진 철거를 요청했고, 07시 이전 숙박 농성자 2인만 있을 때 철거 시도가 예상됩니다. 관련하여 내일(월요일) 농성장으로 올 수 있는 동지들은 06시~06시 반까지 농성장에 오셔서 천막 사수 투쟁에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월요일 새벽 7시 정도에, 사람이 없을 시간을 틈타 용역들이 다시 천막을 철거하러 올 수 있으니 새벽 6시까지 와 달라는 비상연락이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매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오늘, 6월 16일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용역들에 의해 두 번째로 천막이 철거되었다. 새벽 6시 30분에. 근거는? 코로나 감염병 예방법에 의한 집회 금지구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5월 11일에도 종로구청은 수백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집회물품을 빼앗고, 농성천막을 철거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빌미로 정리해고가 되어 생존의 기로에 선 아시아나케이오지부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천막을 쳤다. 그러자 종로구청은 지난 5월 26일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한다면서 대학로 일대와 종로구청 주변 등에서 집회시위를 제한한다는 “집회금지 고시”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 지역은 서울시가 정한 감염병예방법에 의한 집회금지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막을 근거가 없으니까 꼼수를 생각해 낸 것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고시 제2020-64호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집회제한 고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49조제1항제2호에 따라 감염병(코로나19)의 확산방지를 위해 관내아래 장소에서 집회시위 등 집합을 제한하고자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20년 5월 26일

    종 로 구 청 장

    1. 집회제한 장소

    ○ 종로1가~종로6가 주변 도로 및 인도
    ○ 대학로 일대(이화사거리~혜화로터리, 마로니에공원 및 주변 도로와 인도)
    ○ 우정국로~안국동로터리 주변 도로 및 인도
    ○ 종로구청 앞~종로구청 입구 교차로 주변 도로 및 인도
    ○ 종로구청 앞~조계사 앞 교차로 주변 도로 및 인도
    ○ 기타 종로구 홈페이지를 통해 고지하는 관내 장소

    2.적용기간 : 2020년 5월 26일 00시부터 감염병 위기 경보 심각단계 해제 시 까지

    3. 금지내용 : 집회금지장소 내 일체의 집회?시위 등 집합행위 금지

    4. 위반 시 처벌 : 위반한 집회 주최자 및 참여자 대상 300만원 이하의 벌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80조 제7호

    5.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사전통지를 생략합니다. ※「행정절차법」제21조제4항제1호

    6. 이 고시는 고시한 날부터 시행합니다.

    코로나 위기라지만 걱정 없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광장에서 억울함을 외쳐야만,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들 죽음이, 감염이 두렵지 않겠는가? 우리도 어린 자식과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아이들이 고3 수험생이기도 하다. 현재 코로나에 취약한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도 있다. 오죽하면 거리에 서겠는가?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을 기업주와 정부가 보호한다면 왜 굳이 천막을 치겠는가? 하루에도 수십명이 다치고, 죽는 죽음의 뉴스를 보지 않게 국회가 조치를 하고 있다면 한 여름 땡볕에, 숨이 컥컥 막히는 마스크까지 쓰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인 13일, 프랑스 최고행정법원(Council of State)은 “코로나19로 인한 방역문제와 감염 우려가 더 이상 대중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UN의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코로나19 위협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며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10대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도심 4개 지역을 집회금지 장소로 정한 지 오래다. 경찰도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구청이 자의적으로 “고시” 하나만으로 손쉽게 집회를 규제한다. 평소 자주 집회가 있던 대부분의 장소가 해당한다.

    오늘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이에 대처한다고 노래방과 주점 출입시 QR코드를 찍게 강요한다. 감염자와 주변 전체에 대해서는 CCTV와 핸드폰 사용내역에 대한 촘촘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국민 여러분의 정확한 정보제공만이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매일매일 주입하고 있다. 스멀스멀 거대한 감시체계가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감염병에 대한 방역이라는 제약 조건에서도 어떻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것인지를 최우선가치로 두고 고민해야 한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손쉽게 막아버린 종로구청의 부당한 처사가 규탄되어야 하고, 원상회복 조치가 있어야하는 이유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로 새로운 통제체제의 강화가 이어지는 것은 심히 우려된다.

    사진=곽노충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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