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 “재난지원금
    이주민 배제 평등권 침해”
    외국 다수 포함해 지원···“바이러스는 인종 국경 차별하지 않는다”
        2020년 06월 11일 03:4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서울시와 경기도가 코로나19 재난긴급지원금 정책에서 이주민을 배제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이주민이 배제되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 재난긴급지원금에 이주민 배제는 ‘차별’
    “이주민 취약성 악화…지역사회 피해 회복 효과도 떨어뜨려”

    인권위는 11일 발표한 결정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긴급지원금 정책에서 외국인주민이 배제되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3월 18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취약계층에 대해 소득기준에 따라 재난긴급생활비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경기도는 같은 달 24일 소득과 나이에 상관없이 전 도민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의 대상에 이주민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2009년 서울시에서 12년째 거주하는 외국국적동포와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자녀를 혼자 키우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등 이주민 당사자들과 이주인권단체는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에서 이주민도 똑같이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가 재난긴급지원금 정책에서 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주민을 배제한 것은 차별행위이자 인권침해”라며 4월 2일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재난긴급지원금 정책에서 주민으로 등록돼있는 이주민을 배제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 헌법 제11조와 인종차별철폐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에 위반되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헌법과 지방자치법 등 국내법령,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UN과 국제사회의 결정 등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다.

    아울러 “재난으로 인해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음이 충분히 예측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을 때 해당지역 내 외국인주민의 취약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지역사회 내 피해 회복의 효과를 떨어뜨리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위의 권고에 서울시는 결혼이민자, 난민인정자 등 일부 외국인은 포함하여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최소화했고, 긴급복지 물품 지원 등 다른 지원을 통해 등록외국인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도는 주민등록전산시스템에서 전체 현황 파악이 불가한 외국인을 부득이하게 제외했으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2020년 5월 4일 조례를 개정해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에 대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고 의견을 제출했다.

    방송화면 캡처. 박스 안은 이주공동행동 기자회견

    국제기구 “경제지원 프로그램에 이주민 배제 안 된다”
    독일 베를린시, 국적불문 프리랜서와 작은 사업장 모두 지원
    이주민 배려해 다양한 언어로 정보 제공도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비춰봤을 때 인권위의 이 같은 결정은 당연하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한 전지구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주민들이 재난긴급 소득지원 등 이러한 경제지원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코로나19 지침’을 발표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위원회도 지난 4월 6일 채택한 성명서에서 “인권에 기반하지 않는 국가의 조치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가장 취약한 집단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감염병 퇴치를 위한 필요한 조치의 결과로 단 한 사람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미 독일, 캐나다, 미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외국인을 지원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시는 국적을 불문하고 예술가,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포함해 세금납부 번호를 보유한 자에 대해 긴급지원 대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5명 이하 사업장에 5,000유로(약 678만원), 직원 6명~10명 이하 사업자에게는 1만 5,000유로(약 2,036만 원)를 지급하도록 했다.

    특히 별도 공지를 통해 “베를린의 수많은 소규모 사업자들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다”며 “그들에게 지원 제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관련 기관이 모여 다양한 언어로 정보를 제공하며, 신청서 작성이나 번역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국민 1인당 10만 엔(약 113만 원)을 재난지원금 성격의 ‘특별 정액 급부금’ 지급 대상을 일본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으로 정했다. 다만 외국인도 일본 정부가 주는 ‘특별 정액 급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는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데, 실직자 및 격리대상자에게는 최대 16주간 지급한다. 이 같은 혜택을 외국인의 경우 유학생을 포함해 임시 외국인근로자 역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포르투갈은 모든 이주민, 난민에게 한시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고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이주공동행동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종과 국경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주인권단체들이 모인 이주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인권위의 결정은 서울시와 경기도의 재난 긴급지원금 정책이 합리적 이유 없이 외국인주민을 차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의 당사자 외에도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해 여전히 정부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되고,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이주민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모두 인지할 것을 요구한다”며 “또한 이들의 인권 보호와 평등권 수호를, 인종차별과 혐오를 종식시키기 위한 모든 필요한 행위를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가족관계이거나, 영주권을 취득한 자 외에는 이주민을 모두 배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범적 방역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이주민을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서 끝내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종과 국경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