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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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1일 07: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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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19일의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성원부족으로 또 유회되었다. 이번에도 조직혁신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하도 겪어서 이제는 화도 안 난다. 

    작년 대의원대회는 노사정위원회 안건으로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세 차례 유회되었다. 올해는 다섯 차례 모두 성원부족으로 유회되었다. 올해 처리된 안건은 겨우 임원선출, 그리고 9월이 되어서야 처리할 수 있었던 작년 사업평가와 올해의 예산안, 그리고 하반기 사업계획 뿐이다. 그리고 최근 한 달 동안에는 조직혁신안을 다루는 대의원대회가 두 번이나 유회되었다.

    이 상황에서 책임전가 타령인가. 그래서 마음이 편안한가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면, 민주노총 집행부를 포함한 각 연맹 집행부, 지역본부 집행부, 그리고 현장의 활동가들까지, 모두 반성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민주노총에 크든 작든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전국회의, 노연, 노동자의힘, 전진 등 모든 정파와 소그룹들도 반성적으로 평가하면서 해결대책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이 상황에서만큼이라도 상대방에게만 모든 책임을 넘기고, 나는 죄 없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곳곳에서 확인되는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고 실망스럽다. 두 번의 유회사태 직후, 내가 들은 다양한 반응들의 일부다.

    “(전국회의가 뿌린 직선제 추진 주장의 성명서를 보면서) 전국회의 이거 쇼하는 것 아닌가”, “(하나 둘 빠져나가는 대의원들을 보며 회의장 밖에서) 이거 정파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전진은 소속 대의원들 다 있냐”

    “(성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각 연맹별로 대책회의를 하고 속개한 회의에서 전재환 위원장이 금속연맹 대의원들의 의견에 따라 휴회로 처리하자고 한 발언을 두고) 전진은 직선제를 처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

    “(각 정파 활동가 몇몇이 상대를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혹시 저쪽에서 의도적으로 대의원들을 내 보낸 것 아닌가”, “(유회 직후) 민주노총 조준호 집행부의 무능력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오지 않았거나 간 대의원들 모두 혼내야 한다” 등등등…

    나도 사실 대회장에서 직선제를 반대하는 한 의견그룹 성향의 대의원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직혁신안을 설명하는 동안 성원의 불안함을 알고, 대회장 밖 입구에서 민주노총 조직실장 등 몇몇과 함께 하나 둘 빠져나가는 대의원들에게 가지 말 것을 호소하면서,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빠져나가는 대의원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일부 대의원들이 난처해하면서 빠져 나갔다. 안타깝지만, 밤늦은 시간 당연한 현상일 수 있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지난 19일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사진=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혼란, 무기력 극복 못하면 모두 망한다

    회의의 연이은 유회사태는 민주노총의 권위와 신뢰의 상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 순간 발생한 문제가 아니고, 긴 시간 누적되어온 결과물이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져서 조준호 위원장이 아니라 다른 그 누가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더라도 쉽게 극복하기 힘든 문제가 되어 버렸다. 민주노총 간부를 하는 것이 뿌듯하지 않은데, 대의원과 중앙위원들이 자리를 벗어난다고 탓할 수 있겠는가.

    또 있다. 대의원과 중앙위원들은 회의에 지쳤다는 것이다. 최근 3년간의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보자. 한시도 편안하게 회의를 해 본 기억이 없다. 격렬한 논쟁과 갈등, 대립, 그리고 쪽수확인만이 중심을 차지했다. 다수는 ‘쪽수’로 몰아갔고, 소수는 격렬하게 반대하거나 때로는 회의를 무산시키는 방법도 썼다. 충돌하는 의견을 하나로 모아보거나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상황이 이런데, 중앙위원과 대의원들이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탓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민주노총 회의에 참여하면 피곤하고 괴로운데 말이다.

    웬만한 논쟁 정도로는 미동도 하지 않는 나도 참관석에 앉아서 보고 있노라면 속 터지고 재미없는데, 일반 중앙위원과 대의원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런 대의원들이 참여하지 않아서 회의가 유회된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물론 황희 정승처럼 경중 없이 “너도 옳고(틀렸고) 또 너도 옳다(틀렸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분명 그 책임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 오기까지를 되돌아보면, 분명 그 책임의 크기는 다르다. 그렇기에 책임을 모두 공평하게 분배하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크든 작든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또 적으면 적은 대로 그 무게만큼 반성을 앞세우고,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떠넘기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 진보진영의 큰 기둥인 민주노총의 혼란과 무기력을 극복하지 못하면, 모두가 망할 수 있는 그런 시기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힘들게 했던 세가지 쟁점이 해소됐다

    대의원대회가 또다시 유회되어 조직혁신안을 처리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하반기 사업계획을 결의했다. 사업계획을 결의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안팎을 힘들게 했던 세 가지 쟁점이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떤 조건과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라는 분석과 평가를 떠나, 그것은 9월19일 대의원대회가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이제부터라도 논쟁은 조금만 하고, 모두가 하나로 단결해서 이 상황을 타개하라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명령인 것이다.

    첫째, 지난 3년간 민주노총 내부를 격한 대립으로 몰아넣었던 노사정위원회 문제가 해소되었다. 대의원대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용도폐기를 선언했다. 둘째, 한국노총과의 공조와 통합문제도 갈등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또한 해소되었다. 대의원대회는 한국노총과의 연대파기를 선언했다. 셋째, 대선국면에서 진보진영을 논란의 장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노무현 퇴진투쟁 문제도 해소되었다. 대의원대회에서 아무런 이견 없이 노무현 퇴진투쟁을 결의했다.

    물론 이 세 가지에 대한 대의원대회 결의가 전략적 동의에 의한 것은 아니다. 전략적으로는 대의원 각자가 분명하게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전술적 동의에 그친다. 그래서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잠복되어 있다.

    그러나 최소한 조준호 위원장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아니 2007년 대선 때까지는 상황변화가 없을 것이기에 큰 근심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9월19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큰 매듭 세 개를 제거했다.

    그래도 민주노총이 희망이다

    많이 늦었다. 그리고 긴 시간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하면서, 허송세월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등을 돌렸고, 서로 의심했고, 많이 무기력해졌다. 주장은 있으되 대화는 사라졌고, 전선을 함께 지켜온 동지들 간의 따뜻하고 마음 편한 소주 한잔마저 사라졌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넘어설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 고통의 시간동안에도 노동자계급은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금속노동자들이 선두에서 어두컴컴한 기업별노조를 해체하면서 산별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 공공연맹을 비롯한 나머지 연맹들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일군의 현장활동가들이 ‘말이 아닌 실천’을 모토로 전국현장활동가조직을 만들고 있다. 또 그동안 민중연대를 주도했던 노선의 동지들이 이제 어느 한 노선의 힘만으로는 상설연대체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포항건설노조 동지들이 한국독점자본의 상징인 포스코 점거농성을 하고, 곳곳에서 비정규직 동지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사실들은 각자의 노선과 정파를 떠나,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희망의 싹이 아니던가. 여기에서 희망을 읽는다. 그래도 민주노총이 희망이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11월15일부터의 무기한 총파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자. 이 상황에서도 비겁하게 뒤로 빠지지 말자. 민주노총 집행부와 각 연맹 집행부, 지역본부와 현장의 활동가들 모두 혼신의 힘을 쏟아 보자.

    그리고 각 정파, 소그룹들도 무엇을 해야 이 투쟁을 성사시킬지 고민하면서 힘을 보태자. 그것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자. 지금까지처럼 적당히 조직되는 총파업으로 끝나거나 무산된 뒤, 상대방 비난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 우리 모두의 힘을 합쳐도 상황은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전진은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의 약칭으로 민주노동당 내 대표적인 정파로 좌파 노선을 대표한다. 민주노총의 경우 세칭 ‘중앙파’로 불렸던 쪽이 ‘전진’의 주요 축이 되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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