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파의 합리적 논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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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21일 02: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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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이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을 기록했다는 우울한 보도가 있었다. 자살의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1995년에 비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2배로 상승한 데에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 추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한계와 아이러니"

    언젠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인지 아니면 재무장관인지 하는 사람이 기자로부터 미국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어 문제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그것은 미국의 경제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취지로 답변했었던 것 같다. 빈부격차는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뜻이리라.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그 전체적인 운용이 시장중심적으로 전환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인드도 시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김영삼 정부 이래 현재까지 과거 독재정권보다도 오히려 민주화된 정부들이 개방과 자유화를 통한 시장주의의 확산을 주도했다는 것은 반독재민주화투쟁의 한계를 보여주는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어쨌든 우리사회 중간층 이하 사람들의 삶이 더욱더 고달파지고 있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상위계층과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시장화의 진전에 따른 경쟁격화가 그 주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이긴 하다. 시장의 효율성은 경쟁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우선 경쟁의 룰이 공정해야 하고, 심판이 룰 위반자를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의 경우 재벌의 시장독과점으로 인한 기업간의 불공정 경쟁이 가져오는 비효율성을 제거하여 중소기업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가 그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천박하거나 왜곡된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

    또한 부자집 아이들은 무지막지한 사교육비에 의존하여 엄청난 능력개발 투자를 받고 경쟁하는 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만 의존해서 경쟁해야 하는 경쟁의 불공정성 문제를 해소하여 개인 간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문제도 그러한 범주에 속할 것이다.

    물론 현재 시장과 경쟁 문제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담론구조는 위와 같은 경쟁의 공정성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독과점 재벌들이 더 열심히 국내시장을 차지하고 중소기업을 착취해서 수출만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하면서 모든 재벌관련 규제들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또는 소수의 인재가 모두를 먹여 살린다면서 그런 인재양성이 가능한 차별화된 교육시스템을 달성하기 위해 공교육에 대한 투자확대보다 평준화의 해체를 부르짖는 것이 시장주의자인양 떠들고 다니는 것이 우리사회의 담론수준이다.

    한편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경우라고 가정하더라도 경쟁은 항상 패배자를 생산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패배자들을 그냥 낙오자로 버려두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는 시장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상위목표인 사회 전체의 후생(행복) 증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더 중요한 과제이다.

    상식으로 알다시피 시장경제는 역사적으로 그 효율성을 입증하기는 하였으나 만병통치약은 아니고 시장실패라는 문제를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시장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는 빈부격차의 심화임은 상식일 것이다.

    따라서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분배정책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히려 세금감면, 복지축소, 민영화 등을 부르짖으며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체의 후생증가라는 보다 상위의 목표를 희생시키는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이다.

    분배는 헌법적 목표이자 수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언론과 재벌들이 주도하는 각종 경제단체와 경제연구소들 그리고 보수정치세력 등은 이와 같은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마구 유포하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분배는 위와 같은 경제학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우리헌법 전문에 나오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헌법적 목표이기도 하다. 또한 헌법상 평등조항에 기초한 배분적 정의의 달성이라는 헌법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실패의 치유라는 경제학적 상식과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이라는 목표를 무시한 담론들이 매일 대량으로 유포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가 시장을 둘러싼 논의에 있어 점점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정권을 담당해온 소위 민주정부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그 의지의 정당성과 순수성에 대한 인정문제를 떠나 시장과 사회전체의 후생을 둘러싼 좌우파간의 논쟁을 합리적으로 전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 우경화 민주정부 책임 가장 커

    그러나 현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객관적으로 좌, 우파 간에 분배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를 진행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환경을 이미 갖추고 있다.

    2005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6,291달러(재경부 자료)이다. 아마 올해를 기준으로 18,000달러대를 기록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경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지하경제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선진국들의 지하경제규모가 평균 10%대에서 20%대인 반면 우리나라는 30%대 또는 40%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지하경제는 부가가치 산정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를 양성화하기만 한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2만달러를 넘는 수준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지 않더라도 내후년 정도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 진입할 것이 확실하다.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한 시점은 대략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친 기간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독일은 1991년, 영국은 1996년, 미국은 1988년, 일본은 1987년 등이다(이상 재경부 자료). 우리나라 국민들이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고 있는 서독의 1987년 1인당 국민소득이 16,234달러로 2005년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과 같았다.

    "조선일보의 선정적 기사 또는 사기"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1987년 서독의 사회보장수준을 충분히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복지지출에 대해 말이 많은 자들은 1987년 서독이 1인당 국민소득 16,000달러를 가지고 어떻게 사회복지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는지 공부한 다음에 이야기해야 될 것이다.

    복지와 관련하여 최근 스웨덴의 총선결과를 두고 말이 많다. 중도우파연합이 47.4%(178석), 중도좌파연합이 46.6%(171석)을 얻어 우파연합이 좌파연합을 누르고 12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스웨덴, 일자리 못 만드는 무능정부에 민심 등 돌려’라는 제목의 선정적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9월19일자 3면.
     

    조선일보가 보도를 하면서 소개한 맥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스웨덴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2004년 실업률은 5.4%지만, 각종 복지정책에 숨어있는 실제적인 실업자까지 합하면 17%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스웨덴의 일자리가 1992년부터 2003년까지 0.4% 줄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면서 스웨덴 국민들이 일하지 않고서도 먹고 살기에 충분한 실업수당을 받기 때문에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한마디로 놀고먹는 복지병 때문에 스웨덴 경제에 많은 문제, 특히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득증가율이 둔화되는 현상이 발생했으니 우리나라는 스웨덴 방식으로, 즉 복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모델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지출 증대 극력 반대하는 자들, 이 질문에 답해보라

    맥킨지 보고서가 산출한 스웨덴의 실질 실업률은 다음과 같다. 2004년 공식 실업률 23만 9,000명(5.4%), 직장을 얻지 못한 대학원생 등 잠재적 구직자 10만 6,000명, 실업수당을 받거나 정부 보조 받는 취업자 14만명, 준실업상태인 임시직 근로자 13만 2,000명, 전업주부 등 일할 능력이 있지만 노동력에서 제외된 사람 21만 5,000명 합계 83만 2,000명에 실질 실업률 17%라는 것이다.

    스웨덴의 2004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38,852달러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대로 진입했던 해는 1988년이다. 우리나라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었던 1988년 이후 16년간 스웨덴은 어떻게 해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운영하면서도 1인당 국민소득 38,852달러의 고소득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거품을 물고 반론을 펴는 자들은 이러한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한편 맥킨지 보고서를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한 번 적용해보자. OECD통계에 의하면 2004년 현재 고용률(우리나라의 경우 경제활동참가율)은 한국의 경우 63.6%(2006. 8.현재 2,316만명, 통계청)이고, OECD 전체로는 65.1%(이하 OECD 자료에 근거함)이다. 한편 스웨덴의 경우 2004년 현재 고용률이 73.5%이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에 비해 대략 10% 포인트 높은 고용률(경제활동참가율)을 보이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스웨덴 수준의 고용률을 달성하려면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는 2,680만명(3,650만=만 15세 이상 인구수*73.5%)이상이 되어야 한다. 즉, 현재보다 300여만명 가량의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야 한다. 만약 현재 수준에서 일자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나라의 실업자는 300여만명이 더 늘어나는 결과가 된다.

    스웨덴 복지시스템 공격한 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

    그러면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공식 실업률은 매우 낮은데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을 공격하는 자들은 스웨덴이 복지국가를 운영하면서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고용률을 달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종사상지위별 취업자 통계자료(통계청)를 보면 2006년 8월 현재 무급가족종사자가 157만 4,000명, 임시근로자가 501만 8,000명, 일용근로자가 209만명으로 이를 합하면 868만명이 있다. 조선일보가 소개한 맥킨지 보고서의 기준에 따르자면 이들도 실질 실업률 산출시 실업자로 포함시켜 계산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전업주부 등 일할 능력이 있지만 노동력에서 제외된 사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활동참가율 수준을 스웨덴 수준으로 높인다고 가정할 경우 300여만명이 늘어나야 한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자영업주는 623만명이나 되는데 이들 중의 일부도 준실업상태로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소개한 맥킨지 보고서 방식 계산대로 하면 우리나라의 실질실업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한 번 계산해보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먹고 살기 어렵고 복지나 제대로 된 일자리창출이 엉망인 나라에서 감히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과 복지시스템을 건설한 스웨덴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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