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고 노동자 배제한
    전국민고용보험법은 거짓”
    대통령, 사각지대 해소 강조?···현실은 고용보험위원회 합의도 무시
        2020년 06월 09일 07: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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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 안팎으로 ‘전국민고용보험’ 논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200만이 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고용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면 헛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는 9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로 생계위기에 고통 받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고용안전망을 보장하는 것이 21대 국회의 최우선 입법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유하라

    “특고노동자 배제한 전국민고용보험법은 거짓”

    코로나19 이후 부실한 사회안전망 문제가 부각되면서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전국민고용보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국민고용보험제 추진을 공식화한 데 이어, 9일 국무회의에서도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금의 위기를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민고용보험 논의엔 여전히 커다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청와대와 정부, 거대양당이 ‘전면 적용’이 아닌 ‘특례’ 적용을 고집하면서다.

    20대 국회는 사용자의 반대를 우려해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문화예술인마저도 특례로 고용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고용보험 적용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전속성’을 전제로 특수고용 중 산재보험법 특례규정이 적용되는 9개 직종에 대해서만 고용보험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속성이란 하나의 사업장에 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정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하나의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 중 시행령으로 정한 직종에게만 적용된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산재보험 전속성을 중심으로 적용하다보니 20만 대리운전 노동자 중 5명만 (고용보험제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전면 적용 없이 ‘전국민고용보험’을 논의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윤애림 박사는 “코로나19로 전국민고용보험에 대해 정치권이 앞장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가짜 자영인인 특수고용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전국민고용보험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특수고용노동자까지 고용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논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고, 특수고용노동자까지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 의결을 거쳐 발의되기도 했다. 당시 고용보험위는 전속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모든 노무제공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합의했다. 고용보험위엔 노동자 대표인 양대노총과 사용자 대표인 경총 등이 참여했는데, 노사가 이뤄낸 사회적 대타협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윤애림 박사는 “국회는 노사정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사회적 타협으로 제출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2년 가까이 논의하지 않다가 여론에 등 떠밀려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를 열흘 남겨놓고 겨우 두 시간을 논의했다. 그래놓고 예술인은 특례로 적용하고, 특수고용노동자는 21대 국회로 넘기겠다고 했다. 국회가 다시 한 번 특수고용노동자의 절실한 생존권 외침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유령인가요?
    “개인사업자라면서 소상공인 지원 등도 못 받아…
    특고노동자에게 고용보험 적용은 생존의 문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이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줄거나 아예 사라진 이들에겐 더 절박하다.

    오윤석 화물연대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출, 수입 물량이 떨어지면서 한 달에 20만원, 50만원도 못 버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도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40만 명의 화물노동자들은 고용보험까지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복임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은 “10만 학습지 교사들은 20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일터에서 쫓겨날 위기다. 쫓겨나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실업급여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정순 셔틀버스노조 총무국장은 “전국의 30만 대의 셔틀버스 중 대부분 차량이 고용보험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며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 적용은 생존권”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퇴직금도, 연금도 있는 정규직 노동자과 달리,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에겐 고용보험은 생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방과후 강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소득이 전혀 없는 직종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은 “방과후강사는 모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직종”이라며 “형식만 개인사업자일 뿐 학교로부터 지시와 감독을 받고 있고 노조 필증은 1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개인사업자이지만 사업자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소상공인지원 등 다른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방과후 강사는 이 나라의 국민 아니라 유령이라는 사실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특례가 적용된 문화예술계도 특례가 아닌 ‘전면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법 전면 적용이 필요하다”며 “또 다른 특례를 만들 생각하지 말고, 특수고용노동자까지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전면 개정해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말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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