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모델 실패? 정치 비효율성 심판
        2006년 09월 20일 03: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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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스웨덴 선거결과의 해석에 있어 현재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과중한 세금으로 지탱하고 있는 스웨덴 복지제도의 실패가 사민당 패배의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스웨덴 복지제도의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진단과 함께, 현 정부의 복지제도 구상까지 폐기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보는 시각에 있어 분명 이러한 확대해석과 논리의 발전은 무리라고 본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 논해보고자 한다.

    이번 선거결과는 사민당이 1920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획득했다는 점에서는 정당사적 측면에서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35.2%를 획득함으로써 29.7%를 획득한 1920년 선거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1940년과 1969년 두 번에 걸쳐 과반수를 획득했던 경험에 비하면 현저히 낮아진 지지율임에 틀림없다.

    좌파 정당들 동시에 지지율 떨어져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결과를 역대 선거의 결과와 비교해 보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8년 전 있었던 1998년 선거에서 사민당은 고작 36.4%를 획득하였지만, 소수정권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낮은 지지율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1998년 선거에서 전신 공산당이었던 좌익당의 기록적인 12% 지지율과 4.5%를 얻은 녹색당의 협조가 사민당의 정권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좌익당과는 같은 정부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좌익당의 정책협조만을 약속받고 제1당 자격으로 사민당의 단일 소수 내각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98년 선거와 비교를 해봐도 사민당의 지지율이 대 참패라고는 할 수 없고 약간 후퇴의 성격을 지닌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좌익당이 5.8%만을 획득함으로써 좌익계열 정당들이 동시에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좌익계열 정당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녹색당의 경우 5.2%를 획득하는데 그쳐 3개당의 득표율의 총계에서 우익정당들에게 뒤져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만약 좌익당이 10%대의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가볍게 우익정당들을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민당 수상인 요란 페숀(스웨덴 발음대로 적음)은 선거기간 중에 불거져 나온 나머지 좌익계열 2개당과의 내각구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함으로써 기민하게 협조체제를 유지해온 4개 우익계열의 선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페숀수상은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의 인터뷰에서 좌익당과 녹색당의 공동내각구성 제의에 대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준비된 우파연합과 느슨하게 방어한 사민당

    즉, 중도우익계열의 정당들이 2년 전부터 착실히 정권탈환을 위해 준비해 온 반면 좌익당과 녹색당과의 정책공조만을 유지하겠다는 사민당의 느슨한 방어전략이 국민들에게는 정권의 오만내지는 과도한 사민주의적 전통의 유지만을 원하는 경직성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패배를 자초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 현 수상인 사민당의 요란 페숀

    이와 함께 보수당(국내에서는 신온건당으로 명명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신보수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민당, 중앙당, 그리고 기독민주당 등 4개 우익정당들의 정책공조가 좌익정당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활동적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4개 중도보수 정당 들은 중앙당 당수의 개인 주택에서 처음으로 모임을 같고 스웨덴을 위한 연합(Alliance for Sweden)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탈환을 제1목표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이어왔다.

    따라서 중도우익계 정당들은 이미 2년 전부터 이번 선거를 대비해 준비를 해 온 셈이다. 선거 1년 전에는 기독민주당 당수의 집에 모여 중요한 이슈에 대한 합의를 모색해 감으로써 각 당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대협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각 당간의 정책 차이가 가장 큰 핵발전소의 폐기문제, NATO 가입 문제 같은 굵직굵직한 사안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각당간의 차이가 정권재탈환이라는 목표보다는 상위의 가치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 가능했다.

    우파 연합, 정책 차이 넘어 정권탈환 공동목표가 상위 가치

    선거일 4주 전에 발표된 선거공약에서 4개 정당 당수들은 새로운 스웨덴,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제도의 유지를 천명하고, 막대한 복지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신보수당 당수 프레드릭 라인펠트는 사민당의 전통 지지자층인 소외받은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계속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힘으로써 복지제도의 후퇴는 없고 단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을 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4개 정당연합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실업해소정책, 주택보유세 폐지를 통한 주택정책의 활성화기조 유지, 보육방법에 있어 부모의 선택권 보장과 보육비의 지급을 통한 새로운 가족정책수립, 스웨덴 정치의 중요한 이슈인 핵발전소의 유지를 통한 에너지가격의 인하 등의 굵직굵직한 내용을 조율된 목소리로 국민에게 호소함으로서 사민당의 전통적인 정책분야인 노동시장, 가족, 세금 등의 중요한 이슈에서 중도우익 연합정당들에 선점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라인 펠트가 수상이 되어 이끌어갈 연립정권 하에서 이루어질 복지제도의 수정은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파격적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당 당수가 요란 페숀과의 TV토론에서도 약속했듯이 사민당의 복지제도의 골격과 틀은 유지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의 복지혜택은 보수연립내각 하의 4년 동안에도 그대로 지속 유지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도 우파 전통적 ‘사민당 이슈’ 선점

    단지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구 9백만 중 1백50만이 일자리가 없거나 재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어 이들에게 실직보조금을 인상하거나, 국민을 보조금에 의존하게 하는 정책은 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보조금을 약간 인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수우익진영의 가장 큰 정책목표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세원의 확보와 국민의 경제활동을 통한 국민정신 및 육체건강 유지”라는데 있었기 때문에 기업활동을 위한 조세정책에서는 변화가 예고된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사민당 패인 중의 하나는 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004년 12월의 인도양 쓰나미 대재앙 문제다. 사민당 정부는 이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이유로 1년여 동안 의회청문회까지 거치면서 끝내 외무부장관이 경질되고, 최근 선거 1개월 전에도 수상정책수행비서가 사임하는 등의 진통을 겪으며 국민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상의 이미지도 많이 실추되었고, 수상의 눈치만 보는 외무부의 비효율적인 대처와 외무부장관의 직무유기 등을 지적하며 권력의 경직성과 중앙통제, 사민주의적 정치에 대한 혐오가 증폭되어 있었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유탄 맞은 사민당 

    또 다른 요인 중의 하나로 요란 페숀의 낮은 국민지지도를 들 수 있다. 최근 2년여 동안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항상 보수당의 프레드릭 라인펠트에게 뒤져 있었고, 요란 페숀은 차기 수상감에 대한 비교조사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국민들의 상당수가 요란 페숀의 정치스타일에 많이 식상해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선거 1주일 전에 요란 페숀과 부인이 소유하고 있는 대저택이 스웨덴 TV1의 다큐멘타리에 여과없이 방송되면서 평등의 정치를 지향하는 사민당의 당수가 그런 대저택에서 군림하며 사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졌다는 반감이 급속도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선거의 결과는 복지제도의 실패에 대한 심판, 혹은 국민들의 사민주의에 대한 식상이 주된 요인이 아니고 사민당 장기집권에 의한 정치체제의 비효율성에 대한 심판 혹은 정치인 요란 페숀에 대한 심판적 내용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 사민주의적 전통중의 하나는, 선거에 지면 반드시 강한 야당으로 복지제도를 지키기 위한 파수꾼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점이고, 정권을 재탈환하면 복지제도를 다시 재건하고 손질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6년만에 재집권한 올로프 팔메가 1982년에 그런 모습을 보여줬고, 1994년에도 잉바르 칼손 수상이 똑 같은 전철을 되밟아 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결과를 너무 확대해석해서 사민주의의 대참패 혹은 스웨덴 복지제도의 사형선고와 같은 진단을 내리는 것은 스웨덴 정치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 기인한다고 보겠다.

    "사민주의 참패, 복지제도 사형선고" 틀린 얘기

    요란 페숀은 내년 3월 사민당 임시전당대회를 개최해 당수를 새롭게 선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강한 야당, 복지제도를 사수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이제 한 시대는 가고, 앞으로 4년 동안 새로운 스웨덴을 위한 우익연정의 실험에 들어간다. 4년 후에 스웨덴이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민당 정권으로 다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복지제도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개인의 책임과 창의력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노선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인지는 선거가 끝난 지금부터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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