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노위, 간접고용 원청 교섭권 부정
    민주노총 “원청 사용자성 부정···면죄부”
    현대차, 지엠 등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도 외면한 결정
        2020년 06월 03일 05: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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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노동위원회가 간접고용노동자는 원청과 교섭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장 먼저 해고 대상에 오른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창구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민주노총은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 사용자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인할 수 있는 면죄부를 준 판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3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노위의 이번 판정이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중앙노동위원회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중노위 이번 결정은 노동부와 문정부의 노동정책과 맞닿아 있다. 고용유지에 노력하겠다는 말은 무성한데 현실에선 100만 명 이상이 일자리 잃었고 총고용 유지 정책은 빠진 채 재벌 퍼주기만 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재난수당이 아닌 자신의 권리 지킬 수 있는 원청과의 교섭권리”라고 강조했다.

    사진=노동과세계

    민주노총 12개 비정규직 사업장은 원청에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달 20일 중노위에 공동으로 조정 신청을 접수했다. 이에 중노위는 지난 1일 간접고용노동자의 교섭권과 원청 사용자성 인정에 관한 조정신청에 대해 “조정대상이 아니다”라고 결론 낸 것이다.

    민주노총은 중노위에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 법원과 중노위, 고용노동부 등에선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결론이 잇따라 나온 바 있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요기요 라이더나 타다 드라이버 등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것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사용자성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근로조건 등에서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중노위는 대우조선, 한국지엠, 현대차, 아사히, 현대중공업, 포스코, 한국마사회 등이 이번에 제기한 조정신청에선 다른 결론을 내렸다.

    민주노총은 “중노위는 ‘직접적인 계약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의 성립 여부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구시대적 잣대를 들이댔다. 중노위가 대법원 판례 기준도 따라가지 못한 것은 사실상 원청 사용자 책임 부여에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중노위는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 판단 여부에 대해 “노동조합의 주장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정을 신청한 금속노조 9개 사업장 중 현대자동차와 한국지엠 2개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대법원에서 이미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고, 5개 사업장도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바 있다. 2010년 대법원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가 현대중공업 원청이라고 판결했었다.

    탁선호 변호사는 “기존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분적으로라도 인정했어야 했으나, 중노위는 어떤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중노위가 실질적인 지배력에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보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미치면 노조법상 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중노위는) 이 판결의 취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도 조정회의에서 100쪽이 넘는 자료를 제출해 원청이 임금체계 설계 등에 개입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김선종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장은 “자회사의 이사회 임원 구성자체가 현직 원청 임원임에도 중노위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노위는 노조에 “다른 권리구제 절차를 통해 해결방법을 강구”하라고 밝혔다. 또 노조가 원·하청 교섭의 근거로 제시한 사실들에 대해선 ‘권고’로 처리했다.

    공공운수노조 관련 결정서를 보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모-자회사 공동운영 방안과 산업안전문제 논의를 위한 자회사 노조 참여보장 노력 등”을, 금속노조 결정서에는 “도급사업주의 배려와 협력 요구,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원청이 하도급 사용자들과 공동노력할 것 등”을 권고했다.

    원청 사용자들은 수차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같은 취지의 결정에도 원청은 노동자들의 교섭 요청에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중노위가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다른 방법을 찾으라”거나, 노사 공동노력을 권고한 것이다. 중노위의 직무유기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모든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간접고용을 확산한 사업주에게 권고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단언컨대 조정을 신청한 12개 사업장 중 이 권고에 따라 ‘공동노력’을 기울일 사용자는 한 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선종 지부장도 “정부의 수많은 지침보다 못한 노력하라는 권고안을 끌어안고 제대로 수행할 사용자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21대 국회 핵심 과제로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하는 등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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