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 빠진 독 안되려면···
    항공사의 재무 여건 열악
    [한국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③] 낮은 수익성, 상존하는 유동성 위기
        2020년 06월 01일 0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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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칼럼 “수요의 한계와 공급 증가, 결국 항공사의 과당 경쟁과 부실로”

    빚 많은 대기업만 지원하겠다?

    5월 28일, 기간산업안정기금이 출범했다. 총 40조 원에 달하는 이 기금은 코로나19 위기에 따라 항공, 해운 등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기금의 지원을 받으려는 기업은 ‘총차입금 5천억 원 이상, 종사자 수 300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빚 많은 대기업이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 요건을 충족하는 국적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뿐이다. LCC(저비용항공사)나 지상조업사, 하청업체에서는 이미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여러 재무지표 중 차입금이 기준인 이유는 뭘까? 차입금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의 빚을 끌어올 수 있다는 의미로 기업 규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매출이나 이익률 등 기업 가치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핵심성과지표가 아니라 차입금이 기준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국내항공사, 특히 대형항공사의 부채 규모가 그만큼 커서 지원의 시급성을 보여준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뒤짚어 말하면 기업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는 지원의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는 의미다.)

    비정상적인 부채비율

    여타 산업에 비해 국적항공사의 부채비율은 비정상적으로 크다. 2019년을 보자면 압도적인 국내 1위 항공사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800%를 넘고, 아시아나항공은 1,795%에 달한다.(별도기준) 2019년말 684개 코스피 상장사의 별도기준 평균 부채비율 67.61%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다만 2019년에 회계기준이 변경되어 전에는 부채로 보지 않던 항공기 리스비용이 포함되면서 부채가 크게 증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변경 전 상황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국적사들은 부채비율 문제에 대해 항공업 특성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항공기 도입은 외부 차입과 리스로 이뤄지니 부채가 많고, 임차료와 금융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항공사들이 다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러나 외항사들은 다르다. 대한항공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도 한 미국 델타항공은 2019년 3월 기준 부채비율이 105%, 2020년 3월 기준으로는 125% 정도다. 세계 최대 LCC인 라이언에어의 경우 2018년 176%, 대한항공과 항공기 보유대수가 비슷한 일본항공(JAL)은 같은 시기 74%를 기록했다.

    유동성 위기

    국적사들 전반이 부채비율이 높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유동비율인데, 1년 내 갚아야 할 부채에 비해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를 나타낸다. 이 비율이 200%가 넘으면 건실한 기업으로, 100% 미만이면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2019년 기준으로 국적사의 유동비율을 살펴보면 진에어와 플라이강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100%에 못 미친다. 대한항공의 유동비율이 43%에 불과하며,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은 각각 32.5%와 29.4%에 불과해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적사들은 항공산업의 현금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여객항공은 티켓팅을 하는 순간 현금이 돌게 되므로, 항공기 1대를 띄울 때마다 큰 돈이 돈다. 따라서 항공사가 현재 보유한 자산이 적더라도 연간 막대한 양의 현금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채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코로나19 위기로 하늘길이 막히자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 5월 15일 상장 6개 국적사의 1분기 실적이 발표됐는데, 대한항공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7% 감소하고 56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매출 21.5% 감소, 영업손실은 2,082억 원에 달한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항공사들이 조금씩 운항을 재개하고는 있지만, 항공산업의 수요 회복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게다가 2차 팬데믹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상적인 재무구조를 가능케했던 돈줄이 말랐고, 항공사들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낮은 수익성

    항공사들의 수익성도 별로 좋지 않다. 글로벌 항공사와 비교해 국적사들의 영업이익률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최근 3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을 보면 델타항공이 12.48%, 라이언에어가 19.87%, JAL이 12.20%에 달한다. 이에 비해 대한항공은 5.26%, 아시아나항공은 -1.84%에 불과하다.

    국내 항공사의 수익성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두 글에서 살펴봤다. 국내선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고, 국제선 의존도가 높아 공급을 계속 늘리지만 수요는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규제완화에 따라 항공사는 늘어났지만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된다. 결국 항공사들은 출혈 경쟁을 계속하고 실적은 하락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한 언론사 분석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들이 2019년 한 해 동안 보도자료를 배포해 광고한 항공권 특가 이벤트만 총 83회에 달한다. 한 달에 거의 7번, 주당 1.5회 꼴이다. 이 중에는 제세공과금과 유류할증료만 부담하면 되는 ‘0원 항공권’ 행사도 다수 포함된다.(코로나19 위기 이후 항공수요 회복을 위해 이런 이벤트를 남발할 가능성도 크다.)

    한중갈등(’17), 한일갈등(’19) 등으로 인해 중국, 일본 단거리 노선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영업이익률 하락 추세는 가속됐다. 홍콩 시위, 미중 갈등의 격화 상황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하늘길 수요는 또 요동칠 것이다. 국내 항공사 실적의 빨간불은 꺼지지 않는다.

    대외 변수에 취약

    그런데 이런 불안한 국제 정세가 끼치는 악영향은 항공 수요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항공기 도입은 외부 차입과 리스로 이뤄지는데, 리스료는 달러로 결제한다. 그만큼 환율 인상에 매우 취약하다. 대한항공의 경우 2019년 3월 말 기준으로 순외화부채 규모가 92억 달러에 달했다.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920억 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실제 대한항공은 2018년에는 3,636억 원, 2019년에는 3,758억 원의 외화환산손실을 봤고,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시기 544억 원과 1,429억 원의 외화환산손실을 기록했다.

    이와 더불어 항공유 결제 역시 달러로 이뤄지고, 항공기 제작이나 정비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환율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40조 원에 달하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이 출범했다. 항공업에 지원되는 총액이 얼마가 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항공업은 우선 지원 대상이 됐다. 그러나 항공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와 더불어 항공사의 낮은 수익성, 유동성 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재무 여건을 바꾸지 않으면 그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기업 지원이 단지 재벌 살리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항공사들의 잘못된 경영을 바꾸는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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