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청회사가 비정규직 고용보장 사상 첫 합의
        2006년 09월 19일 10: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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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짤릴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2천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회사나 하청회사로부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쫓겨나지 않게 됐다.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김영성)는 19일 기아자동차(대표이사 조남홍), 기아자동차노조(위원장 남택규)와 가진 3자 교섭에서 ▲불법파견 공정 정규직으로 전환시 비정규직 우선채용 ▲고용안정 확약서 등에 잠정합의했다.

    노사는 가장 중요한 비정규직 고용보장에 대해 ‘확약서’라는 이름으로 "계약해지, 자동화, 신차종, 외주화 관련 사내협력업체 인원조정 필요시 타 협력업체의 채용규정에 적합한 경우 재입사(근속인정 등) 등을 통해 고용이 보장되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단, 이 확약서는 기아자동차(주)와 기아차노조가 합의하는 형식을 취하도록 했다.

       
    ▲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19일 낮 1시30분부터 오후 4시간 파업을 벌이고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이 외에도 해고자 복직, 고소고발 철회, 정규직 파업 시 비정규직 임금문제 등도 원만하게 해결하기로 했다.

    또 비정규직지회는 22개 하청업체와의 집단교섭에서 ▲기본급 73,920원(시급 308원) 인상 ▲성과급 300%, 타결금 120만원 지급 ▲공정한 신규채용 및 사망자 가족 채용 ▲조합원과 배우자 독감예방접종 등에 대해 합의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오전 9시 열린 본교섭에서 이같은 내용을 끌어냈고, 오후 2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쟁의대책위원회 회의를 열어 토론을 거친 후 오후 6시부터 대·소위원 등 확대간부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

    지회는 잠정합의 내용에 대해 21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최종 합의할 계획이다. 이날 노사가 잠정합의가 됨에 따라 지회는 이번 주 내내 계속하기로 했던 파업을 철회했다.

    "고용불안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어"

    원청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노동운동사상 첫 번째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와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며 어떤 합의에도 임하지 않았고, 정규직노조의 요구에 의해 고용을 승계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협약으로 따 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끈질기고 강력하게 파업을 벌이면서 화성공장 생산라인이 계속 멈춰섰고, 결국 비정규직과의 교섭에 나오게 됐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고용불안에 떨면서 일하지 않게 됐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이준영 교선부장은 "작년까지만해도 원청회사의 계약해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전가의 보도’처럼 위협적이었으나 올해 기흥 등 5개 업체에서 계약해지에 맞서 고용승계 투쟁을 벌이면서 우리 조합원들이 계약해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번 합의로 인해 더 이상 고용불안을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보름 동안 파업 원청회사 교섭테이블로 끌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원청회사 사용자가 교섭에 나왔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아자동차 회사는 비정규직지회가 18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자, 18일 회사와 정규직노조-비정규직노조가 같이 교섭을 벌이는 3자 교섭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18일과 19일 잇따라 3자 교섭이 열렸고, 이같은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회사가 비정규직지회와의 교섭에 나온 이유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1천2백명이 연이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보름 가까이 파업을 벌였고, 3자 교섭이 열린 18일과 19일에도 주야 4시간 파업을 벌였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회사는 ‘확약서’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사실상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다만 회사는 형식적이나마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타결 주체를 비정규직지회가 아닌 정규직노조로 한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 확산에 좋은 계기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번 합의는 다른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과 비용이 든 반면 성과를 미미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너무 힘들고 그래서 비용보다는 희생과 비용에 비해 성과가 미흡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확산되지 못했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단체협약 합의를 포함해 이번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의 성과로 향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 데 좋은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이상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은 "이번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의 합의는 다른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투쟁이 확산되는 데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쉬움도 남는다.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정해 모든 공장에 똑같이 내려보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월 73,920원/시급 308원)을 더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 돈 10원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비정규직지회는 고용안정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이후 과제로 남기게 됐다.

    "원청회사가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인정한 것"

    가톨릭대 조돈문 교수는 "원청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상당히 진일보한 부분이고 바람직하다"며 "최근 로드맵 합의 등 안 좋은 소식만 들렸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용자들이 하청회사 노동자들을 다른 업체들에 채용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은 자기들이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인정한 것이고 하청업체에 자율성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그런데도 비정규직과 싸인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비정규직노조의 다음 과제는 이것을 뛰어넘어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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