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정치를 위한 국회 사용 설명서
    [책소개] 『좋은 정치를 위한 국회 사용 설명서』(박선민(지은이) / 후마니타스)
        2020년 05월 30일 1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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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가 할 수 있는 일: 냉소 대신 가능성을

    2020년 5월 31일, 제21대 대한민국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다. 출범하기 전부터 기대보다는 ‘일하지 않는 국회’, ‘싸우는 국회’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국회는 냉소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국회의원의 세비를 삭감하고 특권을 줄여야 하며, 심지어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은 시민들의 다양한 이익과 가치가 갈등하고 조정되는 ‘정치의 현장’으로서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줌으로써 냉소 대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2019년부터 직장이 없는 청년들도 무료로 국가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고, 국립자연휴양림에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무장애 산책로’가 생기고 있으며, 2017년 10월부터 15세 이하 어린이의 병원비 본임 부담률이 5%로 낮아졌다. 어떻게? 국회가 법을 만들고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행정부로 하여금 이를 집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가 이렇게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위해 법이 어떻게 발의되고 만들어지는지의 입법 과정을 성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익이 투입(input)되어 정치과정을 거쳐 하나의 정책으로 산출(output)되는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이 ‘정치과정’인데,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통계로 보는 국회

    – 양극화된 정치:

    <표 2-6>은 법안의 대표?공동 발의자(법안 발의는 국회의원 10명 이상이 발의해야 한다)의 정당 간 분포를 나타내는데, 점점 거리가 먼 정당과의 교차 발의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정당 간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의원들의 상호간 정책적 협조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양극화된 정치’를 보여 준다. 대표 발의자가 공동 발의자들을 참여시키는 과정은 동료 의원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이다. 최순영(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2007년 4월에 대안 통과된 <장애인의 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공동 발의자가 무려 229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10명만 넘으면 발의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노력을 기울였을까? 발의 후 법안을 제정하려면 결국 여야 모두를 설득해야 하므로, 이 논의 과정을 앞당겨 발의 단계부터 설득한 것이다.

    – 국회는 일을 하지 않는가?:

    180쪽 <표 3.1>을 보면 의안 발의 건수는 대를 거듭할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17대 국회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4대 1천4백여 건이었으나 16대에 3천 건을 넘어서더니, 17대 8,368건, 19대 18,735건, ‘일하지 않은 국회’라고들 하는 20대 때는 무려 2만4,564건이 발의되었다(2월 2일 현재).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므로 좋은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지나치게 많은 법안이 발의되면 법안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통과율을 낮추고 철회율을 높여 불필요한 비난을 야기하며, 더 중요하게는 정작 사회적으로 중요한 법안이 뒤로 밀려 다루어지지 않게 된다(<표 3.2~3.4>). 그렇다면 의안 발의는 왜 폭증하는가? 정당 내 조정 기능이 사라지고 의원 개인들 간의 경쟁이 심화된 가운데, 법안 발의 건수, 통과율이 의정 활동에 대한 시민단체의 평가는 물론, 공천 평가 점수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표 6-1> “2019년도 국회 운영 기본 일정”(291쪽)을 보면 “19대 국회 4년의 임기 동안 4회의 정기회, 31회의 임시회 등 총 35회 집회되었다. 본회의는 183회, 상임위원회는 2,669회, 특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포함)는 613회 개회되었고, 공청회는 223회, 청문회는 120회 개최되었다. 회기는 총 1,205일로 1년 평균 3백 일에 달한다. 본회의 개의 일수는 183일, 총 회의 시간 836시간 40분으로 1일 평균 회의 시간은 약 3시간 56분이었다. 상임위원회는 전체회의 1,576차, 소위원회 1,093차 열렸으며, 특별위원회는 전체회의 452차, 소위원회 161차 열렸다.” 미국?영국?독일 의회와 비교해도 국회가 일을 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292쪽). 다만 의사일정 결정에 있어서 협의주의를 택하고 있어서 교섭단체 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파행 및 공전의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국회에서의 여성:

    <표 2-2>는 제헌국회 때 0.5%였던 여성 의원 비율이 70여 년이 지난 20대에도 17%밖에 되지 않으며, 주로 여성가족위원회(76.5%), 보건복지위원회(52.4%)로 배치되는 등 비인기 상임위원회로의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을 보여 준다. 또한 <표 6-2>를 보면, 2020년 현재 보좌직 여성의 비율이 30.7%를 차지하고 있으며, 8, 9급은 61.7%, 60.1%로 높고, 4급, 5급은 8.5%, 21.4%에 불과하는 등 주로 낮은 직급에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6년차 보좌관의 국회 사용 설명서

    이처럼 경기 규칙을 알면 경기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정치의 현장인 국회의 ‘룰’을 알게 되면 정치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이 국회라는 ‘민주주의의 학교’에서 16년간 정치를 하면서 정치를 배웠다고 말하는 박선민 보좌관의 국회 사용 설명서, ‘올 어바웃(all about) 국회’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 국회에 실력 있는 보좌관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한 사람의 정치가로서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일까. 아마도 정치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깨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양손으로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고집 센 염소 두 마리를 끌고, 한걸음마다 고뇌를 딛고 가는 일이다. 출발할 때는 목적지가 있었는데 가도 가도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을 왜 걸어가고 있는지, 앞으로 가고 있기는 한 건지 깊은 좌절과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정치에서는 사회의 모든 갈등이 집합되고, 인간의 모든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상해 결과를 내야 하는 게 정치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15쪽).

    21대 국회에서 처음 의회정치를 시작하는 사람, 의회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 민주주의의 현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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