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종'과 '공무원' 사이에 흐르는 혁명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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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9일 08: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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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말경에 농민들이 소를 도둑맞아 관청에 신고하러 가면 소를 찾아주겠다는 말을 듣는 대신에 곤장세례를 받고 풀려났다. 그런데 일제가 들어온 뒤 지서에 소를 도둑맞았다는 신고를 하면 일본순사가 어김없이 소도둑을 잡고 소를 돌려줬다. 농민들은 이씨조선의 너무나 극심한 횡포 때문에 일제를 환영했던 측면도 있었다.”

위의 얘기는 마치 친일파 인사가 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은 ‘친일문학사’를 비롯해 많은 친일 관련 서적을 저술했던 임종국 선생이 직접 했던 말이다. 줄담배를 피우면서 구체적인 예들을 하나 하나 짚어나가면서 좌중의 젊은이들을 사로잡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위에 사례는 전두환 군부독재의 살벌했던 시기에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긴장한 청년들을 향해 했던 얘기다.

크게 해먹으면 ‘사회적 매장’ 대신 칭송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동학농민들의 고부봉기도 바로 고부의 군수 조병갑의 학정 때문이었다. 당시 조병갑은 수천의 썩어빠진 관료들 중 한 명이었다. 이씨왕조의 말기는 밑에서부터 위까지 완전히 썩어빠졌던 시대였다. 관리들은 민중들을 단지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상반의 계급으로 갈려졌던 당시 사회에서 상놈이라 불렸던 민중들에 대한 착취는 너무나 당연시 여겨졌던 터였다.

당시의 양반들은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르기만 하면 그 때부터 해먹기 시작했다. 물론 이득을 보려는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사돈에 팔촌까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봉건시대 때나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지금이나 변한 건 거의 없다.

전반적인 부정부패가 한국사회에 만연해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사회라는 부정부패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부정부패가 이미 구조화돼있어 아예 경찰관들이나 공무원들에게 건네줄 뇌물의 액수마저도 가격표처럼 정해져 있다.

이들이 해먹는 액수는 사실 정치권에서 해먹는 액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비교될 수 있다.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고 가는 것이 정치권과 기업체끼리의 거래이다. 부정부패를 통해 한탕 크게 한 사람은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당하는 대신에 “능력이 출중하다”고 칭송하는 총체적인 도덕의 타락상까지 보여주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크게 하면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도 정설로 나와있고, 설령 감옥에 가더라도 몇 개월내지 1~2년 정도 있다 나오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잔챙이만 엮어져 감옥에 가고 주역은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현실이다. 한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노조위원장, 감옥 가던 자리에서 권력-돈의 자리로

부정부패의 사슬은 공장마저도 안전지대로 놔두지 않았다. 지금까지 터져온 노조지도자들의 부정부패는 전국민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회의주의를 만연시켜놓았다. 군사독재시절에는 노조지도자들에게 감옥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권력과 돈이 주어지는 자리가 된 것이다. 당연히 돈과 권력을 위해 노조지도자라는 자리를 따내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판과 별 차이가 없는 온갖 더러운 방법을 동원하여 선거운동을 벌이는 작태가 연출되는 현실까지 왔다.

한보사태의 주역인 정태수는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에 걸쳐 두 번이나 부정부패 사건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부정부패건은 국가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덩치가 컸다.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은 어떻게 두 대에 걸쳐 재탕까지 할 수 있었는지, 과연 법이 존재하는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몇 백만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수조 원을 삼키고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꼿꼿하게 쳐다보는 파렴치한들이 공존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결국 이들 파렴치한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 몇 달 동안 국회의원들과 관료들의 골프파문, 뇌물수수 파문을 비롯한 부정부패 사건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지상을 채웠다. 얼마 전에는 ‘바다이야기’이라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괴한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다이야기 사건도 정치권과 얽혀진 부정부패의 사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은 전시작통권 문제에 반대하여 퇴역한 장성들까지 설쳐대고 있다. 군대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정부패의 사각지대는 군대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뒤부터 일제의 주구노릇을 하다가 해방되자마자 ‘반공’이라는 머리띠 하나 두르고서 국방비를 도적질해먹었던 인물들이다.

안보 걱정? 부정축재 재산 걱정되겠지

이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안보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 이들의 말은 “내가 도적질한 재산의 안전이 걱정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달리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다 보면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공무원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언어자체가 잘 표현해주고 있다. ‘공무원’을 뜻하는 영어는 ‘Civil Servant’이며, ‘공공의 하인이나 종’으로 직역된다.

물론 ‘civil servant’는 영어지만, 서양세계를 통틀어도 공무원을 지칭하는 말은 거의 비슷하다. 어쨌든 ‘civil servant’란 표현만 보더라도 수백 년 동안 혁명을 통해 시민들의 권리를 확장해온 서양의 역사가 언어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묻어나옴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말에서 한자어인 ‘公務員(공무원)’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해석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자신을 ‘공직’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선 ‘공공의 종’과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과는 어감부터가 다르다. 또한 공무원이란 개념에는 전통적으로 ‘공공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복선으로 깔려있다.

위에서 언급한 언어의 차이에서도 드러나 듯, 우리나라나 서유럽의 부정부패의 정도는 실제로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서유럽의 부정부패의 빈도수나 덩치는 대한민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희귀하거나 적다는 것을 뜻한다. 주인을 두려워하는 종과 공공의 대표라는 자가당착의 사이에는 혁명의 강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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