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18년 근무,
화 나거나 보람 느꼈을 때
[김정진 인터뷰③] 진보정당에서의 막스 베버 과잉 "이해하기 어려워"
    2020년 05월 25일 04: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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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인터뷰-2 링크

7부. 18년 진보정당 근무,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

그리고 정의당 막스 베버 ‘책임정치’ 강조는 잘못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라디오 7부 링크: 

(김정진 변호사는 민주노동당 초창기를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민중의 언어를 간직한 사람들로부터 걸려오면 전화를 받을 때라고 했다. )

원시: 저는 근데 이제 그 제가 질문서를 좀 만들면서, 개인적인 질문하고, 그런 게 이유가 뭐냐면, 이거는 너무 한가하다고 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람들 관계 있잖아요.

당 운동에서 팀워크, 뭐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사람들이 팀을 만들어 가지고, 프로야구도 1년에 144 게임이죠 , 그걸 해내야 되는데, 정의당, 팀웍이 좀 약하지 않나 싶어요. 사람들간에. 그런 부분들을 좀 길렀으면 좋겠다, 저는 좀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제가 이것 좀 여쭤보려고요 질문한거예요. 그래도 18년을 했어요, 진보정당을. 이런 이야기를 좀 짧게라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뻤을 때나, 슬펐을 때나, 화났을 때, 김정진의 희로애락은 ?

김정진: 근데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잘 안되는게 99가지고, 잘 되는 게 ….. 1가지. 어쩌다 한 건 될까 말까인데. 기뻤을 때가 얼마나 많겠어요?

원시: (너무 충격적인 대답을 듣고 나서, 다시 시도) 원래 겸손하고, 공부 좀 잘 하고, 이런 이미지는 좀 있는 거 같은데, 자기를 표현하고 좀 잘 안 하는 편입니까?

김정진: 저요? 자기 표현요? (허허) 표현할 게 별로 없는데요.

원시: 제가 좀 아쉬웠던 게 뭐냐면, (김정진 변호사가) 토론을 잘 하세요. 그리고 대중성이 있다고 그 때 생각했거든요.(2004년을 말함) 민주노동당 때 토론회 나가서, 라디오 토론도 몇 번 하고 그랬죠. TV 토론 잘 기억이 안 나고, 라디오 몇 번 생각나는데요.

김정진: 제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건 없고요, 나갈 사람이 없어서, 나간거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진 변호사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진보정당 정책들을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국회의원 0명 시절에 각종 토론회에 불려나갔다고 한다. 김정진과 같은 역량들을 노회찬 심상정 이후 세대로 현실화시켜내지 못한 진보정당은 등잔 밑이 어둡다.)

원시: 저는 스포츠, 운동을 좋아하니까, 야구나 축구나, 큰 경기에 나가봐야 해요. 저는 지금 당 운동이 굉장히 잘못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까 계속 일관되게 …..

김정진: 아니 그러니까, 그 김종철 후보가 잘하는 건, 뭐 본인 자신도 있지만. 노회찬 의원도 원외 시절에는 그렇게 말을 잘 하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 원외 시절에도 그래도 민주노동당을 좀 인정해주는 언론노조 쪽 방송인이 있어서, 그래도 노회찬(당시 사무총장)을 한 번씩 나오게 해 줬거든요. 자꾸 나오면서 실력이 쌓인 거거든요. 그러면서 주어진 시간이 짧으니,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뇌리에 박히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촌철살인도 더 발전시키신 것이고. 우리 김종철 동지도 마찬가지거든요. 원외 정당일 때, 부대변인 대변인 하면서, 그 갈고 닦은 게 있는 거예요.

방송이야 이런 데서도 막 그냥 보통은 원래 2,3일 전에 질문지 주고, 이제 준비하고 다 나오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김종철 후보는 5분 전에 섭외해서 나간 적도 있어요. 누가 빵꾸 내가지고. 그런 경험이 쌓여서 다 거기까지 간 거든요. 하루 아침에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무슨 연습해서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준비된 사람이 해야지요.

원시: 제가 인터넷 방송국 당내에 만들자고 제안했었는데, 잘 아실텐데요. 그 이유가 노회찬 전 의원이랑 고 이재영 국장이랑, 말 한마디, 문장 하나, (2004년 대선 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잖아요. 과거에. 저도 모니터링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비유, 비교나 정책도 잘 소화해야 하고, 이제 그런 부분들이 사실은 김종철 지금 후보나 김정진 변호사 같은 경우, 강상구 후보도 마찬가지죠. 그런 부분들이 더 많이 노출되고, 그랬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 저는 그런 생각이 좀 들어서요. 아쉬워서.

김정진: 전 선거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저는 서생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과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김종철 등이 총선준비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진보정당만의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 토론과 학습이 실종되고, 팬클럽으로 전락해가는 진보정당은 미래가 어둡다고 김정진은 역설했다.)

원시: (*인터뷰 내내 ‘서생’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내 생각과는 달랐다) 선거 나가라는 게 아니라, 정책 토론회는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역할분담을 해야지요.

김정진: 지금 또 하나 정의당에 잘못된 게, (국회의원 후보) 나가실 분들이 너무 공부를 안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더 심해져 가지고, 진짜 걱정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일은 아닌데,

원시: 진짜 걱정입니다.

김정진: 기분 좋았던 일은, 그냥 그 제가 하나 일화를 말씀드리면, 기자회견 건은 영광스러운 것이고, 기분 좋았던 것은, 2002년도 이후에 가끔 밤에 당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전화를 하세요. 그냥 시민이요. 대선 즈음해서, 저도 그런 전화를 받았는데, 원래 사람의 말투를 들어보면, 이분들의 어떤 계급적 성분이 추측이 되잖아요? 배우신 분들은 아니고.

다 얘기를 하면서, 권영길 대표님 얘기 잘 들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심정을 알아 주는 거 같다’ ‘아 그리고 YH 그 분도 있냐고, ‘ 그런 얘기를 하면서 (YH는 최순영 ). 그 연령대 들어보면, 목소리가 최소 5~60대, 그때 5~60대니까 원래 진보 쪽을 찍지 않는 분들이시다. 근데 이분들이 상당히 진보 쪽에 상당히 호감을 가지면서 그렇게 전화를 하고, 그리고 재밌는 거, 꼭 말미에 꼭 그걸 물어봐요. 근데 북한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게 항상 걸리는 거죠. ‘아 저희는 모든 형태의 독재 반대합니다. ‘ 그렇게 답변해주면, 그 말을 듣고, 너무 좋아하시면서, “아, 그렇죠~” 그래서 그런 분들이 지지를 확인하는 게 사실은, 개인적으로 되게 행복하더라고요.

진보정당은 어쨌든간에 민중의 당이어야 되거든요. 민중을 지지 옹호하고, 민중의 당, 그게 1번입니다. 책임정치는 그 다음인 거고, 민중의 당, 우리가 이제 민중의 당으로 한 발 더 가까이 가는구나. 그럴 때가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 걸 확인할 때.

원시: 그럼 화가 날 때는?

김정진: 지도급 인사들이 소신없이 외부의 의견에 휘둘릴 때, 이때 화가 나고,

원시: 사례를 그래도 한 두 가지는 이야기해야 되는데요, 해 주셔야 되는데.

김정진: 사례는 아까 앞에서 말씀 드렸잖아요. 그리고 슬플 때는, 뭐 동지들 먼저 보낼 때가 슬프죠. 제 사수가 이재영 동지, 오재영 동지, 노회찬 동지 등등등 많죠. 산재. 산재죠.

원시: 정치적 산재라는 거죠?

원시: 제가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고 이재영 실장, 이제 많은 사람들하고 직접 통화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가끔씩 이재영 실장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재영 어머니께서 임대 아파트에 사셨어요. 그래서 내가 놀란 게, ‘야, 정말 이 분은 진보정당 정책가인데, 생활하는 것과 정책이 똑같네’ 그게 생각나네요.

김정진: 그렇죠. 아까운 분이시죠.

원시: 이재영 국장, 장점이 뭐였냐면, 이분이 무슨 박사과정 공부한다, 교수랄지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기 관점을 가지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네트워크 하는 게, 굉장히 뛰어났던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같이 일하시면서 볼 때는 어떠했나요? 제가 옳게 본 건가요?

김정진: 제 사수였죠. 그런 능력도 뛰어났고. 사실 돌아가시고 나서, 정확한 나이 하고 그걸 알게 됐어요. 그런 걸 전혀 물어 보는 사이가 아니었거든요. 대학교 1년 다녔다는 것도, 그게 무슨 대학교 다녔는지도 몰랐고, 1년 다니다가 바로 (노동) 현장으로 갔으니까. 근데 돌아가시고 나서 알았는데, 정책가이자, 조직관리자 이념가이자, 이론가이자 , 그렇죠. 다재다능하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죠.

원시: 좀 귀여우셨어요. 너무 웃겼던게, 이름 부를 때, 원시 동지 동지 해서, 그래서……

김정진: 공식적인 매체라서 제가 다 이야기는 못하고요, 재밌는 얘기 나중에 사석에서 해줄게요. 재미있는 이야기 많습니다.

(인민노련, 전노운협 조직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노회찬과 이재영은 민주노동당이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한 운동가들이었다. 김정진은 학생운동->노동운동에 기초를 둔 지난 20년간 진보정당 에너지는 이제 새롭게 수혈되어야 한다고 본다. )

원시: 공식적인 매체는 아닌데…… 그냥 하는 건데. 그래도 좀 수위를 낮춰가지고. 기억나는 게 어떤 게 있냐면, 좀 마음이 짠하고, 여기 있으면서 계속 이제 진보정당에 글도 쓰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2002년 대선 때) 당시 이재영 국장이 결혼하기 전이었잖아요? 근데 거기 무슨 권영길 후보 선본 아파트에서 제가 잔 적이 있었어요.

(이재영 국장이) 술 먹고 하는 이야기가, 제가 그 이야기를 물었어요. 아니 왜 권영길 대표는 내가 TV 토론 모니터링을 열심히 해가지고 드리고 그랬는데, 비교나 비유를 적재적소에 이렇게 잘 못하시냐 그랬더니, ‘아 원시 동지 글은 노회찬 스타일과는 잘 맞는데, 권 후보랑은 잘 안맞아’ 그러면서 술 먹고 혼자 이야기하다가 자고 그러던 기억이 나네요.

희노애락 했었는데. 잠깐 그런 얘기 하셨잖아요. 민심이 천심이다. 그걸 확인하시는 거 잖아요. 사실 정치학의 아주 기본 있잖아요. 맹자에서도 했던 이야기 ‘민심이 천심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들과 같이 정치하는 거잖아요.

김정진: 그분들을 대변하는 거죠. 그게 1번이고, 대의제 본령이 리프리젠트 (represent)아닙니까? 그 대변을 먼저 해야 그 다음 이야기가 되는거지. 대변도 못하면서, 무슨 딴 얘기 하는 거 자체가 사실은 최장집 교수의 악영향이라고 봐요. 좋은 정당, 아니, 좋은 정당 중요하죠, 좋은 정당 만들기 위해서 과정이 필요한 건데, 좋은 정당 줄줄 외우고, 책임져야 좋은 정당이 아니거든요.

저는 상당한 해악을 미쳤다고 봅니다. 막스 베버 공부하는건 좋은데, 지금 정의당에서 당협에서까지 그걸 읽어요. 당협에서까지 그걸 읽을 책인가 싶어요. 막스 베버 이론을. 그냥 그런 얘기를 했다 정도 알면 되지. 희한한 현상입니다. 그게 또 정의당이 진보 야당으로서, 야성을 상실케 하는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나, 그렇게 봅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좀 특수한 현상이더라고요.

(막스 베버는 1895년 “민족국가와 민족경제정책”연설에서, 독일 노동자계급은 독일을 이끌어나갈 정치적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비난했다. 위대한 권력 본능이 독일 노동자계급에게는 결여되어 있고, 정치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정치적인 변화를 별로 희구하지도 않고, 인습과 관습에 순치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 노동자처럼 정치적인 학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리더가 되면, 가장 파괴적인 집단이 된다고 주장했다.)

원시: 그렇게까지 하는 줄 몰랐었거든요. 근데 이제 얼핏봐도 모순이고요, 왜냐면 이번 선거 때 , 정의당 후보들이 고 노회찬 의원의 6411 번 버스를 모두 다 이야기했어요. 새벽 다섯시에 구로동에서 출발해서 강남으로 가는 버스, 청소노동자, 다른 여러가지 건물 , 큰 빌딩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을 (정의당이) 대변해야 한다는 게 그 사람들한테 선행상 받자, 이게 아니잖아요. 그들과 같이 정치를 하는 건데.

막스 베버 같은 경우는 당시에, 독일 노동자들이 독일 사민당 (SPD)에 많이 가입하고 그랬었는데 베버가 그걸 굉장히 냉소적으로 봤어요. 독일을 건설하고, 러시아 팽창주의를 막고,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뒤처진 독일을 ‘강한 독일’로 만드는 데 있어서, 독일 노동자나, 사민당을 주축세력으로 보지 않았어요. (노동자에 대한) 묘사라는 것도, 굉장히 이기적인, 물질적인 이기적인 그런 부분에 만족하는 존재로, 독일 노동자를 서술하고 그랬거든요.

(막스 베버를) 어떤 심오하게 다르게 해석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막스 베버 책에는 그렇게 써져 있어요. 왜 그렇게 막스 베버를 공부하고, 물론 공부하고 그런 부분들은, 저는 다독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에 중요한, 어떤 진보정당에 철학적인 어떤 기둥, 이런 걸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정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죠.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그거더라고요. 정말 트럼프, 보리스 존슨, 샌더스, 코빈, 이게 다 아웃사이더들인데, 이제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배경에 기존 정치체제가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정치 엘리트들이 자기들한테 사기 친다 그런 생각때문에 양대 정당인 국가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그게 아닌 나라에서는 새로운 정당이 시리자니, 포데모스니,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이제 지금 우리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라고 봐요. 지금 뭐 문재인 정권 70% 지지율, 민주당180석 이러지만, 고용보험 기초를 놓겠다고, 어느 세월에 기초를 놔요? 1인당 GDP가 3만 달러 됐는데. 하려고 마음 먹으면, 못할 게 뭐예요? 사실.

제도적으로 여러가지 뭐 가치 충돌하고, 또는 뭐 기술적인 문제가 있죠. 그거는 더 복잡한 문제는 노태우 정권 때도 다 했는데 그걸, 더 복잡하고, 더 기초도 안되어 있는데도 다 했는데, 노태우 정부는 토지공개념 같은 거를.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사실은 민심에 이반되고, 보수정당 쪽에서 제대로 된 극우 포퓰리스트가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저는 한국도 마찬가지로, 파도 위에 올라가 있다고 봅니다.

정의당이 그 민심의 파도를 대변해서, 동력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희한한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왜 이렇게까지 막스 베버 이론을 당협에서까지 보는지는 미스테리더라고요. 좀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그보다도 어떻게든 코로나 경제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을 어떻게 대변하고 조직하고 투쟁하고 그걸 제도로 만들어내고 민주당 정부 잘못을 지적하고, 이 활동이 집중해야지, 책임을 지진 않고, 다들 그냥 순해지기만 한 것 같아요. 그냥.

원시: 그런 배경이 있을 거라고 저는 이해는 하는데, 추측은 하는데요.

(2012년) 통합진보당 그런 사건을 겪고 나서 자기들의 그 정치 행동을 반성하면서, 문제의 원인이 있잖아요, 원인을 잘못 진단하지 않았나 싶어요. TV 화면에 정파들끼리 싸우고 중계방송 되었잖아요? 김정진 변호사는 그 때 거기 없었죠?

김정진: 그 때 통합에 반대했었죠.

원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은 뭐냐면,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제 추측인데요.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막스 베버가 지적한) 확신=신념, 자기 신념만이 옳다. 내 독선, 다른 어떤 다른 대중들에 대한 책임, 책임이란 말, 이런 것보다는 어떤 이념적인 확신에 차서 행동한 결과가 그런 폭력적인 분열, 분열로 이어졌다.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이라고 보여지는데요.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구원’을 발견한 것 같아요.

김정진: 심리학적 분석까지 하셨구만요.

원시: 그것이 아니면 그거 어떻게 책임정치 그 부분에 꽂혀서, 그렇게, 사실은 이거는 사회학 개론에서 다루는 거거든요. 근데 이거 가지고, 깊게 다룰 부분들을 굉장히 많습니다.

김정진: 그건 공부하시는 분들이 하시면 되죠.

원시: 그래서, 전 프랑크푸르트 학파 들어보셨죠? 그래서 어 이건 무슨 막스 베버의 합리성 부분과 칼 마르크스의 그런 ‘(자본주의) 비판’ 부분에 대화를 시도하는구나, 저는 처음에 그런 줄 알았어요. 깜짝 놀랐네요.

8 부. 청년들에게 진보정당 운동을 권유할 만한가?

인터뷰 링크: 8부~10부 : 

원시: 우선은 추천할 만합니까?

김정진: 이 일을 하자고?

원시:

김정진: 10년 전 같으면 하자고 했겠죠. 아무것도 모를 때이니까. 지금은 사실 뭐. ‘지금 밖에서 성공해서 당으로 들어와라, 그래야 받아준다’ 이런 말이 나오는 당이 되어버렸는데.

원시: 방금 그 말이 이제 진단이 굉장히 이제 (진보정당) 다시 출발점이 된 거 같아요. 여기까지 진짜 흘러왔고, 이게 어떤 현실적인 출발점인 거 같아요. 제가 이제 당원이라디오, 그 사실은 최초의 팟캐스트라고 볼 수 있죠. 우리 정당사에서. 그때 같이 하신 분들 숫자가요, 거의 20~30명 정도 되요. 그래서 4년을 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 쉽지는 않거든요. 왜냐면 지금 당원이라디오에서 나경채 후보, 김종철 후보, 그 다음에 정종권 레디앙 에디터 인터뷰했잖아요? 그거 한 번씩 하면은, 준비해서 한 편을 만드는 데까지 12시간 정도 걸려요.

김정진: 꽤 오래 걸리는군요.

원시: 근데 그거를 4년 동안, 혼자 했다면 못하죠. 엄청난 많은 당원들의 자발적인 어떤 협력, 이런 것들에 근거해서 했는데, 이런 부분도 사실은 제가 관여해서 참여해서 기획해서 해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사실 당내에 제도화되고, 안착화되고 이제 그렇게 해야죠. 그런 부분 좀 아쉬워요.

칼라 TV 도 마찬가지고, 조대희(컬트조) 당원하고 처음에 시작했었는데, 기본 캔셉이 그때 “시민에게 마이크를 주자” (당 지도부가) 연설하지 말고, kbs 전국노래자랑이 가장 장수프로그램이잖아요. 그게, 그런 무대만 만들어주자. 그런 컨셉으로 해서 우리 진중권 선생이 (송해 역할을) 아주 잘 했고, 사람들하고 말하고, 그 컨셉을 아주 정확하게 소화를 해줬어요. 이런 긍정적인 경험 때문에 진중권 선생이야 당연히 예술철학 공부한 사람이잖아요. 자기 공부 영역이. 저는 사회정치 철학이고, 정치경제학, 이런 부분이니까, 다르단 말이예요.

그러나 그런 좋은 경험 때문에, 지금도 뭐냐면은 어떤 끈끈한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조국 사태 논란으로) 진중권 당원이 탈당해버렸어요. 너무 아쉽다. 그거는 왜? 우리 당이 그 정도 차이는 서로 표현할 수가 있을텐데, 그래서 제가 아까 당 분위기 있잖아요? 너무 사람 관계 쉽게 흩어지고 깨지고 그렇지 않나?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게.

(2020.01.21.중앙일보. 심상정 대표가 진중권 탈당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김정진: 진보정당 운동 분립의 역사가 담긴 상처는 큰 거 같습니다. 제가 봐도 이래저래 큰 거 같고. 이제 구성원들의 큰 상처를 남긴 것도 사실이고. 근데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 구성원 개개인,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운동이 가지고 있다는 큰 입장 차이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이제 당을 같이 만들면서 그 차이가 전혀 뭐 좁혀지지 않았고, 게다가 이게 극단적으로 극화된 거는, 제가 보기에는 이제 민주노총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 게 아니라, 그 정파 대립의 한 축이 되어버리면서, 민주노총 내부 대립구조까지 (당에) 얹혀지는 상황이 돼 버렸거든요. 조절이 불가능한 상황이 끝까지 가버린거죠. 이제 결국 파국을 맞아서 헤어졌는데 (2008년) 그런 것에 대한 재검토 없이, 그냥 정치적 필요 때문에, 어쨌든 선거 대응하기 너무 어렵고 작으니까 그런 것에 대한 고려나, 반성없이, 필요 때문에 합친 것이 더 큰 파국을 맞았던 것이 아닌가?

근데 이제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도저히 해결이 안되는 문제였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게 2012년 통합진보당…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여지더라고요.

원시: 노회찬 의원과 같이 일을 해왔었잖아요? 근데 이제 김정진 변호사와 어떤 의견 교환, 소통은 잘 되었나요? 노회찬 의원과 김정진 변호사 사이에.

김정진: (허허) 노의원이 훌륭한 분이시긴 하지만, 그렇게 저하고 그런 얘기를 자주 나누고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되게 신사세요. 포멀 (예의)하시고, 반말도 안하시고 필요한 일 있을 때 얘기하는 거지.

(김정진 변호사에게 노회찬이란 어떤 존재였는가를 물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고인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인터뷰 후에 김정진은 노회찬 전 의원이 토론이나 회의 등을 민주적으로 잘 운영했던 정치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원시: (노회찬 의원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과 실제 많이 다르죠.

김정진: 저 하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할 게 있겠습니까?

원시: 지론 여러가지 이야기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진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이게 좀 통하고, 뭔가 주고 받고 이런 관계들이 많이 형성이 되어야지, 그게 실제 시합에 나갔을 때 이길 수 있는 팀이 된다라고 보거든요.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건데, 바깥에 발휘하는 충격있잖아요. 임팩트, 내부 조직 (당 내부) 응집력 이게 굉장히 저는 취약하다고 봤어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김정진: 역설적으로요. 끈끈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원시: 그건 또 뭡니까 ?

김정진: 이 길이라는 게, 너무 힘들고 그리고 다 챙겨 줄 수도 없고, 버리고 가는 거죠. 저희 같은 무명, 소졸 그 말을 알죠. 그렇게 죽어가는 게 이유이기도 하고, 무명 용사들이기도 하고. 실제로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까. 그거는 너무 이게, 이제 참 마음에 큰 짐이고, 끈끈한 관계 별로 믿지 않습니다. 그걸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그랬으면 뗏목 타고 태평양 건너는 식으로 하는데 어떻게 건너겠어요?

원시: 김정진 변호사가 진보정당 운동 하면서, 굉장히 비유를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김정진: 외부자가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원시: 제가 어떤 걸 느꼈냐면요, 레디앙TV(편파tv) 저는 알아 듣겠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근데 이런 생각이 한편으로는 들었어요. (정의당)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는, 저런 이야기를 정말 그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이해할까? 김정진 변호사가 18년 동안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답답한 일이 많았구나, 라는 걸 제가 느끼는거죠.

김정진: 많죠. 안되는 것이 더 많았으니까요.

김정진: 다만 마지막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 동지들이 노선과 인물을 일신해서 기회를 잡기를 바라는데 다들 너무 지쳐서 그럴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김정진 변호사는 18년간 진보정당 경험을 통해, 로베르트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에 대해서 언급했다. 진보정당 안에서도 소수 상층 정파 리더, 혹은 당대표 등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체험했고, 당 전체 기구가 그런 소수 권력자들의 동원체계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김정진은 미헬스를 언급했을 것이다. ‘철의 법칙’ 표현은 막스 베버도 좋아하고, 미헬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의 민주주의론이 아닌 미헬스를 언급한 김정진의 문제 의식은 한국 진보정당이 처한 현주소라고 해석해야겠다)

원시: 최근에 페이스북 글이나 아니면은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어요? 김정진 변호사 스타일이, 근데 그런 스타일이 우리 당 안에서 조각돼서 결과물로 드러내지 많이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근데 지금 당이 살기 위해서는, 어떤 개성을 굉장히 살려주는 당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김정진: 원시님께서는 어쨌든 정치학 사회학 공부를 많이 하셔서, 사실 저는 예전에는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막스 베버보다, 로버트 미헬스(Michels)가 더 맞지 않느냐, 과두제 철칙이거든요. 독일사민당 운영하는 것을 보고, 정당이 과두제에 사로잡혀서 당시 1차 세계대전 그 즈음에 노동자들이 새롭게 또 혁명에 대해서 급진적 행동을 나섰는데, 독일 사민당 지도부는 그것을 억제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다가, 결국 이 사람이 무솔리니 편으로 가버렸잖아요.

사실 저는 20대에는 미헬스 결론을 심각하게 고려를 하지 않았어요. 미헬스의 통찰력이 결국 더 맞는 생각이 아닌가? 마지막 기대를 조금만 갖고 있는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요. 정당이라는 게 조금 더 민주적이냐 아니냐, 사회가 기본적으로 과두제인데.

원시: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 정치적 리더십을 형성하는 과정이 예술이어야 하죠. 민주주의적 예술이어야 되는데, 지금 이제 제가 받는 느낌은 뭐냐면, 김정진 변호사가18년 동안 했던 경험들을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종범이 프로야구 선수 생활 한 연수랑 똑같잖아요. 좌절도 있고, 근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당도 화해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분열과 대립이 있었을 때. 화해의 계기 있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세련된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서로 싸울 수 있고 어떤 지위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잖아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프로야구도 (투수가 타자) 머리를 맞추면 퇴장 당하잖아요? 투수가, 그냥 동업자 의식은 있어야죠. 그래야 팬들은, 관중이 오고, 야구장을 찾아오고 한마디로 말해서 장사가 되는 거잖아요. 프로야구가. 근데 왜 화해를 못하죠 ? 사람들끼리.

김정진: 권력은 화해하지 않죠.

원시: 아니면 권력은 화해하지 않는다, 그거는 우리 진보정당 정치철학으로 될 수 없죠. 이 이야기를 말씀드린 이유는, 영화 세븐 사무라이(Seven Samurai) 영화 아시죠?

김정진: 7인의 사무라이, 예전에 봤는데.

원시: 김정진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그 캐릭터 중에 있어요. 김정진 변호사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잘 모르고 그러는데, 나는 김정진 변호사를 굉장히 대중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 영화 말미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면, 세븐 사무라이 중에 다 죽고, 두 명인가 세 명인가 살아남아요. 그 주제가 그거잖아요. 겁많은 농촌 사람들이 도둑떼가 마을로 처들어오면, 처음에는 다들 도망가고 그랬는데, 세븐 사무라이와 힘을 합쳐 가지고, 도적떼를 물리치는 게 주제인데, 주제는 간단해요, 근데 그 대장이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그들, 그 겁쟁이 동네 부락 농민들 무덤 앞에서, 그 대장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사무라이가 주인이 아니라, “당신들이 해낸 것이라고” “당신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해요. 진보정당이 (사무라이 대장이 말한 것) 그렇다라고 보는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했어야 될 게.

김정진: 그런 마인드 있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 장면. 도적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다 죽어간 농민들 무덤 앞에 선 사무라이가 농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시: 김정진 변호사가 그 마인드가 있다고 보는데요,

김정진: 아니 그럼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무명용사가 그런 마인드가 있죠. 근데 이제 그거야 위기 시에 한번씩 하는 거고. 지금 상황에서는 끝난 것 같고, 저 같은 서생이 할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죠. 다만 이제 당내 정치인들이 어떻게 행보를 잡아 나가는가,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제가 보기에는 이제 앞으로 쉽지 않을 거고요. 그래도 뭔가 노선과 임무를 혁신하려고 하면, 기회가 한번쯤 더 있지 않을까 이 정도는 제가 예측을 해봅니다.

원시: 자꾸 이야기하는 게 김정진 변호사더러 뭘 하라는 게 아니고, 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18년 동안 했던거 자체가 그 시대를 같이 해왔잖아요. 아까 말한 대로 이제 권력 문제가 굉장히 어떤 제가 느끼기에는, 일종의 정치적 좌절감 이런 부분들이 갖고 계신 거 같아요.

김정진: 좌절할만한 그런 것은 없는데, 그냥 안타까운거죠. 제가 뭐 되고 싶은 게 있어야 좌절하는거죠. 그게 문제일겁니다. 아무래도. 그거는.

원시: 제가 80년대 민주당 586, 지금 진보정당 하는 사람들 다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안 하는데 요즘은요, 뭐 꼰대다, 재미없다, 이제 김어준 식으로 하는 게 이제 자리 잡고 있잖아요.제가 그 문화를 아주 잘 알긴 하거든요. 고등학교 때, 제가 선생들하고 많이 싸우면서, 그 B급 C급 문화를 아주 잘 알고는 있어요. 옛날에 학생운동 절반은,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도, 제사 지내는 것이, 김정진 변호사님도 잠깐 생각해보세요. 그 때. 학교에서 보면, 거의 다 추모제, 추모제, 제사였어요.

김정진: 그렇죠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으니까요.

원시: 그게 다 제사여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제사가 너무 싫었어요. 문익환 목사가 “무슨 열사여” 하는 연설 있잖아요? 너무 듣기가 싫었어요.

김정진: 3년 상도 아니고, 10년씩 하니까.

원시: 근데 지금 우리가 다시 이제 그 때 복기를 해 보면 어떤 거냐면, 개인이 뭐가 된다, 또는 아주, 현실적으로는 살아 나가야 하니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결국에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에 있어서 (아직도) 그런 연속이 있지 않나요? 제사를 그렇게 안 지낼 뿐이지. 우리가. 지금 정당을 만들어 놨으니까.

김정진: 근데, 이제 그 힘이 소진되어 가고 있는데. 뭔가를 못 만들어 놓은 거, 저거 지금 제가 보기엔 그런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거 같아요. 그런 그 에너지가 소진되어 가는데 뭔가를 못 만들어냈고,동력도 떨어졌고,저희 세대가 그냥 사라져 주는 게 역사 순리적으로 당연한데, 그렇다고 그게 이후 세대들한테 저희가 사라진다고 해서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답답함이 있을 거예요.

원시: 이종범 선동열은 은퇴 한다고 한국프로야구 없어지지 않잖아요?

김정진: 그쵸. 제 경험이라는 게 그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 솔직하게 말씀 드렸는데,

원시: 6개월 정도 직장생활 해도요, 책 1권을 씁니다. 200페이지~ 300페이지를 써요. 근데 18년 동안 하셨으니까, 그거 딱히 특별히 뭐 김정인 변호사를 과장되게 평가해서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노하우나 누적된 그런 부분들이 다른 나라정당 같으면은요, 다 그 책 출판하고 그래요. 아니 다른 정당도 그럴걸요. 아마 우리나라에. 저라도 대화를 해야겠다. 그래서 한거고. 당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은 언제인가요?

김정진: 2019년 작년 7월에 정책연구소장을 그만 두었고요.

원시: 임기가 끝나서 관둔 것인가요? 아니면?

김정진: 대표가 바뀌고 해서 그만 뒀습니다. 임기가 끝나서 관둔 건 아니고요. 근데 제가 그만둬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이제 서생은 진퇴가 분명해야 하고, 제가 할 일 없더라고요, 기여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남아서 뭘 할 생각 있었던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뭐 할 일은 없는 거 같다. 그런 결론을 내린 겁니다.

원시: 아니 그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진보 정당에서 몸을 담았던 사람들의 피와 땀, 또는 어떤 죽음, 이런 가치들이 한국 그 월급쟁이나 노동자들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진보정당) 내부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가치평가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계속 좀 집요하게 묻는 거예요. 그거를. 당 한국 안에서 보는 거랑, 내가 바깥 해외에서 보는 거랑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분명히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해요. 페이스북에 뭘 썼더니 ‘원시 당신은 정의당에 대해서 애정이 과하다’ 현실을 알면, 당신 그렇지 않을거다. 그런 댓글이 있어요. 근데 이런 댓글은 2002년~2003년2004년, 이럴 때 우리가 온라인에 ‘깨끗한 손’이나 진보누리 등, 민주노동당 지지하는 이런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문장들이거든요.

나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고, 사람들이 실망할 수도 있고, 분명히 결과가 없을 수도 있고 그러는데, 그런 부분들을 너무 쉽게 사장시키지 않으냐, 그런 차원에서 제가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김정진: 무명용사의 숙명이죠. 그냥 조용히 사라져 주는거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관계없죠. 먼저 간 동지들이 알아 주겠죠. 그걸로 족합니다. 그 뜻을 아시는 분들 할 거고, 모른다고 해도 할 수 없고.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먼저 간 동지들한테 미안하고.그 뭐 제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지엽적인 것이예요.

무명용사, 서생의 길이 있을 뿐이고, 저희가 똘마니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운동권이 돈과 권력이 없지 가오가 없습니까? 똘마니는 똘마니들의 길이 있으니까. 정치인들과 똘마니들이 공생관계. 그렇게 사는건데. 누가 알아 주고 뭐 그건 뭐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계속>

김정진 변호사 (전 정의당 정책연구소장,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인터뷰 날짜,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오후 8시

대화 및 질문자: 원시

필자소개
정의당 평당원. 레디앙 국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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