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국민투표 한번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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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9일 08: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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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을이 온다. 영 사라질 것 같지 않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그래서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명을 가지고 사람들은 지혜로운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이 서 있는 조건에서 그렇게 넓게 그리고 멀리 세상을 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여름과 겨울, 엄청난 차이인 것 같지만 그야말로 온도가 조금 변했을 뿐인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민감하게 차이가 난다.

    술 얘기로 시작하는, FTA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수다

    추운 지역에 가면 술은 도수가 높아진다. 그리고 더운 곳으로 가면 술이 도수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해서, 아프리카에 가면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지역이 많아진다. 탄자니아에 갔을 때 ‘킬리만자로’라는 상표를 가진 지역 맥주가 있었다. 예전의 크라운 맥주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효모향이 나름대로 살아있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는 잘 수입되지 않는 일본의 기린맥주와 비슷한 맛이 나기도 한다.

    탄자니아는 사회주의를 선택했던 나라인데, 미국의 길을 걸었던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의 경제와 문화의 차이를 비교할 때 종종 인용되는 나라이다. 그 두 나라 사이에 마사이 종족이 끼어있다. 말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마시면서 사막을 건넌다고 하는 무서운 전설이 흐르는 마사이족은 술 같은 건 마시지 않는다.

    반면에 프랑스로부터 라인강을 건너서 동쪽으로 가기 시작하면 술의 도수들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가장 대중적인, 가끔은 ‘독일식 소주’라고 번역되는 슈납스는 아마도 스웨덴 바이킹의 북구 전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주석 잔에 40도 정도 되는 슈납스를 한 잔씩 따라준다. “신들은 주석 잔에 벌꿀로 만든 술을 먹었다”는 북구의 전설은 이 술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독일에서 알프스 쪽으로 내려가면 스위스를 만나게 되고, 쮜리히와 베른 같은 도시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도 슈납스와 비슷한 술을 버찌나 산딸기 같은 것으로 빚는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맛있는 독주가 이 술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섣부르게 위스키 흉내 낸다고 만든 버번이나 브랜디 같은 술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도 좋고, 다음 날 숙취도 별로 없다.

    스위스를 생각해보면 깝깝하고 도저히 살기 어려울 정도로 잘난 척하면서 속이 꽉 막힌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지만, 그래도 스위스의 독주들만 생각하면 마음은 쮜리히나 로잔느 같은 곳으로 날아간다. 좋은 술은 빚는 곳은 왠지 사람들도 멋질 것 같은 편견…

    2.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의 나라인데, 그야말로 국민 누구도 “내가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보통 유럽국가들이 민족주의가 강하고, 민족적 성향이 강한데, 스위스는 독일어권, 불어권, 이탈리어권 그리고 알프스 산중의 켈트족을 의미하는 헬베티카어족 등 4개의 언어권이 하나의 나라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그래서 국가적 자긍심 같은 것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 칸톤(canton)이라고 부르는 자치구이다. 큰 것은 쮜리히 칸톤처럼 10만 명이 넘는 것도 있지만 보통은 2~3만명 정도가 하나의 구를 형성한다.

    스위스 우파들이 만든 ‘다보스 포럼’

       
    ▲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스위스에도 극좌부터 극우파까지 전부 있고, 여기에 세계 최고의 악덕기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네슬레의 신자유주의자들까지 전부 공존하고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쮜리히 대학출신이고, 쮜리히 연방공과대학 출신인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의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5,000명 정도의 당원을 가지고 있는 녹색당은 연정에 참여해 환경부 장관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좌파들한테 나라를 넘길 수 없다고 스위스의 개방파들이 몇 년 전부터 세계적인 행사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그 유명한 ‘다보스 포럼’이다.

    몇 년 전 내가 UN에서 약간 유명해졌을 때에 초청이 있었는데, OECD 회원국인 한국에는 비행기표를 주지 않아서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다보스 포럼에 간다고 출장비 달라고 하기가 차마 민망해서 안 간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다보스 포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고, 수많은 유럽 시골 도시에서 개최하던 그저 그런 컨퍼런스 중의 하나였다.

    이 다보스포럼과 네슬레를 중심으로 스위스에서도 미국과 FTA를 해야 한다는 개방론자들이 많이 있었다. 스위스 개방파들은 극우파들은 아니고, 중도우파와 중도좌파들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개방파들의 힘이 가장 좋았을 때 스위스가 UN에 가입했고, 곧 이어 EU 가입도 추진했었는데, 이 때에는 극좌파와 극우파가 손을 잡고 EU 가입을 막았다.

    개방파들이 힘이 꺾인 것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라크 파병’ 때의 일이다. 정치적 의도는 파병도 할 정도로, 국제적 흐름에 따라갈 정도로 국제화시키면 EU 가입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에는 극우파들이 맹활약했다. ‘파병 반대’를 국민투표에 올렸고, 극우파들이 승리했다. 이를 통해서 CDG라는 극우파 정당이 스위스 제 1당이 되었다.

    개방파들이 마지막으로 힘을 쓰기 위해서 걸었던 것이 미국과의 FTA였다. 이라크 파병과 달리 극우파들도 의견이 나뉘었고,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FTA 협상을 상당히 ‘쎄게’ 했다.

    3.

         
    ▲ 국민투표 당시 GMO 모라토리움에 찬성하는 단체의 깃발  
     

    결론부터 말하자면 GMO Moratorium(유전자 변형식품의 재배 유통 일시정지-편집자)의 5년 연장에 관한 국민투표가 미국과의 FTA의 일종의 신임투표처럼 되었는데, 스위스 내에서 ‘유전자변형식품’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스위스의 식품안전과 함께 알프스를 지키는 전통농업 그리고 유기농업의 꿈을 상징하며, 동시에 이를 지키는 공익적 활동을 하는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의미한다. 국민투표에서 65% 정도의 국민이 GMO Moratorium 연장을 지지했고, 20% 정도의 국민이 ‘바로 개방’을 지지했다.

    스위스의 힘, 직접 민주주의

    이게 미국과의 FTA 협상을 종료하자는 말은 아닌데, 미국이 GMO 식품수입에 대해서 양보할 여지가 없다는 통보를 보내고 스위스와 미국의 협상이 ‘연기(suspended)’되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인가라고 질문하면, 언어도 다르고 민족도 당연히 다른 스위스와 같은 다민족 국가가 어떻게 하나의 사회적 통합을 만들고, 축구도 그렇게 잘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조작식품’을 먹이지 않는 것은 스위스 국민들에게는 일종의 의무인데, 모든 국민이 그 의무를 다 할 수가 없으니까, 농민들이 그 의무를 대리해서 수행한다는 것이 스위스 농업 정책의 현 기조이다. 물론 20% 정도의 상업과 공업인들은 여기에 대해서 불만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워낙 농업의 사회적 지지가 공고하니까 국민투표에 올라가봐야 질 것이 뻔하니까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없다.

    스위스라고 갈등이 없겠는가. 독일과 인접한 북쪽의 공업지대와 이탈리아와 인접한 남쪽의 농업지대 사이의 갈등은 뿌리가 깊고, 지난 세기에는 그로 인해서 나라가 붕괴될 정도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결국 공업지역이 세금을 더 내서 어려운 지역을 돕기로 결정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상호지원 체계 같은 것들이 스위스라는 나라를 경제적으로 하나로 통합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결정들을 만들어주는 힘이 직접민주주의의고, 그 최상위에 국민투표라는 것이 있다. 유사한 시스템을 프랑스와 독일도 사용하고는 있지만, 역시 스위스 표 직접 민주주의의 꽃은 ‘브레이크(break)’라는 이름을 가진 국민투표이다.

    4.
    우리나라에도 제도상으로는 이런 것들이 이미 도입되었는데, 주민투표가 그렇다. 경주에 방폐장을 유치할 때 한 난리를 겪은 적이 있고, 그렇게 세간에 많이 퍼진 사례는 아니지만 제주도를 특별자치도로 전환할 때 시군을 폐지하고 단일 행정체계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투표가 진행된 적이 있다.

    한국의 직접 민주주의

    학교급식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 주민발의 조례제가 실제로 사용된 적이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가 대체적으로 아직 잠자고 있는 주민소환제를 제외하면 거의 다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의 특별자치도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하지만, 일단 주민투표제를 거친 사안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후퇴니 풀뿌리 민주주의의 후퇴니 그렇게 외부에서 함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귀찮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런 좋은 점이 있기는 하다. 아무리 외부에서 이상해보여도, 자기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 데에야…

    초기에는 나도 제주도의 특별자치도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는데, 주민투표를 거친 다음에는 비판에 관한 생각은 깨끗이 접었다. 좋든, 싫든, 50% 이상이 원하면 하기로 하는 것이 불편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체계의 다수결 원칙이다. 정말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하자고 하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이 생길 것 같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치학자들의 평가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미 지역 사안에 대해서는 전부 주민투표와 같은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못한다. 해석하는 방식이 몇 가지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헌법이 너무 낡았다”라는 것이 사실 맞을 것 같다.

    87년에 주민투표를 생각하기나 했겠고, 제주도 같은 곳에서 특별자치도라고 만들어서 일반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자신들의 지역을 만들 것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나 했겠는가.

    그 때에는 오히려 국민투표 발의권을 함부로 주고나면 군부독재와 같은 독재세력들이 자꾸 국정을 흔들 것 같아서 제안한 것인데, 이제 이 87년 9차 개정헌법의 절차가 시대의 흐름과 좀 맞지 않는 심각한 오류가 생긴 셈이다.

    물론 국민들의 “의미 있는 숫자”가 원하면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의’하면 9차 개정헌법, 소위 87년 체계의 오류는 운용에 의해서 극복될 수는 있다.

    한미FTA가 방폐장이나 특별자치도보다 경미한 사건이라고?

    아니, 방폐장이니 특별자치도 같은 것보다 한미 FTA가 더 경미한 사건이라는 거야? 주민투표는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지역에서 정한 조례에 따라 1/20에서 1/5 정도의 주민동의를 받으면 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국가의 중요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든지”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 노무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한덕수 전장관이 “한미 FTA는 국민투표 사안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건 월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심상정 의원에게 “이건 국민투표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건 월권은 아닌데, 시대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시대는 무엇이든지 혹은 누구든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투표에 붙이자고 말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가고 있는데, 2006년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절차법 규정에는 맞는데, 시대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번 해봅시다”라고 말한다면,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멋진 대통령이라는 말과 함께 시대와 같이 갔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유럽 우파의 정신적 지주인 드골 대통령의 경우가 있다. 이건 정확한 경우는 아니지만, 하여간 신임투표에서 드골이 이기기는 했는데, 근소한 차이로 이겨서 “이건 이긴 게 아니다”라고 물러가면서 드골은 영원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9차 개정헌법의 절차법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킬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시대정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버린 셈이다. 한미 FTA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방폐장에서 지방자치도까지 전부 투표하는 시기에 “나에게 부의권이 있다”고 금을 딱 긋는 것이 시대정신은 아니다.

    만약 헌법이 말을 하고, 자신의 정신을 드러낼 수 있다면, 87년 체계의 정신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 같다.

    “웬만하면 국민투표 해보지 그래?”

    5.
    사실 나는 지난 2년 전부터 농업 혹은 유기농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국민투표 했으면 좋겠다고 우겼던 사람이다. 개인적인 소신이라면, FTA나 농업보다 국민투표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파나 좌파나 혹은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서 하나의 결정을 만드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

    국민투표 많이 해본 국민들이 더 똑똑하다

    그렇다고 국회의원들에게 부여된 입법권을 제한하거나 그러자는 얘기가 아니라, 때때로 혹은 아주 가끔이라도 국민들이 5년에 한 번씩 대통령 선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보완하는데, 내 단순한 생각이라서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국민투표를 많이 해 본 나라들은 국민들이 더 똑똑하고 스스로의 삶에 더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미국은 국민투표를 거의 안 하는데, 유럽은 툭하면 한다. 두 시스템의 차이를 규정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국민투표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유럽과 미국의 근본적인 차이는, 유럽은 혁명으로 그리고 피로 세운 나라들이다. 90년에 유학갔다가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코가 금방 옆방으로 끌려가서 죽는 걸 TV에서 보면서, “우와…” 정말 무서웠다. 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시스템은 지도자의 ‘품성’과 엘리트들의 세상 살아가는 법의 근본이 다르다.

    평소에는 TV가 시키는 대로 소비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고 가난한 도시빈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언제 이 유순한 ‘people’들이 혁명군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 유럽의 삶이다.

    ‘관용’이라는 말을 쓰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 실제로 유럽을 움직이는 힘은 아직도 ‘민중권력’이다. 그야말로 “누가 누구를 봐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다고 매번 혁명하고 매번 폭동을 일으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이걸 대체하는 게 국민투표이다. 지도자가 국민들의 지혜를 빌리자고 하는, 그런 미국식 행정절차에 의해서 생겨난 제도가 아니라,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라는 역사적 경험 위에 서 있는 차이이다.

    유럽을 움직이는 힘은 ‘민중권력’이다

    국민투표는 원래 국민들이 요구하는 절차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알아서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87년 체계의 맹점이다. 심리사회학 같은 거 공부하다보면 ‘폭력의 내재화’라는 요상한 표현이 가끔 등장하는데, 국민투표야말로 폭동을 내재화시켜서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국가주의’에서의 꽃에 해당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좀 사람들이 유순하고, 점잖다. 해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전인대’에서 매번 발표되는 엄청난 제도 변화들과 비슷한 시기에 ‘신년 국정운영 방안’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비교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에 비해서 착해도 너무 착하고, 유순해도 너무 유순하다. 그야말로 선비들처럼 ‘곱다’.

    ‘관리된 위험’이라는 말로 “광우병의 위험은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재개하는 거 보면서, 우리는 흉보지만 그래도 사무라이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일본 사람들에 비해서도 한국 사람들은 너무 곱디고운 민중들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 고위관료들은 “미국 사람들은 다 미국산 소고기 먹는데 왜들 그렇게 소란들이야”라는 식으로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단 한 마디로 뭉갠다. 미국에서도 겁나게 부자들은 아르헨티나산 아니면 호주산인 고급 소고기 스테이크를 주로 먹는지 아시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해물요리 일부 아니면 소고기를 뼈까지 고아서 만든 소위 ‘쇠고기 베이스’로 대부분의 음식을 만드는 나라이다. 떡국에서부터 장국 게다가 소고기 라면까지(광우병에 대해선 차라리 중국산이 미국산보다 안전하다) 전부 뼈를 고아서 만드는데, 살코기만 먹는 미국과 광우병 발생빈도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게다가 일본 정부는 자국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살코기에도 광우병 원인물질이 있다는 걸 밝혀내서 최근 세계적 특종을 했는데, 우리나라는?

    추석 전에 미국산 소고기 풀리면 민심 안 좋아진다고 추석 끝나고 나서 미국산 소고기 풀겠다는 정부 행정 보면 도대체 이게 정부인지 군대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6.
    말 나온 김에… 지난 2주 동안의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웃기는 일을 몇 개 또 했다. 그린피스에서 얼마 전에 미국산 쌀에서 GMO 원인물질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약간 기술적인 일이기는 한데, 미국 농부들이 일부러 넣은 것이 아니라고 하니, 그렇다면 GMO가 관리범위를 넘어섰다는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 생긴 셈이다. 엘리트주의로 큰 건만 찾아가는 그린피스는 그 엘리트주의 때문에 종종 욕을 먹기는 하는데(우리나라의 참여연대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하여간 허튼 얘기는 잘 안한다.

    식품 안전,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그리고 나서 일본은 수입중지와 조사를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장립종이라서 괜챦다고… 나중에 평가하면 이것도 정말 ‘뻘쭘해질’ 일이다.

    환경이니 생태니 혹은 후생이니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 아니더라도 당장 먹고 사는 것에 관련된 식품안전과 관련된 몇 주 동안의 일만 일본 정부와 비교해보더라도, 사실 현 정부는 정부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참는다. 정말 신기하도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내심은 놀랍다.

    가끔 프랑스의 ‘똘레랑스’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한국 민중들의 ‘관용’은 최소한 일본과 중국 혹은 대만 민중과 비교하면 엄청난 관용의 소유자들이다. 우리나라야말로 똘레랑스의 나라이다.

    이게 다 한미 FTA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최근 진행되는 사안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장관이 몇 번은 목 달아나고, TV에 자신의 딸, 아들과 같이 나와서 시식 하면서 “괜찮다”고 했을 법한 일인데도, 이게 영 아무 소식이 없다(광우병 잠복기가 20~30년이라서 정 괜찮다고 하면 자기 아이들과 같이 먹으라고 할 정도로 영국 민중들도 섬뜩한 인간들이다).

    7.
    요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한미 FTA를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한 나라의 정부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세계 10위 경제규모라고 하면, 그 규모에 걸맞는 국민 대접을 해주고, 먹을 것도 안전하게 하고 최소한의 대우를 해줘야 할 것 아니냐. 그야말로 “개방”도 좋지만, 식탁안전과 생활안전 그리고 하다못해 공기의 안전도 내주면서까지 먹고 살아야 할 정도로 지금 무역환경이 심각한 상황인가?

    FTA 자체보다 정부의 역할을 더 심각하게 생각

    이거야 원, 선진국 중 거의 마지막 남은 광우병 안전지대인 우리나라는 국제 협상에 나가서도 목에 힘 딱 주고, ‘안전지대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해도 관례상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에, ‘관리될 수 있는(managed risk)’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얘기를 딱딱 해대는 자칭 민주투사 때문에 도통 나의 상식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내 나이가 이제 40인데, 지금 돌과 화염병을 들고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교문 앞으로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제발 국민투표라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50%의 찬성표를 얻고, 그리고 당당하게 한미 FTA를 체결했으면 좋겠다. 나도 정말 국민 50%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당당하게 표를 ‘꾹’ 찍었다면 동의할 수 있다.

    피곤해도 그게 민주주의인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전두환 앞에서 그야말로 피로 얻어낸 9차 개정헌법 뒤에 숨어서 “나에게 부의권이 있다!”고 오리발 딱 내미는 걸 보면 정말 87년도,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진다(그 때 답답하게 ‘비폭력!’을 외치던 연세대학교 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가 입 딱 씻고 ‘국익’ 얘기하는 거 보면 피곤은 곱배기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토론하자고 그랬는데, 토론이 끝나고 나면 “니들 얘기 잘 알았어”라고 돌아서는 걸 ‘100분 쇼’라고 한다. 하지만 원래 민주주의는 토론 끝나면 투표하는 거다. 피곤해도 폭동이나 혁명보다는 그게 낫다고 투표하는 거다.

    한미 FTA 같이 민감한 사항은 토론으로 끝내는 게 아니고, 투표해서 ‘물어보기 절차’를 갖는게 여러 사람 편하고, 조선일보식 표현으로 “국론분열도 줄이는 길”이다.

    이게 국회가 완전히 전두환식 실내체육관의 거수기들과 다를 바가 없어져버리니 국민 된 도리로 한국에서 제 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게 너무 피곤하다(바다이야기처럼 나중에 한미 FTA도 “정책 실패일 뿐이다”라고 하면 그 뿐일까?).

    한미 FTA, 해도 좋은데, 국민투표를 통한 물어보기 절차라도 좀 만들어주시라. 그래야 찬성했던 사람들이라도 나중에 오리발 내밀지 않을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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