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자리와 돼지농장 소송
    [낭만파 농부] 생태환경 파괴에 맞서는 우리의 선한 의지에 응원을!
        2020년 05월 24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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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자리

    어우마을 모정 앞 논배미에 마련된 못자리에는 지금 볏모가 쑥쑥 자라고 있다. 모판을 앉힌 지 채 보름이 안 돼 아직은 하얀 부직포에 덮여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줄지어선 비닐하우스처럼 보인다. 사나흘 뒤에는 웃자라는 걸 막고, 실온에 적응시키기 위해 부직포를 벗기게 된다. 아마도 눈부신 푸른 융단이 펼쳐질 것이다.

    찰벼와 메벼가 뒤섞이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볍씨를 두 번 담그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못자리를 만드는 초반작업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벼농사두레 회원들이 여느 해보다 많이 참여한 덕분이다. 부처님오신날부터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를 두레작업에 바친 직장인 회원들의 열의에 힘입은 바 크다. 일손이 넉넉하면 작업이 느긋하고 쉬엄쉬엄, 놀멍놀멍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 일과 놀이가 따로 나뉘지 않는, 우리가 꿈꾸는 노동의 경지를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두레작업의 참맛이다.

    여기에 막동이(두레에 딸린 동아리)가 빚은 막걸리도 잘 익어 농주 노릇을 톡톡히 했다. 반주로, 새참으로 몇 순배 돌면 눈앞에 펼쳐진 들녘도 거나하게 돌아가는 법. 이 ‘술심’ 덕분에 진흙탕을 반듯이 고르고, 모판을 몇 장 씩 포개어 날라도 힘든 줄 모른다. 여느 해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작업이 끝나니 다들 좀 싱겁다는 눈치다.

    못자리

    못자리 두레작업 후의 모습

    물론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녹록치가 않아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유부리며 건둥건둥 작업하다 보니 못자리 두둑에 그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앞쪽 열 두둑과 뒤쪽 세 두둑 사이에 수평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앞 열 두둑에 물높이를 맞추는 게 당연한데 그러면 나머지 세 두둑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수분과잉으로 탈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회복이 되긴 했지만 이미 내상을 입은 터라 어떨지 모르겠다.

    # 돼지농장

    완주군의 ‘불허가처분’이 내려지고 두어 달, 어째 조용하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업체는 완주군을 상대로 불허가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더니 이달 들어 돼지농장 재가동에 반대해온 주민 대표를 상대로 형사고소(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 한 데 이어, 완주군과 군수까지 포함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새삼 부아가 치민다. 노동운동 한복판에서 반평생을 보냈으니 자본의 횡포에는 이골이 났지만 이 시골구석에서 다시 마주하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치열한 현장을 떠나와 한 10년 고요하고, 느긋하게 살았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온라인 문체’라면 ‘ㅎㅎㅎ’가 있을 자리)

    아무튼 고소고발, 손배소…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들볶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았던가. 이미 다 안다, 저들이 무얼 노리는지.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없이 사는 것들’을 괴롭히는 데는 돈만 한 게 없지. 이름만 대도 다 아는 대형로펌 동원해, 평생 가야 만져보지도 못할 돈 수억 원을 배상하라 을러대면 십중팔구 기가 팍 꺾이게 마련이지. 그 중압감을 용케 견뎌낸다 하더라도 없이 사는 것들에게는 소송비용 자체가 엄청난 부담일 터.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보자 이거렷다.

    민사소송의 소장

    집배원이 전해준 소장을 훑어보노라니 역시 날것 그대로 ‘자본의 논리’다. 사실관계는 꾸며내거나 비틀었고, 법리는 억지로 끌어다 붙여 놨다. 맨입일망정 ‘돼지사육을 통해 세상에 무얼 기여하겠다’는 따위의 수사초차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그저 “내가 내 돈 갖고 돈 벌겠다는데 왜 훼방을 놓느냐!”는 돼지 멱따는 소리뿐이다.

    여기서 맞닥트린 자본은 사용자 대신 ‘생태파괴자’다. 인구밀집 지역에서 초대형 돼지농장을 가동하면 지역주민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은 물론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돼지사육 허가를 내주지 말라 촉구했고, 완주군은 이를 받아들여 불허가처분을 내린 거다. 이를 ‘반대민원을 정치적 차원에서 고려한 행위’라며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란다. 이런 ‘정치적 행위’라면 골백번이라도 해야 옳지 않은가.

    앞으로 법리를 다투는 지리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법령도, 법관도 자본 편에 가까운 게 현실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온힘을 다할 것이다. 당연히 법정 밖에서도 더 큰 싸움에 나설 것이다.

    우리의 선한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응원해주시라.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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