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사람들 ‘가난의 경로’ 5년 좇다
[책소개] 『노랑의 미로』 (이문영/ 오월의봄)
    2020년 05월 24일 10:2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노랑의 미로》는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중 한 곳에서 벌어진 ‘강제퇴거 사건’을 토대로 했다.

2015년 2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한 건물에서 45개 방마다 노란 딱지가 붙었다. 건물주는 한 달 열흘의 시간을 주고 모두 방을 비우라고 일방 통보했다. 1968년 완공된 그 건물에서는 한 평도 되지 않는 방마다 45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8년을 거주해온 사람들도 있었고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이었다.

“주민 마흔다섯 명의 세계가 벼락에 맞았다. 강제퇴거 통보는 예고 없이 붙었다. 어제처럼 일어나, 어제처럼 밥을 먹고, 어제처럼 볕을 쬐고, 어제처럼 소주를 마시고, 어제처럼 자고 눈을 떴을 때, 주민들 앞엔 어제와 다른 오늘이 있었다. 길게는 20여 년을 살아온 방에서 어제처럼 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았을 때 너무 화사해서 눈이 얼얼한 노란색이 문 위에 있었다.”(59쪽)

그로부터 몇 달 뒤 쪽방 건물이면서 45명의 주민이 사는 하나의 마을이 황폐한 철거촌으로 변했다. 방들은 해머에 맞아 깨졌고,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쫓겨나지 않으려 행정기관을 찾아다니며 호소하던 주민들은 결국 한두 명씩 방을 빼야 했고,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춥고 깜깜하고 물이 나오지 않는 건물의 부서진 방에서 폐허와 공존했다.

이 책은 저자 이문영이 2015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가난의 경로〉를 씨앗으로 삼았다.

쪽방 건물을 리모델링해 외국인 여행객 대상의 게스트하우스로 용도 변경하려던 건물주가 그 방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퇴거를 통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건물주의 거듭된 공사 시도와 주민들의 저항, 단전·단수, 철거, 이사, 법정 다툼, 공사 중단, 노란집으로의 땜질, 귀가가 이어졌다. 법원이 주민들의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뒤 쫓겨난 사람들 중 일부는 그 건물로 돌아왔고 다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저자는 사건의 전 과정을 따라가며 1년 동안 ‘사건 이후’를 탐사보도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쫓겨나는 일은 일상이었다. 가난이 흔들 수 없이 견고해지고 공고화되는 ‘사태’는 ‘사건 이후의 일상’에 있었다. 누군가는 쫓겨나고 다시 쫓겨나는 일을 되풀이하며 가난해졌고,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 쫓아내며 누군가는 수익을 얻었다. 가난은 ‘사건의 순간’이 아니라 ‘사건 뒤 사태가 된 일상’의 누적 속에, 그 일상을 고립시키고 공고화시키며 이득을 얻는 구조 속에 있었다. 저자는 쫓겨난 사람들이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이동하고 그 시간 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지를 추적했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의 ‘가난의 경로’가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가난한 일상’은 계속됐다. 사건 당시로부터 5년이 흘렀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난한 일상은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가난의 경로> 연재 종료 뒤 ‘이후 4년’의 변화를 계속 따라가며 시간을 쌓았다. 그 시간의 이야기들을 강제퇴거 1년의 이야기에 보태고 수정해 대부분 다시 썼다. 모두 5년 동안 45명의 이야기를 좇았다. 5년 뒤 45명 중 9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남았다.

이 책의 세 가지 성격

1) 사건이 지나간 일상 추적한 탐사 뒤의 탐사

《노랑의 미로》는 탐사보도에 쌓아올린 이야기의 집이다. 쫓겨난 사람들의 5년을 따라가며 확인한 ‘가난의 경로’는 이 세계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가두고 고립시키는지를 확인시킨다.

저자는 강제퇴거당한 주민들의 이주 경로를 따라가며 이사한 거리를 하나하나 측정했다. 주민 45명 중 30명(66.6퍼센트)이 직선거리 100미터 안에서 이사했다. 몸에 100미터짜리 밧줄을 묶고 밧줄이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 맴돈 것 같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동자동 안에서 움직였다. 딱 그만큼이 그들에게 허락된 이동거리였다.

100미터 이상 1킬로미터 이내로 이주한 사람은 1명(2.2퍼센트)이었다. 1~5킬로미터를 움직인 주민과 5~20킬로미터 거리로 이사한 주민(매입임대주택으로 옮겨간 사람들과 사망해 무연고 납골묘에 안치된 사람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은 각각 5명(11.1퍼센트)씩이었다.

20킬로미터 밖으로 나간 사람(충북 음성 노숙인 요양 시설)은 1명(2.2퍼센트)뿐이었다. 3명(6.6퍼센트)은 이주 지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쪽방에서 쫓겨난 그들이 찾아간 새 방도 여전히 쪽방이었다. 31명(68.8퍼센트)이 쪽방으로 옮겨갔다.

“가난한 자들에겐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나뉘어 있었다. 무형의 장벽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508쪽)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는 자유를 살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자유란 사실이 확인됐다.

같은 동네의 한 건물에서 쫓겨난 그들은 같은 동네의 다른 건물에서 다시 만나 또 이웃이 됐다. 이동거리가 극도로 제한된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다시 만났다. 흐르지 못하고 퇴적되는 가난이었다.

5년이 흘렀다. 《노랑의 미로》는 강제퇴거 사건이 종료된 이후의 시간(2020년 2월까지)을 계속 따라가며 ‘탐사 뒤의 탐사’를 이어갔다. 그동안 45명 중 9명이 사망했다. 강제퇴거에 휩쓸렸던 주민들이 다섯 해 만에 5명 중 1명꼴로 세상에 없었다. 그들이 가난의 경로에서 이탈하는 길은 죽음뿐이었다. 《노랑의 미로》는 죽었으나 그 집을 떠나지 못하는 망자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강제퇴거당한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한다.(546쪽)

2) 기록되지 않은 기억으로 본 역사 밖의 역사

“가난의 뿌리는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이끈 길들과 그 길을 찌르는 뾰족한 돌멩이들 틈에 박혀 있다.”(211쪽)

가난의 경로는 특정 건물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새 거처를 찾아 이동하며 그리는 경로인 동시에, 서로 다른 시기에 태어나 서로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한 건물에 도착해 이웃으로 만나는 경로이기도 하다. 가난한 동네에 살아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므로 가난한 동네로 올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노랑의 미로》는 그들의 목소리로 복원한다. 그 경로를 밟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 한 칸’으로 찾아든 사람들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누구보다 아프게 겪어왔다. 정치와 사회가 불의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목격된다. 책은 묻는다.

“역사는 누구의 기억인가.”(109쪽)

《노랑의 미로》가 복원한 목소리들에는 ‘역사가 흘린 기억들’이 있다.

“역사는 시선이고, 위치며, 태도다. 역사는 기록하는 권력의 시선이고, 권력이 글을 쓰는 위치이며, 권력이 사실(fact)을 선택·배제하는 태도다. 그 시선의 멀고 가까움과, 그 위치의 높고 낮음과, 그 태도의 완고함과 유연함에 따라 역사는 객관적 기억과 주관적 기억 사이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모습을 띤다.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시선과 위치와 태도 밖에도 각자의 삶을 지탱해온 시선과 위치와 태도가 있다. ‘안’의 기록 권력들이 어떤 기억이 참이냐를 두고 논쟁할 때 ‘밖’의 사람들에겐 ‘안의 기억’이 과연 내게도 참이냐를 질문한다. 기록을 남기지 못한 자들의 역사는 기록을 지배하는 자들의 기억으로 대체돼왔다. 그들에게 역사란 대한민국의 기억일순 있지만 나의 기억은 아닐 수도 있다. 누락당한 개인들에게 역사는 검증되고 인증된 역사책이 아니라 그들의 뒤틀리고 편향된 몸의 기억 속에서 훨씬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그들의 공인받지 못한 기억 속에서 정의와 불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감각되기도 한다.”(110쪽 각주)

《노랑의 미로》는 역사가 버린 기억들에 귀 기울이며 그 기억으로 ‘역사 밖의 역사’를 쓴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실과 허구가 등을 맞댄 곳만 진실의 거처는 아니다. 이 책은 ‘안의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밖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안의 역사가 인정하지 않는 밖의 이야기를 쓴다. 기억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보다 그들이 몸으로 통과해온 ‘다른 역사’를 다만 전하고자 한다.”(110쪽 각주)

한국전쟁 때 산산이 깨져 거리에 부려진 어린아이의 삶이, 거리에서 살다 ‘후리가리’(일제 단속)당해 끌려간 섬(선감도)에서 겪은 지옥도가, 요정에 틀어박혀 ‘의리’를 도모하는 정치인들과 주먹들을 시중 들며 지켜본 ‘권력과 깡패가 구분되지 않는 시대’가, 전쟁의 공포를 이용해 내부를 누르고 권력을 다지는 정치 공학이, 적대함으로 공생하는 남북이 서로를 겨누며 창설한 특수부대(북한의 김신조 부대와 남한의 HID)의 내부가, 민주도 공화도 없던 민주공화 시대의 부정부패와 부실 공사의 상징(와우아파트)의 붕괴가, 깨끗하지 못한 권력이 ‘사회정화’의 주체가 되자 오염돼버린 말의 비극이, 그 비극 아래에서 청소되고 소탕돼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힘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국민을 전쟁터로 내보내 달러를 벌고 빌딩을 올리며 경제지표를 끌어올린 국가가, 그 국가로부터 ‘산업역군’과 ‘역전의 용사’로 호명됐으나 오로지 그 ‘역군’과 ‘용사’에게 떠넘겨진 성장의 이면이, 누군가의 집을 부수며 성장해온 토건 자본주의의 이면과 그들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 철거용역들의 ‘이뤄지지 않을 꿈’이, 그 시간들을 끌어안고 살아온 45명의 기억들이 동자동의 한 건물에 와서야 지친 몸을 눕혔다. 가난했으므로 그 건물에 와서야 쌓이는 가난한 기억들이었다. 《노랑의 미로》는 그들의 기억으로 역사를 쓴다.

1968년 사용 승인을 받은 그 건물의 시간 위에 그해 태어난 한 주민의 시간도 포개진다(83쪽 ‘천국’). 그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그 건물을 낳은 동네의 시대적 변천, 광복 이후부터 그 땅에 찾아든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 그들을 제거하며 ‘정비’하고 ‘정화’하고 ‘개발’하고 ‘재개발’해온 도시의 욕망, 그 욕망에 길들여진 채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들의 가난한 몰아내며 부를 쌓는 재산 증식 시스템, 그 핏빛 순환을 ‘발전’이라 부르는 이 세계의 마음이 겹쳐 보인다.

3) 문학의 자리와 경계를 묻는 문학 곁의 문학

‘표준’이 배제한 은어·조어·속어로 대韓민국이 가린 대恨민국을 드러내며 ‘2017년 판 난쏘공’이란 평가를 받았던 전작 《웅크린 말들》(후마니타스, 2017)에서 이문영은 이렇게 썼다.

“말해지지 않는 자의 저널리즘은 이야기였다. 왕조의 언어가 ‘실록’의 지위를 독점할 때, 백성의 언어는 ‘야사’로 버려져 떠돌았다. 말해질 기회를 소유한 사람들의 韓국어가 언로(言路)를 획득하고 기록으로 쌓일 때, 말해질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恨국어는 누락되고 기록 없이 새어 나갔다. 권력자들의 기록이 역사[正史]의 자리에 앉는 동안, 권력 없는 자들 의 비역사는 ‘이야기’로 전파됐다.”

이야기는 기록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전하는 수단이다. 가난의 경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경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으로 얽힌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주요 인물이 나올 때마다 그의 다음 등장 위치를 표시했다. 표시된 쪽수를 따라가면 해당 인물의 이야기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

《노랑의 미로》는 그 이야기들을 문학의 언어로 쓴다. 사실을 담담하게 쓰지만 담담한 문장 안에 격렬한 정서를 응축하는 이문영 문체는 《노랑의 미로》가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읽히게 한다. 픽션과 논픽션의 작법을 넘나들고, 문학적인 것과 문학적이지 않은 것의 차이를 흔들며, 문학의 자리와 경계를 질문하는 그의 글쓰기는 다만 무엇이 쓰여지고 말해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험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