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 고하를 막론하고
    능구렁이 한 마리만 구해주시오!
    [역사의 한 페이지] ‘비웃음’ 당하는 후배를 옹호하며
        2020년 05월 22일 0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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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백신 개발 전에 여전히 불안 불안
    가족들에게 혹시 전통적인 풀이나 나무에서 백신이 개발될 수 있으므로
    《동의보감》부터 시작해서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다들 날 비웃었다.
    귀납적, 연역적 방법이 안 될 때는 엉뚱한 가설이라도…….
    그나저나 쏟아지는 조소와 비웃음이 말이 아니다.
    나름 호주제 있었으면 당당한 ‘호주’였는데…….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지만…….

    독일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후배가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이다. 비록 주변에서 조소와 비웃음을 받고 있지만, 후배의 저 말은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니라 무척 진지한 것임이 분명했다. 후배는 그 다음 날 “This virus may never go away’라는 WHO(세계보건기구)의 발표를 보도한 외신을 공유하면서도 “어이쿠! 《본초강목(本草綱目)》부터 뒤져야 하나…”라고 써서 《동의보감》을 넘어 《본초강목》까지 관심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저 후배의 생각이 조소나 비웃음을 당할 일은 결코 아니다. 저 주장은 사실 내 생각이기도 하다. 나도 오래전부터 저런 생각을 해왔다. 진지하게…

    민간 의술에 담긴 옛 사람들의 경험

    서양 의술이 소개된 것은 개항 이후 선교사로 들어온 서양 의사들을 통해서였다. 그 이전에는 사람이 병이 걸리거나 아프면 침을 놓거나 탕약을 달여 먹거나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민간에서 내려오는 의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민간 의술이라는 것이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지만, 또 그렇다고 그것들이 죄다 허황되고 터무니없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이, 그 의술 역시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 속에는 수 천 년의 임상 경험을 통해 얻은 당대 최고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경험의 힘을 어떻게 쉽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진] 2015년 뉴스에서 투유유의 노벨의학상 수상을 보도하고 있다. 중국 전통의학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MBN 뉴스)

    5년 전 우리는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을 목격했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누구에게 수여되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중국 전통 약초 서적을 연구하여 ‘개똥쑥’으로 불리는 풀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낸 투유유(屠呦呦·85)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노벨위원회는 “전통의학에 상을 준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전통의학에서 영감을 얻은 의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약을 개발해 전 세계가 사용할 수 있게 한 데 대해 상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의학이 전통의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풍수지리설을 통해 경험의 힘과 효용성에 대해 말해보자.

    풍수지리설이 먼저인가? 아니면 좋은 땅, 즉 명당(明堂) 관념이 먼저인가?

    당연히 명당이라는 관념이 먼저이다. 풍수지리설이 먼저 있고 사람들이 그 학설에 따라 명당 자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획득한 좋은 도시·주택 또는 묘 자리에 대한 총체적 경험들이 집대성된 것이 풍수지리설 아니던가? 그러므로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명당의 조건에 따라 도시나 집 자리를 잡으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살기 좋다고 하는 곳을 모아 놓은 것이 그런 명당이었다. 그만한 지혜가 어디 있으며, 또 그만한 과학이 어디 있겠는가?

    민간 의술 혹은 민간 요법도 그와 같은 이치이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비과학적 요소가 없지 않다. 심지어 그걸 뛰어넘어 터무니없는 처방도 있다. 예를 들어 《동의보감》에는 ‘은형법(隱形法)’이라 하여 투명 인간이 되는 방법이 실려 있는가 하면, 임산부의 태 속에 있는 여아의 성별을 남자 아이로 바꾸는 비법, 즉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도 소개되어있다. 적당히 걸러 들을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당히 많은 처방은 그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사진] 《동의보감》의 ‘잡병편’에는 전녀위남법이 소개되어 있다(왼쪽), 한편 ‘탕액편’에는 인시(사람의 마른 똥)을 약재로 소개하고 있다.

    민간요법에서는 뱀 종류가 약으로 많이 쓰인다. 특히 백화사, 살모사, 오초사 등의 뱀 종류는 경락의 기운을 잘 통하게 하고, 혈액 순환을 좋게 하는 작용이 있어 각종 사지 관절의 통증에 많이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는 다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살모사에서 추출되는 반비틴크라는 성분은 몸에 매우 좋은 성분이라고 한다. 살모사의 내장과 껍질을 제거하고 건조시킨 다음 유효성분을 에탄올로 추출한 것이 반비틴크라는 성분인데, 여기에는 자양강장제의 대표적인 성분으로 알려진 타우린을 포함해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과 비타민B군이 함유돼 있다는 것이다.

    민간요법 중 똥도 약으로 쓰였다. 《동의보감》에는 ‘인시(人屎)’라고 하여 사람의 마른 똥을 약재로 소개하고 있다. ‘인시’는 유행성 열병, 열 때문에 생기는 모든 독과 부스럼, 균독 등을 치료하고 어혈을 풀어 피를 맑게 한다고 한다. 전통 의서에는 사람똥뿐 아니라 개똥도 약재로 소개하고 있다.

    먼저 《본초강목》에는 오래되어 먼지처럼 하얗게 갈라진 강아지 똥은 누창 등의 독을 치료하고, 냇가의 장돌 위에 오래 삭은 개똥도 약에 쓰인다고 한다. 또한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백구시’(白狗屎)에 대한 기사도 나온다. 이는 ‘흰 개의 똥’을 말한다. 이 똥은 종기나 고름에 좋고, 이것을 말려 불에 태운 후 술에 타 마시면 어혈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은 아무 이유없이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구의 똥에 무슨 성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좋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계속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것이다. 어찌 알겠는가? 백구의 똥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특효 성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전 세계의 제약회사들이 개똥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통에 개똥 품귀 현상이 생겨 정말 ‘개똥도 약에 쓰려니 없다’는 말이 21세기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회자될지. 그날이 오면 이 속담은 한국만의 속담이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속담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뿌듯하지 않겠는가?

    “Even dog shit can not be found, When needed.”

    K-Pop, K-Drama, K- 방역 등에 이어 이제 K- 속담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사진] 1970년대 아이들이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오른쪽 아이가 백구를 안고 있다. 저 강아지의 똥은 전통 의학에서 약재로 쓰였다. (박건호 수집 사진)

    일제강점기 주창열과 능구렁이

    몇 년 전 옛 종이 문서 한 장을 수집했다. 한지에 쓴 옛 편지로 주창열이 자신의 자형(姉兄)에게 쓴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26cm, 세로 22cm 크기의 이 편지는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있는데, 편지 앞머리의 2〜3줄은 심하게 흘려 쓰는 바람에 해독이 쉽지 않고 4째 줄부터 간신히 해독이 된다. 편지를 쓴 시기는 기사년 2월 10일인데, 종이 재질과 국한문 표기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1929년으로 추정된다. 대략 90년 전에 쓰인 것이다.

    주창열의 간찰 왼쪽에서 세 번째 줄 아래에는 ‘죄인제(罪姻弟)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죄 많은 누나를 둔 처남‘이라는 뜻이다. 실제 죄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상투적으로 쓰인 표현이다. 이 표현을 통해 수신자는 주창열의 자형으로 보인다. 편지의 요점은 주창열이 왼쪽 어깨를 크게 다쳐 백방으로 약을 써도 듣지 않자 자형에게 ‘섬사(蟾蛇)’를 구해 달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섬사’에서 ‘섬(蟾)’자는 두꺼비, ‘사(蛇)’자는 뱀을 뜻하므로 얼핏 보면 ‘두꺼비’와 ‘뱀’을 구해달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섬사’는 능구렁이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우리나라의 뱀 중에서 두꺼비를 잡아먹는 뱀이 능구렁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능구렁이 외에도 능사, 능구리라고도 불리는 이 뱀은 독은 없지만 성질이 사나워서 살모사 등 독사도 잡아먹는다. 또한 이 뱀은 ‘뱀 중의 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힘이 세고 덩치가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뱀들을 잡아먹는 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능구렁이’라는 이 뱀의 이름을 들은 독자들은 매우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능구렁이 같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능구렁이는 독이 없고 행동은 느리지만 무서운 뱀이다. 천천히 다가가지만 결국 자신의 덩치만한 두꺼비를 꿀꺽 삼켜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덤비지만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수완가를 흔히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평소에 보기에는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게 보이는 자가 속으로는 아주 교활하거나 은근히 목적 달성을 위해 속셈을 숨기고 접근하는 경우에 ‘능구렁이 같다’ 또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능글능글하다’거나 ‘능글맞다’는 말도 능구렁이 같다는 말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또한 구렁이가 쉽게 담을 넘는 것에서 나온 말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 말 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능구렁이는 10월에 동면에 들어가 4월경 동면에서 깨기 때문에 주창열이 편지를 쓴 시점인 음력 2월(양력으로는 대략 3월) 경에는 능구렁이를 찾기 쉽지 않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창열은 능구렁이를 간절히 구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두꺼비를 잡아먹은 능구렁이로 담은 술(능사주)를 먹으면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깨죽지가 백방의 노력에도 차도가 없이 계속 아팠던 주창열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이 ‘능구렁이’였던 것이다. 창열은 능구렁이를 애타게 구하는 편지를 결국 자신의 자형에게 쓰게 되는데, 그것이 얼마나 절박했던지, ‘가격 고하를 따지지 않고’ 구한다라든지, ‘기망(企望;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기다림)’, ‘대망(大望; 크게 기대함)’ 이런 표현을 여러 차례 쓰고 있다.

    그럼 이제 편지 내용을 바탕으로 주창열의 편지와 관련된 전후 사정을 재구성해보자. 약간의 상상력도 가미했음을 밝혀 둔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그해 겨울로 돌아간다.

    주창열은 1929년 음력 정월 보름 직후 나주에 있는 여동생 집을 찾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작년 시집간 막내딸이 어찌 지내는지 둘러보고 오라는 분부를 받들어 갔던 것이다. 거기서 하루를 묵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전날 내린 눈길에 미끄러져 왼쪽 어깨를 다치고 만 것이다. 창열은 돌아와서 찜질도 하고 침도 맞고 했지만 별 차도도 없고, 오히려 통증이 심해지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곧 농사철이 되는데 집에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농사를 지을 사람이 딱히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러던 중 장날에 능구렁이가 허리나 어깨 통증에 좋으니 다려먹으라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특히 두꺼비를 잡아먹은 능구렁이로 담은 술은 신경통에 특효가 있다는 말은 그의 귀를 솔깃히게 했다. 창열은 능구렁이를 구하고자 온 마을을 다 뒤졌으나 자신이 사는 동리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창열은 결국 10리 떨어진 못골에 사는 자형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능구렁이는 평지나 낮은 산지에 살고, 논이나 못을 좋아한다. 못골에는 이전부터 뱀이 많다고 어른들이 말하던 것을 떠올렸다. 창열은 간절한 마음으로 한자 한자 글을 써 내려갔다. 혹시 거기서도 못 구하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되기 때문에 능구렁이가 있든 없든 그 결과를 꼭 알려달라는 말을 추신으로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창열은 곧 시작될 봄 농사 전에는 빨리 어깨죽지가 낫기를 간절하게 빌 뿐이었다.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도 찬바람이 휘익하며 문풍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사진] 주창열이 능구렁이를 구해달라고 자신의 자형에게 쓴 간찰이다. 붉은 테두리 부분이 ‘價선 高下間에 한壹을 구하얘’ (값은 고하간에 한 마리를 구하여) 달라고 절박하게 부탁하는 대목이다. (박건호 소장)

    (전략) 정월 망후(望後; 보름후)에 나주의 여동생 집(妹家)에 가서 왼쪽 어깨죽지(左肩)가 불편하여 지금까지 차효(差效; 차도)가 없고, 점점 중(重)하여 속으로 아프고 저려오니 별무타약(別無他藥; 다른 특별한 약이 없음)하고 혹 여쭙는데 섬사(蟾蛇; 능구렁이)가 좋다하되 이 동리에는 구할 수가 없고, 귀 마을에 혹시 구해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값은 고하간(高下間; 높거나 낮거나)에 상관없이 한 마리를 구하여 내도(來到;와 닿음)하기를 기망(企望;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기다림)합니다. 예를 다하지 못하고 이만 마칩니다.

    기사년 2월 10일

    주창열 올립니다.

    추신: 능구렁이가 유무간(有無間;있든 없든)에 글이 도착하면 즉시 회답주시기를 대망(大望)! 대망(大望)!”

    <사족>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독일의 후배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페이스북에 또 새로운 글을 올렸다. 그의 전통 의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에는 “제주 출신, 강세찬 교수, 코로나19 감염 억제 식물 찾아냈다”는 ‘제주의 소리’ 2020년 5월 18일자 기사를 공유하면서 올린 글이다. 이 기사는 선학초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이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감염될 때 부착되는 단백질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보도하고 있다. 이 기사를 본 후배는 자신의 생각에 더 큰 확신을 가지면서 득의만만한 미소로 이 글을 포스팅했을 것이다. 글의 제목은 이렇다.

    “《동의보감》 가지고 연구하면 될 수도 ㅎㅎ”

    후배의 건강을 빈다.

    [사진] 독일의 후배가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들이다. 주창열이 능구렁이를 간절히 찾았듯이,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서 백신을 찾아야 된다는 후배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역사의 한 페이지 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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