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통과된 좋은 법과 나쁜 법
    과거사법, N번방 방지법 등 박수 vs 집시법, 교원노조법 개정안 등 규탄
        2020년 05월 21일 08: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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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며 ‘최악의 국회’라는 혹평을 받아온 20대 국회가 20일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130여 건의 법안을 무더기 처리했다. 일 안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20대 국회가 뒤늦게나마 통과시킨 법안들 중엔 n번방 방지법이나 과거사법처럼 많은 이들이 염원해온 법안들도 있지만,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통신요금 폭등의 길을 열어준 악법도 있다. 가까스로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들 중 놓치지 말고 챙겨봐야 할 몇 건의 법안들을 추려봤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927일 만에 집으로!

    마지막 본회의 가장 큰 성과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처리다. 19대 국회 발의를 시작해 법안 통과까지 7년이 걸렸다. 표결 결과는 재석 171인 중 찬성 162인, 반대 1인, 기권 9표였다. 927일간 과거사법 통과를 위해 국회 앞 농성을 벌여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최승우·한종선 씨도 집에 갈 수 있게 됐다.

    과거사법은 20대 국회에 발의된 7건의 법안을 통합해 행정안전위원회 대안으로 본회의에 상정됐다. 권위주의적 통치시대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을 진상규명하기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를 재가동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2006년 4월 24일부터 4년간 활동한 1기 과거사위가 신청기간의 제한과 짧은 조사활동으로 인해 상당수 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한 채 해산된 바 있다.

    19대 국회에서도 7개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관련해 여러 법안이 발의는 됐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으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최승호 씨 등이 국회 앞 천막농성, 한달에 가까운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며 국회를 설득해왔다.

    피해자와 유족 등의 노력으로 과거사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2기 과거사위를 구성해 추가로 드러난 국가폭력 사건과 조사가 미진한 사건의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법에 배·보상 관련 조항은 빠졌다. 배·보상 조항을 포함하면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미래통합당의 반대 의견 때문이다.

    과거사위 조사기간은 3년으로 정하고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진실규명 신청기간은 개정법의 시행일부터 2년이다. 조사 활동 수행과정에서 행정안전부나 대법원 등 관계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청문회도 실시할 수 있다.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기간을 1년 연장하는 내용의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을 위한 개정안도 반대표 없이 처리됐다. 또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로 규정된 부마항쟁의 발생기간을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를 전후하여’로 바꿔 진상규명의 범위를 확대했다.

    세월호 참사 구조·수색 활동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민간잠수사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할 수 있는 법안도 처리됐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세월호 인양으로 피해를 입은 어업인에 대해선 배·보상이 가능했지만, 민간잠수사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여론의 힘으로 만든 ‘n번방 방지법’

    n번방 방지법은 청와대 국민청원 등 여론의 힘이 국회를 압박해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 개정안(아청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n번방 방지법을 처리했다.

    반대표 없이 순탄하게 본회의 문턱은 넘은 아청법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한선을 두던 기존 법을 하한선을 두는 방식으로 개정해 처벌을 강화했다. 벌금형도 완전히 삭제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 무조건 실형이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음란물’이라는 규정했던 법률 용어도 ‘성착취물’로 바로 잡았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소지, 시청하기만 해도 1년 이상의 징역을 받도록 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한 죄를 신고한 사람에겐 포상금도 지급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 사업자한테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를 두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어긴 사업자는 2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 받게 된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방지 조치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다만 이 개정안에 통신사가 마음대로 통신요금을 정부 인가 없이 인상할 수 있도록 한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내용도 담겨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요금 인상의 우려가 있어 요금 인가제 폐지 방안을 빼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지만, 거대양당은 그대로 법안을 처리했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선 찬성하지만, 요금인가제 폐지에 반대해온 정의당의 경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의당에선 심상정·김종대 의원이 이 개정안에 기권했고 나머지는 찬성했다.

    정의당은 “의사일정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정의당으로서는 선택지가 없었다”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최종 판단했고 여성과 아동들이 겪고 있는 성착취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그 시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계통신비 부담 가중을 막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보완책을 갖고 입법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3건의 법안과 함께 디지털성범죄물 근절 및 범죄자 처벌을 위한 다변화된 국제공조 구축 촉구 결의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29일 열린 본회의에서도 성폭력 처벌법 등 n번방 방지법을 처리한 바 있다.

    헌재 결정 무시한 국회, 집시법 개악안 처리
    교수노조 탄압하는 교원노조법?

    본회의 처리에 환영 받는 과거사법이나 n번방 방지법과 달리, 노동·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하는 악법들도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집시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찬성 147인, 반대 14인, 기권 13인으로 통과됐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정의당 김종대·여영국·윤소하·이정미 의원, 미래통합당 정병국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개정 집시법은 2018년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배치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8년 헌재는 국회, 법원, 국무총리 공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 1항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개정 시한이 지나 해당 규정들이 삭제돼 어디서든 자유로운 집회가 가능한 상태였다.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집회와 시위를 할 때 각 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와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어야 한다. 우려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은 모두 경찰이 한다. 사실상 ‘국회, 법원, 총리공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제한’하는 내용인 셈이다.

    민주노총은 “권력기관은 여전히 집회 금지 성역의 공간으로 남게 됐다”며 “헌법 위에 집시법이 있다는 것과 권력기관 앞에서는 국민의 목소리를 차단시키겠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집시법11조폐지공동행동은 “집시법 11조는 집회 시위를 일률적이고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이유로 거듭 위헌으로 판단해왔다. 이번 집시법 개정은 이러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한순간에 무력화했다”면서 “국회는 불가침해야 할 성역으로 남게 됐고, 경찰은 무소불위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고 질타했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교원노조법)도 문제다. 개정안은 2018년 헌법재판소가 대학교원의 단결권 제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함에 따라 마련됐다. 문제는 교원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기존 교원노조법을 그대로 둔 채 대학교원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쟁의행위와 자유로운 정치활동이 가능했던 대학교원은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노동기본권이 전면적으로 제약 당할 위기에 놓였다. 또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내용도 빠져 있다.

    정의당과 민중당이 개정안 통과 후 논평을 내서 강력하게 반발했고, 전교조와 교수노조도 성명을 내고 “ILO협약에도 위배되고 오히려 교원들의 노동기본권을 후퇴시켰다. 개악안에 찬성한 의원들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도종환·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김종대·여영국·윤소하·이정미 의원 등 7명이 반대했고, 여야 의원 43명이 기권했다.

    코로나19 경제위기로 개정된 고용보험법으로 문화예술인이 새롭게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에 대한 요구가 높지만 개정안엔 결국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가 빠졌다.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임용 등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은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을 기존 67인에서 77인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이란 각 당 소속으로 상임위에 배치돼 입법 활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억대 연봉을 받는 이 자리에 입법 전문가보단 당직자들이 배치되면서 대부분 입법 업무가 아닌, 당 업무를 해왔다는 점이다.

    찬성 184인, 반대 13인, 기권 11인으로 통과됐다. 거대야당은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고 정의당, 민중당, 국민의당 등 소수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반대표와 기권표를 행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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