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의 한계와 공급 증가,
    결국 항공사의 과당 경쟁과 부실로
    [한국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 ②] 항공 수요의 한계
        2020년 05월 21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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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 ①] 규제완화, 과잉 공급의 부메랑 되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항공산업은 수요보다 공급이 더 가파르게 증가해왔고, 이는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려면 쉽게 말해 공급을 줄이거나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수요를 늘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방송화면 캡처

    국제선 중심의 불안정한 항공 수요

    좁은 땅덩이의 한국 항공산업은 국제선에 크게 기대어 있다. 2019년 기준으로 국내선과 국제선 여행객은 각각 3,338만 명(27%)과 9,090만 명(73%)으로, 국제선 비율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런데 국제선 수요는 늘상 불안정하다. 항공수요의 기반이 되는 여행수요는 본래 사회적 분위기를 많이 탄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해외 명소에 여행객이 몰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제선 수요는 대외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감염병(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대외 갈등(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 불매운동), 해외 사회문제(홍콩 민주화 시위) 등 국제적 환경에 따라 크게 요동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창이었던 2017년 외국 관광객의 한국 유입은 1,333만 명으로 전년(1,724만 명)에 비해 22.7% 급감했다. 2015년부터 연평균 15% 넘게 성장하던 내국인 출국은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에는 0.1% 성장으로 주저앉았다.

    한때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던 미중 무역갈등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의 책임 공방으로 다시 격화되고 있고,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간 연결이 해체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장기화와 반복적인 코로나19 감염사태, 보호무역 증가 우려도 크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항공 수요는 앞으로 더욱 자주 요동칠 수 있다.

    내국인 수요 정체

    그동안의 항공 수요는 내국인 아웃바운드(출국)가 견인해왔다. 2018년 국제선 이용객 중 아웃바운드는 2,772만 명(66.5%), 인바운드는 1,395만 명(33.5%)이다. 하지만 이후 내국인 아웃바운드 수요 전망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지난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4개월 연속 자연 감소했다. 올해가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17년 3,686만 명에서 2018년 3,679만6천, 2019년 3,679만1천 명으로 감소가 이어졌다. 생산연령인구의 비율은 2012년 정점(73.4%)을 찍은 후 계속 감소해 2067년에는 45.4%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항공 분야의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고, 내국인 수요 증가를 어렵게 한다.

    국내선 수요의 한계

    국제선 수요 증가가 불투명하다고 국내선 수요를 늘리기도 마땅치 않다.

    우선 땅덩이가 좁은 만큼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항공편 이용의 실익이 크지 않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철도의 길이는 441.7㎞로 KTX를 이용하면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고속버스로는 4시간 조금 더 걸리며, 승용차를 이용해도 웬만한 곳에서 출발해도 5시간 정도면 요금소 통과가 가능하다.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까지의 항공편은 도착시간 기준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탑승수속, 검역, 수화물 픽업 등의 부대 시간이 추가되고, 공항까지의 이동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KTX 이용과 비교해 대부분의 경우 시간상 이점은 거의 없다.

    때문에 주요 노선 몇 개를 제외한 여타 국내선의 상황은 처참하다. 2018년 한해 동안 이용객이 100만 명을 넘은 노선은 6개 노선(김포-제주, 김해-제주, 김포-김해, 제주-청주, 제주-대구, 제주-광주) 뿐이다. 김포·김해·제주공항 이용객이 전체의 86%에 달한다. 인천-대구 노선의 경우 1년간 1,453편이 운항했지만 이용객은 10만 명도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국내 공항은 만성적인 적자 상태다.

    소위 장사가 잘 되는 주요 노선에서 수요를 더 올리기도 어렵다. 공항의 처리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슬롯’(slot)인데, 쉽게 말해 활주로마다 비행기 이착률이 배정된 스케줄이라고 보면 된다. 제주공항 같은 주요 공항의 주간 슬롯은 거의 포화 상태다. 더 많은 비행기가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케줄이 차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인기 노선이라고 무작정 비행기를 늘릴 수도, 수요를 더 끌어올릴 수도 없다.

    이렇게 국내선 수요의 근본적인 한계는 국제선 중심의 성장을 가속화했고, 앞선 글에서 본 것처럼 국제선의 공급 과잉을 부추겼다. 수요의 한계, 그 수요를 상회하는 공급 증가는 결국 항공사의 과당 경쟁과 부실로 이어졌다. 다음 글에서는 국적사들의 열악한 재무 여건에 대해 살펴본다.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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