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구의역 참사 4주기···산재 사망은 반복
    '중대재해기업처벌법' 21대 국회 1호 법안 처리 촉구
        2020년 05월 20일 04:0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현대중공업에서 50년 가까이 산업재해로 인해 매달 1명꼴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추락, 끼임, 충돌, 깔림, 감전, 질식, 익사 등 재래형 중대재해나 장시간·중노동으로 인한 과로사가 대부분이었다.

    강원도 삼척시 삼표시멘트에서 일하던 6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13일 컨베이어벨트에 머리가 끼여 사망했다. 2인 1조 근무가 원칙이지만 고인은 사망한 당일 혼자 근무했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소속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 원인과 동일하다.

    그리고 20일 오늘,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 소속 김 군이 안전수칙을 지킬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일하다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여 사망한 사건인 ‘구의역 참사’가 4주기를 맞았다.

    노동계는 중대한 산재 사고가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기업을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기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방역의 모범이라며 K-방역을 외치는 대한민국에서 매일 7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의 죽음은 경제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만행이 판치는 한국사회를 한 치도 바꿔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유하라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와 사고원인 동일

    삼표시멘트에서 혼자 작업 중이던 하청노동자가 지난 13일 오전 11시 10분경 유연탄 대체 보조연료인 합성수지를 투입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머리가 끼여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동해삼척지역지부·삼표지부에 따르면, 당일 새벽 4시 경부터 전체 설비 보수 계획에 따라 설비를 세운 상태에서 보수·점검 작업이 진행됐다. 위험 작업이어서 2인 1조가 원칙이었지만 고인은 이날 혼자 근무하던 중 사망했다. 사망추정 시간은 오전 9시 25분경으로 한 시간이 넘도록 사망한 채로 방치됐다.

    지부는 “문재인 정권과 고용노동부는 산안법을 개정하며 ‘도급 사업 시 원청 사업주의 의무를 확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노동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삼표시멘트 원청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 또한 산업안전보건법과 노동부 운영기준을 위반한 안일한 대처로 현장의 위험을 방치했다”며 “태백지청은 사고발생 뒤 현장에 나와서도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사측 관리자의 말만 듣고 사고가 발생한 6호 설비에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사고가 난 설비와 동일한) 7호 설비는 사고발생 이후에도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계속 가동됐다. 노동자가 사망한 곳에서 불과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동료가 죽은 것과 똑같은 설비를 지금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와 동일한 모습이다. 하청업체 계약직이었던 김용균 노동자는 새벽 시간에 ‘혼자’ 근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2인 1조 근무 원칙은 지켜지지 못했다. 고인은 사망한 지 5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사진=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정치권은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처리했다. 이번 삼표시멘트 노동자 사망 사고는 개정 산안법이 현장에서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는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업이 안전) 비용을 줄여 이윤을 내는 데에만 혈안이기 때문이고, 이를 정부와 정치권, 사법부가 봐주고 있고 심지어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현행법상 기업은 안전수칙을 지킬 이유가 전혀 없다. 일상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안전 비용보다 노동자가 사망해서 내는 벌금의 액수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산재 참사로 원청 기업이 낸 벌금은 2천만 원에 불과했다.

    노동계는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를 멈추기 위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고 있다. 추모위는 “앞 다투어 구의역 승강장을 찾고, 태안과 서울의 장례식장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고 안타까운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던 정치인들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우리는 날마다 명복을 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의 역사
    46년 간 한 달에 1명씩 죽어간 노동자들…

    최악의 살인기업에 매해 이름을 올리는 현대중공업에서, 창사 시점인 1974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무려 46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매달 0.8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셈이다. 다만 이 결과엔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은 포함되지 않아 계열 조선사의 수치까지 포함하면 사망자 수는 더 늘 수 있다.

    금속노조와 현대중공업지부는 이날 오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6년 간 산재사망자에 대한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회사 자료와 노조의 자료 등을 교차 검증한 결과다.

    우선 사고유형으론 추락에 의한 사망이 가장 많았고, 과로사가 뒤를 이었다. 압착과 협착 유형의 사고, 충돌, 폭발·화재와 이로 인한 화상·질식, 감전사, 유해물질사고, 익사, 매몰 순이었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70년대는 5년 6개월 동안 13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주마다 한 명씩 목숨을 잃은 것이다. 1977년에는 무려 32명, 이듬해에도 29명이 사망했다.

    조금 줄긴 했지만, 80년대에도 113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 1984년에만 24명이 숨졌고, 1981년부터 6년간은 두 자릿수의 사망자를 기록하다가 노조가 생긴 1987년 이후부터 사망자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90년대에는 8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노조의 정착으로 사망 줄긴 했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 여전히 높은 중대재해율을 보였다. 특히 1996년 10월 28일엔 크레인 추락으로 4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대에도 81명이 사망했으나 90년대와는 다른 기류가 보인다. 정규직 산재 사망은 점차 감소한 반면, 하청노동자의 사망이 증가한 것이다. 2007년에는 하청노동자만 8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2010년대는 한국 조선업 불황으로 사망자 수가 크게 줄었다(44명). 그러나 이 와중에도 2014년에는 하청노동자만 9명이 숨졌고, 2016년에는 직영 노동자 4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하면서 사망자 수로는 199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에선 올해 2~4월까지 연이어 중대재해가 발생해 예년의 사망자 수를 뛰어넘었다. 최근 감소세를 보이던 직영 노동자도 이미 2명이나 사고를 당했다.

    사진=금속노조

    노조는 “이처럼 사망사고가 끝없이 이어지는 원인은 회사의 책임 못지않게 감독기구인 고용노동부와 제 역할을 못 하는 사법기관의 탓이 크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노동부는 회사의 입장을 두둔하고, 검찰은 불기소로 일관했다. 법원을 가도 나오는 처벌은 재벌에 아무런 타격이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법인과 대표이사는 2004년 연이은 하청노동자의 중대재해로 회사 안전보건총괄책임자가 구속된 것 외에는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1천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쳤다.

    그러면서 “회사는 안전을 강화하는 비용보다 사고 처리비용이 적게 들기에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법인에 안전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한 책임을 물어야만 노동자 연쇄 사망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