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1호 변호사
김정진, 18년간 희로애락
[김정진 인터뷰①] "야전사령관"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를 말하다
    2020년 05월 20일 03:42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인터뷰-서문] ‘부유세’ 김정진과의 대화…진보정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는?

1부. 정의당, 새로운 정치실험 실천 줄어든 이유는?
총선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이 정의당 특집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은?

▲ 인터뷰 방송 1부~2부 링크

원시: (질문 배경) 2012년 이후 정의당 당원들의 참여가 당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당의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는 당협과 당내 소모임도 활발하지 않다.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엘리트 정당에서는 상상도, 실천도 불가능한,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진보정당 당원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정치참여와 방식들이 사그라졌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다.

김정진: 새로운 시도를 이제 잘 안 하는지 구조가 돼 버렸어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데 안타깝더라고요, 정책도 새로운 시도를 잘 안 하려고 그래요.

원시: 그 말이 어떤 말인가요? 예를 들면 좀 이따가 구체적으로 물어볼 텐데요.

김정진: 그러니까, 지금 세계적으로도 정치체제를 그렇고, 전체적으로 앵그리 보터 (화난 유권자) 현상들이 있는 거고. 트럼프나 샌더스, 제레미 코빈 다 동전의 양면이잖아요. 기성정당이 사민당이나 보수정당 모두 민의를 제대로 반영 못하니까, 일부 국가에서는 상당히 폭발적인 세력교체 요구가 있는 거고.

트럼프나 코빈 같은 이단아가 등장하고, 경제적으로도 보면 이제 대공황, 2차 대전 이후 형성됐던 제도들이 이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인 거 같거든요. 세계적으로 새로운 이론도 나오고 있고, 근데 이제 그 예전 가졌던 생각을 업데이트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한 거 같더라고요. 의지도 없어 보이고.

원시: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인가요?

김정진: 사실 이게 반대 방향으로 너무 많이 가 버린 거 같아요. 과거 민주노동당 노선이 이제 사회운동정당 노선으로 방향을 잡았었는데, 별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었거든요.

(국회) 원내 활동과 외부활동이 사실 그때 2개 정당이라고 할 정도로 (당) 조직이 이제 분리 분할되고, 그것과 맞물려서 정파투쟁이 격화되면서, 의도치 않게, 정당노선이 그냥 원내정당 노선으로 돼 버린 거죠.

아니, 뭐 그것도 의미가 있고. 지금 대한민국 권력이 청와대와 국회에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또 너무 그쪽으로 (의원 중심 정당정치로) 가 버린 것 같아요 보니까.

민주노동당 때, 사회운동정당 노선을 거대한 소수 정당노선이라 했었죠. 사실은 원내에서 부족한 것을 외부에서 보충한다는 의미로 메시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메시지가) 전혀 없어진 상태죠. 사실은 이제 정의당이 뿌리가 약해져 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오히려 더 민주당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 또 더 생겨 버리고. 이런 것들이 좀 기본적인 구조가 아니었나.

원시: 많이는 아닌데, (총선 후) 민주노동당 얘기도 좀 나오고 그래요. 김정진 변호사가 민주노동당 출발할 때부터 일을 하셨잖아요.

(대학 시절, 87년 이후 서유럽과 같은 진보정당이 한국정치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정진)

김정진: 2002년경부터 했었죠.

원시 : 최근에 언론에서도 민주노동당 약간 언급되고 있는데, 어떻게 언급이 되고 있나요?

김정진: 지금 정의당이 여러 가지 곤란에 처하니까, 과거 또 다른 부분인데 민주노동당 초기에는 언론 환경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았거든요. 한겨레신문 같은 경우도 민주당 지지가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우호적인 보도를 했었죠.

지금 오히려 한겨레, 경향신문이 정의당이 뭔가 이제 큰 곤란을 겪고, (의회) 원내에서 축출된다랄지 이런 일이 생기면, 큰 문제라고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기자나 이런 분들이 그래서 자꾸 이제 정의당이 좀 다시 한 번 도약해야 된다고 하면서, 과거 (민주노동당) 이야기를 꺼내고, 이제 검토를 하고, 이런 상황이 조금은 있는 거 같은데. 지금 선거 끝나고. 옛날 민주노동당 때 주장했던 것들이 일부 실현된 것들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시리즈를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원시: (한겨레 신문기사) 저도 봤어요. 근데 저도 페이스북에 조국 사태부터 한겨레신문 논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몇 번 썼어요. 그런데 선거가 끝나니까 정의당에 대해 아주 심층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취재를 했더라고요.

김정진: 저한테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원시: 그런 것은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2부. 2001년 김정진 변호사 민주노동당을 첫 직장으로 삼다.

원시: 김정진 그때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으로 출발했는데,

김정진: 정책부장이었고, 이재영 동지가 정책국장이었고요.

원시: 그러면 어떻게 해서 민주노동당에 취직한 거예요?

김정진: 그때 이야기부터 하실려고요 ?

원시: 개인적인 이야기도 좀 될 것 같은데, 사법시험은 몇 년 동안 하신 거예요?

김정진: 제가 1996년에 합격을 해서,

원시: 어, 그러면 엄청 합격을 빨리 했군요.

김정진: 사법연수원 2년을 마치고, 군 대체 복무 3년을 마치고, 민주노동당으로 간 거죠.

원시: 그럼 첫 직장이 민주노동당이었습니까?

김정진: 이를테면 맞습니다.

원시: 그러면 그 때 뭐 계약을 한 거예요? 누구랑? 아니면 누구 소개로 들어간 거예요? 동기가 뭡니까?

김정진: 동기는 저도 참 너무 오래 전이라, 사실은 뭐, 우리나라 학생운동 과정은 원시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제 1987년 이후에 합법적인 영역에서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저는 사실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그 87년 이후 진행된 과정이 그 방향으로 가긴 했지만, 사실 상당한 부침이 있었지요. 그리고 당시 사회운동 대다수가 진보정당 노선이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민주당을 지원해서, 민주대연합을 한 다음 민주정부를 수립하자, 이런 노선이었던 거죠.

근데 제가 보기는 이제 우리도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가야 되는 거 아니냐,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은, 사실은 1990년대 초중반 때부터 했었어요.

개인적으로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쓰신 글, [한국정치학의 새 구상]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고 저는 이론적인 그 뭐랄까, 영감을 많이 얻어서…..

원시: 책 제목이 뭐라고요?

김정진: 한국 정치학의 새 구상. 개론서같이 쓰신 것인데, 해외 구조주의 정치이론이라던가, 풀란차스, 밀리반드라던가

(참고: 사회복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자율성이 있더라도 자본주의국가에 불과하냐 등에 대한 논쟁이 1970년대 서구 좌파들 사이에 벌어졌다.)

이런 국가론 같은 것도 소개를 많이 해 주시고, 사실은 80년대 사회사상(운동권 이론)은 혁명론으로 귀결이 되는데, 혁명론으로 가면 혁명주의자가 되어서,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하는데, 제 감각으로 봐서는 그건 뭐, 그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 방법은 뭐냐 ? 노조 아니면 정당인데. 근데 제가 노조활동을 할 깜냥은 안 되고 그리고 이제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죠.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확인하고, 사법시험 공부 하게 됐고, 사법시험 준비하기 직전에 다른 나라 사례들도 많이 검토를 했었어요.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그 당시에도 사노맹(사회주의노동자연맹) 계열에서 많이 소개했던 필리핀 바얀당(Bayan), 그런 해외 나라 합법적인 진보정당들 활동이나 또는 프랑스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 이런 공부를 좀 했었습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다가 그냥 일단은 사법시험 공부를 하게 됐고, 자격을 따고 나서, 좀 그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진즉부터 했었어요.

원시: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김정진: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던 거죠.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원시: 이제 그러면 어떻게 그 민주노동당을 찾아가게 되신 거예요?

김정진: 그냥 전화를 했죠.

원시: 공고도 난 것도 아닌데, 본인이 혼자? 누가 받았어요?

김정진: 자세히 생각은 안 나는데, 그냥 일반 전화로 했어요. 아마 거기 전화를 받으셨던 분이 아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 때는 그런 복잡한 전화가 오면 다 정책실로 연결을 해 줬거든요. 이재영 국장과 통화를 했죠. 그래서 이재영 국장을 그 후에 만나게 됐고

그게 민주노동당을, 2001년 경이어요. 민주노동당에 변호사들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 정책자문단 같은 거 했던 말인데, 이름이 뭐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하도 오래돼서 그때 그 변호사님들하고 인사를 하고 알게 됐고요.

원시 : 그 때 구성원이 누구예요?

김정진: 이덕우 변호사님이 좌장이셨고, 그리고 사법연수원 다니셨던, 지금 저기 정의당에도 계시는 박갑주, 법률지원단장 하셨고, 지금 교육청 감사관은 가셨던가? 이민종 변호사님 그리고 이제 경제정책 쪽으로 김석연 변호사님, 이런 분들이 계셨어요. 김석연 변호사님이 개인 사업 때문에, 지금은 활동을 많이 안 하시는데.

그래서 이재영 국장을 만나게 됐고, (민주노동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이재영 국장은 좀 심드렁했어요.

(왼쪽부터 박창규 정책부장, 김정진 정책부장, 이재영 정책국장 – 민주노동당 정책실 사람들)

원시: 아 심드렁~, 얼마 있다가 그냥 그만두지 않을까?

김정진: 그런 거 보다는 이제 당장에 필요한 것들이 이제 그런 당내에서 뭐…저를, 그 변호사가 들어온다고 해서, 그렇게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 가지고.

원시: 여건이라는 게 월급 이런 거?

김정진: 월급도 그렇고, 뭐 이게 길게 설명하기에는. 그런데, 그 당시 고참들은 알 텐데, 민주노동당 당시 상황은 양산박 비스무리한 분위기였습니다. 사람들도 실제 양산박이랑 비슷했고.

원시: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김정진: 수호지에 나오는, 그 양산박이 그 근거지인데요, 거기서 봉기를 해가지고, 탐관오리에 맞서서, 모택동이 제일 좋아했던 소설이어요. 어쨌든 그런 분위기여서.

제가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뭐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뭐 일단 마음 먹어본 것, 한번 해보자 ! 그 정도 생각이어서, 그래서 이재영 국장에게 좀 우겨서 어떻게든 일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책상도 안 주더라고요. 한 달 동안 책상도 없었어요.

원시 : 그럼 어떻게 일을 ?

김정진: 메뚜기 뛰면서 일을 했죠. 빈 자리에서. (메뚜기 : 도서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 좌석이 없을 때, 빈 자리가 생기면 원주인이 올 때까지 좌석을 이용하다가 다른 빈 자리를 찾아 옮겨다닌 의미로 메뚜기라고 함)

원시: 당사가 무슨 동에 있었나요?

김정진: 여의도 두레빌딩이라고요, 증권거래소 근방이죠.

원시: 그러면 그때가 2001년이라고요?

김정진: 2001년, 그리고 일을 시작한 것은 군복무 마치고, 4월경부터.

원시: 아 그러면 2002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이문옥 후보나 부산에 김석준 후보.

그 당시 깨끗한 손이라고 (이문옥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팬클럽) 그 웹사이트가 있었죠.

김정진: 그 때 같이 하셨죠? 그때 모임에 한 두 번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자발적 흐름들이 있었잖아요. 근데 이제 많이 그런 부분이 없죠.

원시: 그것 좀 아쉬워요. 그 웹사이트가 남아 있었으면 아주 좋았을 텐데요. 왜냐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토론 공간으로서, 옛날에는 가장 유명한 게 학교나 공장이나 이런 데서 대자보였잖아요? 70년대 80년대에.

온라인 공간에서 토론의 공간으로는 처음으로, (물론 천리안 하이텔 시대도 거론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당연히 맞고) 웹페이지 생겨 가지고, 해외에 있는 (저 같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민주노동당과 더불어 만들어진 건데, 그 웹사이트가 남아 있지 않아서, 조금 아쉬워요.

김정진: 그 자료나 글들이 좋은 사료가 됐었을 텐데요. 진보누리라는 사이트 있었죠. 그 글들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 누군가 도메인을 관리하셨을 텐데, 그게 다 지금 보면 귀중한 사료인데요.

원시: 그렇죠. 굉장히 아쉬운데, 개인적으로 제가 쓴 것은 갖고 있는데, 다른 분들도 (그 글들을) 갖고 있으면 좋은데, 그게 인제 굉장히 아쉽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게 있으면, 자료도 보관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김정진: 노회찬재단 쪽에서 들은 얘긴데, 노회찬 의원 활동하셨던, 인민노련과 관련된 자료를 성공회대 민주화기념사업회에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제 그게 체계적으로 보존 정리가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원시: 저도 아시겠지만, 다른 나라 경우, 그런 활동들을 가지고 관련학과 있잖아요. 정치학과 사회학이나 역사학과나, 다 석박사 논문을 써서 그거 가지고 밥 먹고 사는, 그런 게 다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다 그렇거든요. 우리나라 이야기가, 우리나라 지식사회가 너무 창의적이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민주노동당 제가 물어보는 이유가 앞으로도. 진보정당에 첫 직장으로 할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김정진 변호사가 왜 첫 직장으로 민주노동당을 선택했을까, 그게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어요.

김정진: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가, 잘 모르겠어요

지금 또 20년이나 지나 생각해 보니까, 근데 그때는 뭐 순진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믿는 바가 있으면 그 믿는 바에 따라서 맞춰서 뭔가 행동을 해야 된다라는, 물론 사람이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번 해보자, 이정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게 있으니, 말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은 어찌 됐든 간에 민주노총 지지, 엄호 하에 만들어진 정당이고, 그 당시에 그런 부분에서 사회적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식으로, 민주노동당이 유럽식 사회민주정당으로 발전할 걸로,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서 이렇게 내부적으로 이렇게까지 복잡한지 몰랐었고, (정파 분포나 갈등, 무능력 등을 포함) 이야기만 좀 들었을 뿐이었지, 믿는 바가 있으니, 행동을 하자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원시: 처음에는 주변 가족들이나 지인 반응은 어떠했나요?

김정진: 당연히 반대했죠. 찬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친구들이나 제 아는 모든 지인들이 다 반대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는 오히려 진짜 한번 해 볼만 일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다 반대했고요. 부모님들이 반대한 것은 당연하고요. 잘 아시겠지만, 부모님들이야 옛날 분들이시고.

원시: 그래도 뭐 타협을 했을 거 아닌가요? 그래도 뭐 민주노동당 하게 되면, 부모님 세대 기성세대에게 당근을 줘야 되잖아요? 이거 하면 뭐 줄 수도 있다. 뭐 해 줄 수 있다. 이런 뭐 공약한 거 없어요?

김정진: 타협하고 말고 뭐 그런 세대가 아니시니까.

원시: 그냥 폭력적으로 그냥.

김정진: 모든 일들이,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 좋게 좋게 시작할 수가 있겠습니까? 뭐 그런 거죠.

원시: (민주노동당)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은? 마음이 맞는 사람?

김정진: 제가 뭐 정책실 소속이었으니까, 당시 정책위원회 분들하고 주로 일을 많이 했고, 제 사수가 이제 이재영 국장. 지금 노회찬 보좌관 하다가, 지금은 좀 공부를 하고 있는 박창규 동지가 저랑 같이 정책부장이었고, 지금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김윤철 교수가 정치분야 정책위원으로 왔었죠. 그리고 지금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인 곽주원이 경제분야로 왔었고, 그때 이제 이 분들하고 주로 작업 많이 했죠.

3부. 민주노동당 시절, 가장 잘 한 사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 인터뷰 방송 3부~5부 링크

원시: 김정진 정책부장님이 그때 참여해 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그래도 이거는 잘했다 할 수 있는, 한 두 가지 정도는?

김정진: 말씀을 드리면, 저를 포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인터뷰 질의서) 내용을 보고, 인터뷰에 응했어요. 사료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건데, 선출직 공무원을 할 것도 아니고 제가 했던 것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요.

사실 그냥 힘들었어요. 그냥 전체적으로 그 오만 가지 안 한 게 없기 때문에, 오만 것을 다 했거든요. 정책도 그냥 뭐, 사실 제가 변호사니까 법은 좀 알죠. 그런데 노동법은 잘 몰랐어요. 그래서 노동법을 잘 아는 친구들한테 이제 좀 물어봐서 대략 얼개 정도 이해한 정도였고, 세법(tax law)은 대학원 때 전공해서 기본 이상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거든요. 사람이 없고 부족하니까 그냥 안 한 게 없어요.

이재영 국장 말고는, 아마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한 사람들 중에, 정말 제일 다양한 종류 토론에 제일 많이 나갔을 거예요. 나갈 사람이 없어서, 다 나가서 땜빵(땜질)하는 거였거든요. 솔직히. 다들 모른다고 해서.

(세금, 재분배 문제를 한국 정치 주제로 최초로 올려놓은 민주노동당. 김정진 정책국장이 부유세 토론회 주자로 나섰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조세 철학 빈곤으로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원시: 저도 2002년에 (부유세 토론) 뉴스 듣고 그랬죠.

김정진 : 사실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정책을 만들면, 언론에서 무슨 당시에 언론에서 거의 (민주노동당을) 보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없으니까 그렇기도 하고, 언론 환경이 진보언론도 그냥 웬만하면 그냥 김대중 노무현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다 치워버렸기 때문에, 선거 전에는 (민주노동당을) 조금 보도해주다가, 선거에 들어가면 아예 싹 지워버린, 이런 식 보도를 많이 했었거든요. 정책도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죠. 어려웠기 때문에, 좋게 기억에 남는 일은 별로 없어요.

원시: (듣는 순간 맴찢)

김정진: 그 정책 관련되어 좋게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죠.

예를 들어 부유세(wealth tax) 같은 경우, 제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실무적인 작업만 한 거예요.

외국 사례 찾고, 과세 기준 다들 이런 개념을 모르시니까. 이런 거 외국 사례 보고 정하고, 세부 문서를 만드는 정도였어요. 해외 사례도 조사하고, 근데 부유세나 이런 부분들은, 당시 당에서 정책으로 추진하던 것이었고, 의외로 여론의 반향이 있었고. 그게 아마 당시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사람들한테 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거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부유세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 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왜냐면 당 지도부는 부유세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거든요. 제가 민주노동당 때부터 경험했던 그 당의 리더 그룹들은 이게 참, 저는 그 전에 그 분들하고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특이하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뭐냐면, 아니 세부 정책이나 이런 거는 뭐 모르거나, 어떻게 보면 다 알 필요는 없겠죠. 근데 저렇게 오랫동안 사회운동에 복무했으면서도 노선이나 이상에 대한 확신 같은 게 다들 없으시더라고요. 관성적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뿐이지, 어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겠다라든가, 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떤 철학적 확신 같은 건 없으시더라고요.

부유세 추진에서,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부유세에 대한 외부) 비판이 당연이 있죠. 모든 정책이 다 명암이 있으니까, 그런데 조그만 비판이 있으면, ‘아주 그냥 뭐 해야 되냐’이런 식이야 반응이셨어요. 대부분.

그래서 사실 좀 그때 좀 놀랬죠.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게 온 것을, 오기로 한 게 잘한 거라는 생각이 초기에 들 정도였어요.

원시: 아, 그랬군요. 제가 세금, 부유세를 비롯해서 세금에 대해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요. 김정진 정책 부장님 증언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리더 그룹들이 문제의식이 없었다. 세금은 사실 재분배잖아요, 재분배부터 출발한 거, 정치기본이잖아요. 모든 선거에서요. 미국도 보면 공화당에서는 가처분소득 늘려 주겠다고 세금 맨날 깎는 거잖아요.

김정진: 그렇죠. 전통적인 주제죠.

원시: 한국 정치 당시 다른 정당, 리버럴 민주당과 보수당, 한나라당 이런 데서 세금 가지고 정책적으로 논쟁된 적이 없죠. 그러니까 재분배 정책이 최초로 제기되었고, 정치학적으로 그렇고 정치사적으로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전 그렇게 봤거든요.

김정진: 저도 그런 부분을 하려고 민주노동당에 들어간 것인데,

원시: (리더들이) 관심이 없었다

김정진: 제가 당시 놀랐던 건 이게 이제 제가 얘기를 왜 말씀 드린다면, 이후 진보정당 행보와도 연결이 돼요. 진보정당에 지도급 그룹들 행보를 보면, 사실 정의당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는데 제 느낌은, (리더 그룹들이) 기본적으로 원로원이예요.

이게 뭔가 전투를 하고 지평을 넓히고 재분배를 위해서 몸을 던지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냥 그 때부터 그랬어요. 그때부터 2004년 원내에서 의정활동 잘 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고 원로원 유형의 정치를 그 때부터 쭈욱 해왔던 거거든요.

원시: 지금 말한 원로원 정치, 방금 말씀하신 좀 풀어 줘야 될 것 같아요. 어떤 특질입니까?

김정진: 어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어떤 뭘 추진하고 있는 게 없어요. 추진하고 이럴 생각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그 대표적 지도 위치를 맡아서, 그냥 관리 정도나 한다고 해야 할까요? 궂은 일은 잘 하려고 하지 않고. 뭐 이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정책 관련해서는 부유세가 기억에 남긴 하죠. 근데 이제 추진 과정이 제가 하여튼 이것을 때려 치고 싶은 만큼, 분개한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제가 볼 때는 부유세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거 한다고 혁명이나 사회주의가 되는 것도 아니고, 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세금 조금 더 걷는 정도였어요.

그때 과세기준을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10억 정도면 어떨까, 10억이라고 정한 것은 당시 2002년도 시점에서는 10억 정도면 부자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강남에 큰 집이 하나 있으면 10억이 되었던 해입니다. 그 2002년 시기가. 노무현 정부 때 20억 되고, 이제 지금 문재인 정부 때 30억, 40억 되어 버렸죠. 그 때 10억 정도를 제시했는데, 그때 당내에서 나온 이야기예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랬어요. 여기가 민주당이면 그 말이 나올 수가 있는데 강남에 집 한 채 있는 사람은 어떡하냐? 그러는 것입니다. 제 귀를 의심했는데, 아니 왜 그럼 민주노동당을 왜 하는 거지, 이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였던 거죠.

지도급 인사들이나 그 생각들이 이런 부분들이, 그게 사실 진보정당 리더십 형성에 있어서,

‘이런 거였구나’ 이게 무슨 상당히 부정적인 요소로 많이 작용했다고 봐요. 그 이후에도. 그런 식의 리더십을 사람들이 계속 겪다 보니까, 당연시 해버릴 수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그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원시: 아, 지금 굉장히 중요한 그 말씀 해 주셨는데 저도 그때 온라인이지만, 정책을 제안하면서, 재분배(세금 정치)에서 출발하는데 아까 정치의 기본이라고 말씀했잖아요. 재분배 그 다음, 분배(노동소득)인데, 세금정치 가지고 그렇게 벌벌벌 떨면, 그것보다 더 힘든 노동소득 문제나, 그 다음에 그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자산의 평등화 문제나,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이나 토지나 주택이나 이런 정책으로 계속해서 발전시킨다라는 것은 엄두를 못 내겠는데요?

김정진: 그게 그런 정도 생각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던 거고요.

사실은 심하게 말하면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토지를 국공유화 한다고 돼 있었어요

원시: 예 그랬죠.

(부유세 공약을 내걸었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 순소득 394억 부자에게는 1%의 부유세를, 616억~3080억 부자에게는 2%, 12조 3226억 부자에게는 8%의 부유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임)

김정진: 그러니까 그 강령 내용도 인지를 제대로 못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볼 때는 인지부조화인데.

원시: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도 그랬었는데, 헌법에는 그 노동자가,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 놓고, 사실 그렇게 하지 못했죠.

김정진: 민주노동당 초기에 일들은, 대단히 힘든 일이 많아서 힘든 일도 많았고,

뭐 좀 어두운 면이 더 많았죠. 그게 부유세가 이후에 사실 실종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 같아요. 뭐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뭘 어떻게 추진하겠어요? 확신이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제가 그래서 오히려 저는 뭐가 기억이 나면, 제가 이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틀어서 국회 기자실 딱 2번을 갔거든요. 기자실에 기본적으로 가기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 국회 기자실에서 정치적 논평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봤기 때문에, 두 번 정도 갔는데, 그 두 번이 다, 아무도 안 오는 자리에요.

첫 번째 자리는 정책위원회에서 하는 기자회견인데, 개헌을 해서라도 토지공개념을 하자, 라는 이야기를 이제 정책위의장님이 발표하기로 한 거였거든요. 당시 주대환씨가 정책위의장이었는데, 토지공개념 일부 법률에 위헌 결정이 나면서, 과거에 토지공개념을 추진하기 어려운 거 아니냐, 이런, 사실 그게 오해인데, 그 오해가 있으면, 그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서라도, 토지공개념을 하자, 라는 설명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기 국회의원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민주노동당 때 이야기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토지공개념) 민주당에서 하고 있거든요. 문재인 정부 개혁안에 토지공개념이 들어가 있어요. 근데 그게 그 뭐랄까 빛이 나는 자리가 아니었던 거죠.

두 번째가 황우석 사태 관련 기자회견입니다. 그 때 아무도(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안 오려고 했어요. 황우석 사태 관련해서, 지금은 녹색당에 가 계신(최근에 탈당) 한재각 연구원이 황우석 팀의 난자채취과정 연구 윤리, 그리고 난차 채취 절차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거의 민주노동당 당사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가 많이 왔었어요. 사실 그때 민주노동당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면 담당자한테 물어보니까, 그럼 난자를 채취하지 않는 이유, 선진국에서 하지 않는 이유가, 그런 연구를 하게 되면, 난자가 많이 필요하고 난자라는 건 여성의 몸에서 별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배란촉진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여성의 건강에 아주 안 좋은데, 저소득층 여성들이 난자를 팔게 되고, 그럼 저소득층 여성들이 그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마치 매혈을 금지하는 것과 비슷한 취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이거는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이 (황우석) 연구성과와 무관하게 이런 윤리 문제를 무조건 지적해야 한다고 했는데, 난리가 난 거죠.

이제, 그 황우석 박사 같은 경우,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를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 말을 해가지고, 난리가 났어요. 저도 막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항의전화 받으면서 여러 사람과 싸웠거든요. 근데 그 한재각 위원이 그 문제에 대해서 추진하면서 해명을 하려고 하는데, 기자회견 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오려고 하는 거죠. 거기 갔다가는 몰매를 맞으니까. 그 회견까지 해서 딱 두 번 갔습니다.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거는 그때 참석한 거지, 개인적으로 되게 영광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진보정당 활동에 보람을 느꼈던 게 그 기자회견에 갔을 때입니다. 사실은 (2004년) 원내 진출했을 때보다, 그 때가 더 영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럽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계속>

김정진 변호사 (전 정의당 정책연구소장,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인터뷰 날짜,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오후 8시
대화 및 질문자: 원시

김정진 전 정의당 연구소장

약력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 합격,
1997-1999년 사법연수원 재직,
2002-2004 민주노동당 정책부장
2004년 민주노동당 총선 선대본 법률지원단장
2004-2005 민주노동당 법제실장
서울대 법과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세법전공)
2010-2011 진보신당 부대표
2015 정의당 중앙선관위원장
2016-2019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

필자소개
정의당 평당원. 레디앙 국제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