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보면 당신과 가족을 파악할 수 있다
    2006년 09월 18일 08: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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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식구란 말 대신에 가족이란 말을 많이 쓴다. 왠지 식구란 말을 쓰면 어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왜 그럴까?

식구(食口)란 말 그대로 밥 먹는 일을 함께 하는 이들을 말하는데, 그 대신에 가족이란 말을 쓰는 것에는 두 가지 우리 삶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다.

하나는 가족이 함께 같은 밥상에서 밥 먹는 일이 적어진 것이다. 바빠서인지, 힘들어서인지, 귀찮아서인지 어쨌든 요즘은 아침밥 먹지 않는 집이 많아졌다. 아침을 집에서 먹지 않으니 도시락을 쌀 수도 없어 더더욱 점심은 당연히 외식이다.

   
▲ 귀농운동본부 안산농장 회원들이 손수 재배한 작물들로 만든 수제비를 끓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안산농장)
 

식구란 말을 쓰지 않는 첫 번째 이유

그렇다고 저녁을 집에서 먹는 것도 아니다. 걸핏하면 회식이다 접대다 해서 술 한잔으로 저녁을 대신하기 일쑤다. 그러니 식구와 함께 오붓하게 밥상을 같이 할 시간은 주말밖에 없는데 그마저 소풍을 나가든가 외식을 하게 되면 집에서 함께 밥 먹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모자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선배 한분이 참 안타까운 얘길 해 주었다. 사업 핑계로 접대와 회식이 잦아 정신없이 살다보니 집에서 저녁 먹는 것은 고사하고 새벽에나 겨우 집에 들어가 잠자는 아이들 얼굴만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과 오랜만에 일요일 늦은 아침상을 받아 앉았는데, 아버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의 분위기가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해할 수 없더란다. 웬 낯선 아저씨를 만난 듯이…

요즘 아이들은 따뜻한 손길이 닿은 엄마의 도시락을 즐길 수가 없다.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급식의 재료나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생도 문제려니와 아이들이 줄서서 기다렸다 점심을 먹게 되면 점심 시간 전부가 다 밥먹는 일로 바쁘기만 하다.

도시락 싸들고 다닐 때는 점심 시간 전에 ‘도시락을 까 먹고는’ 점심 종만 치면 후다닥 운동장 나가 공도 차고 뛰어놀기도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힘도 쓰고 했지만 지금은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도, 동무들과 어울리며 우정을 쌓을 기회도 사라진 것이다.

식구란 원래 아침을 밥상에서 시작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해질녘에 집에 들어와 저녁 밥상을 같이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아침을 먹으면서는 밤새 무슨 꿈을 꾸었는지 오늘 할 일은 무엇인지 등을 얘기하며 하루를 열고,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저녁 밥상에서는 오늘 하루는 별일이 없었는지 등을 얘기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다.

우리세대의 아버님들은 어느 집이나 다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아침이면 늦잠을 절대 용서치 않았고 밥상에 앉기 전에 이불 개고 세수를 해야 했다. 밥상에선 반찬 투정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젓자락질, 숟가락질도 바르게 해야 했다.

맛있는 음식은 항상 아버지 차지라 혹시라도 아버지가 남기질 않나 눈치를 보곤 했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꼭 음식을 남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어릴 때 배운 아침 맞이하는 습관이 내 인생을 사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지금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처럼 아버지의 듣기 싫은 밥상 잔소리가 인생살이의 좌표가 되니 그게 진짜 교육이지 싶다.

식구란 말을 쓰지 않은 두 번째 이유

식구란 말을 잘 쓰지 않는 두 번째 이유로는 일반화된 폐쇄적인 개인주의 문화에 있다. 함께 밥상을 같이하면 식구가 되는 개방적인 문화 대신에 혈연적이고 핵가족적이어서 폐쇄성이 담긴 가족문화가 일반화된 것이다.

가족이란 말은 말 그대로 피를 나눈 혈연적인 인간관계이다. 그것도 요즘은 아파트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핵가족화되어 자기 가족밖에는 별 의미가 없다. 4촌 형제조차 먼 친척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지금의 가족이란 말은 옛날보다 더 폐쇄적이다.

반면 식구란 말은 말 그대로 누구든 그 밥상 공동체에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가족도 아니고 친척도 아닐지라도 말이다. 하다못해 옛날엔 집에서 기르는 소나 가축도 식구 대접을 받았다. 그 가축들은 먹기 위해 기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 나름대로 역할이 있어서 식구공동체에서 한몫 했다.

   
 

소 같은 경우는 밭을 갈아주는 없어서는 안되는 식구여서 부엌 옆에 외양간을 만들어주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했다. 한자로 가(家)자를 곰곰이 집면(?) 자에 돼지시(豕) 자가 합쳐진 글자다. 지금도 지리산 산간 마을에 가면 문간에 돼지를 키우는 집을 볼 수 있다.

돼지는 뱀의 천적이라 뱀이 많은 산간 마을에선 꼭 돼지를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돼지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도 다 먹어치워 훌륭한 거름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식구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식구 이상으로 가장 좋은 식재료로 먹을 것을 대접했다. 잠자리도 따로 손님방이 없으면 안방을 내 줄만큼 마음이 열려있었다.

우리 앞집은 4대가 함께 어우러져 산다. 연세가 많으신 증조할머니부터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며느리 식구들과 시동생, 그리고 어린 아이들 셋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산다. 특히 젊은 며느리는 보통의 도시 여성 같은 분위기인데도 시어머니와 친자식처럼 어울려 산다.

내가 아는 선배 한분은 부인이 큰 병이 드니까 손위 시누이들이 번갈아가며 병간호를 한다. 시어머니는 진작에 돌아가시고 친정어머니는 노환으로 몸이 불편하시니 시누이들이 도와주는데 가장 손위 시누이는 친정어머니만큼 연세가 드셨는데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란다.

고부간에 갈등을 비롯한 가족 내의 갈등이란 것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에서 한국전쟁을 거치고 급격한 서양화가 되면서 왜곡되어버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갈등이란 게 대개 남 배려할 줄 모르고 어른 존경할 줄 모르고 아래 사람 아껴줄 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지 않은가.

어려운 시대를 거치며 남보다는 나와 내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험난한 시대를 거치다 개인주의적인 서양문화가 밀려와 이기적인 문화까지 겹치다보니 그런 갈등이 널리 퍼진 것이다.

나는 모든 공동체의 기본은 식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밥상 공동체가 기본이라는 것이다. 공동체란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인간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의 총화가 바로 밥상이다. 밥상을 보면 그 공동체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재료와 그것의 가공과정, 그리고 밥상을 둘러싼 인간관계가 공동체의 핵심이다.

내 밥상은 어떤가

먼저 밥상의 음식 재료 가운데 고기 비율이 얼마나 차지하는지, 반대로 채식 비율은 얼마인지, 덧붙이면 발효음식의 비율은 얼마인지, 하루에 식구와 밥상을 받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보면 밥상의 기본 성격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밥상의 재료를 생산하는 방식의 문제다. 친환경적으로 지은 농산물인지, 내가 직접 지은 농산물인지, 수입농산물이 많은지, 함께 이웃과 더불어 생산한 것인지 등이다.
그 다음으로는 밥상을 먹고 나서 부산물, 곧 음식물찌꺼기와 똥오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밥상의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눠먹는지 등이다.

세끼 밥상을 거의 외식으로 해결한다면 식구 공동체는 심각히 훼손된 상태다. 외식 밥상에는 고기 비중이 많고 중국 농산물이 많으며 농약에 오염된 농산물이 많다. 이런 밥상은 또 건강을 해치기 쉽다. 외식 밥상에서 먹고 남은 부산물들은 오염원으로 버려져 반자연적이기까지 하다. 식구공동체도 깨지고 건강도 깨지고 더불어 자연도 깨지게 하는 것이다.

밥상에 올라오는 식재료의 자급율이 매우 적거나 0%이면 식구 공동체의 건강성이 약하다 할 것이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 하면 이기적인 소비심리를 키우게 된다. 공동체란 내 식구만이 아니라 남까지도 배려하며 더불어 살 줄 아는 정서를 키워준다. 돈이 아닌 내 노동으로 내 먹을 거리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 할 때 생산자적인 건강함을 키울 수 있다.

밥상의 식재료를 비록 돈으로 샀지만 도농직거래 같은 신뢰 관계를 갖고서 농부의 피와 땀을 이해한다면 좀더 건강한 밥상을 맞이할 수 있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처럼 내가 믿는 농부가 차려준 밥상이라면 얼마나 건강한 밥상이 되겠는가?

밥상을 같이 하는 식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눌 줄 아는 후덕한 인심이 차고 넘친다. 남녀노소가 다양하게 구성된 밥상에서 자란 사람은 사람의 다양성을 어려서부터 쉽게 배울 수 있다. 핵가족 집에서 자기밖에 모르고 자란 아이가 학교에서는 또래 교육으로 자라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모든 인간관계는 먹을거리를 둘러싼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나눠먹는 습관을 배운 아이는 저절로 조직에서도 나눌 줄 아는 미덕을 익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구 공동체가 살아나 밥상을 받는 일이 생활에서 비중이 높아지면 삶이 소박하고 단순해진다. 엥겔계수가 낮아야 삶의 질이 높다고 학교 다닐 때 배웠지만 삶이 소박하고 단순해지면 엥겔계수는 높아진다. 예컨대 자연 속의 삶을 찾아 시골로 떠난 귀농자를 보자. 도시의 기득권을 다 버려 가난한 농부의 삶을 선택하다보니 수입은 반 이하로 떨어져 버린다.

그가 노동하는 대가로 얻은 것의 대부분은 밥상 위로 올라온다. 돈으로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엥겔계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로 문화생활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땅에서 일하는 노동이 놀이요 놀이가 노동이니 그러하다.

나는 이런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평화의 근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평화는 밥상에서 나온다. 平和라는 한자를 보면 쌀(禾) 먹는 일(口)을 평등하고, 함께, 나눠 먹는 일(平)을 뜻하는 걸 보면 그럴 듯도 하다.

<댓글에 대한 소견>

저번 글에 대해 Lee님이 지적하신 것 중에 약간 오해가 있어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저는 항생제로 오염된 공장식 축분을 써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똥은 돈주고 버리고 남의 거름 사다 써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항생제 오남용 문제는 따로 다뤄야 할 것입니다. 다만 광활한 목초지에서 축산을 하는 것과 좁은 공간에서 공장식으로 하는 축산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 환경에서 유기축산을 대대적으로 벌이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유기농이 농약 치는 농사보다 진보라는 것은 몇 가지 조건을 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살림이 주도했을 때 유기농은 친환경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공동체 회복과 도농연대 운동이라는 성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럴 때 진보일 수 있다고 봅니다. 수입유기농이나 상업적인 유기농은 결코 진보일 수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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