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한나라 전선? 전두환을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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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7일 12: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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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유행어가 되어버린 ‘1987년체제’를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대중적이고 진보적인 고뇌와 투쟁이 현실정치의 보수적 역학관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귀결되는 것.

    1987년 대선 정국에서 재야는 세 방향으로 분열하였다. 후보를 (김영삼으로) 단일화하여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자는 세력, 기성정치인 중에 비교적 진보적인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자는 세력, 양김씨에 필적할 독자적이고 민중적인 정파를 만들어 연합정부를 세우자는 세력. 이들은 모두 패배했다. 그리고 이후 20년의 역사는 그들을, 더 정확히는 현재의 진보세력을 약 올리고 있다.

    민주화 이후 20년, 진보세력의 약을 올리다

       
     ▲ 1990년 3당합당 발표
     

    김영삼은 민정계, 공화계와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1992년 집권했다. 김대중은 김종필의 ‘비판적 지지’에 힘입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노무현은 3당야합이나 DJP연합보다는 수구성·보수성이 덜한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발판으로 삼아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정몽준의 배신과 민주당 구주류와의 결별을 거쳐 결성된 열린우리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한편 진보세력은 ‘연합정부’를 구성하기는커녕 이제야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어느덧 내년이면 개헌 20주년에다 정권교체를 이룬지 10주년에 이르게 된다. 1987년 체제에 1997년 체제까지 중첩된 시대의 한 정점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또 한번 정의를 시도한다. ‘1997년 체제’는 진보진영의 속빈 영향력을 앗아가 버티는 이른바 개혁정부가, 국가 안팎의 신자유주의를 결합시켜 수구세력을 배제하고 보수적 민주주의를 꾸리는 과정이자 그 결과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파병에는 미국의 압력이 영향을 끼쳤으되 재향군인회 따위의 요구는 먹혀들지 않았다. 심지어 한미FTA는 미국의 의사보다 앞서서 추진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이나 재야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발적이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한나라당과의 대비로 좀 더 손쉽게 증명된다.

    한나라당은 10년째 야당이다

    한나라당은 87년체제가 남긴 가장 보수적인 주체이면서, 97년체제의 거대한 찌꺼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간혹 현 국회의원의 이력을 제시해가며 ‘5·6공정당’이라는 지적에 항변하지만, 그들의 지주는 분명 1997년도 아닌 1992년 이전의 주류세력이다. 합세한 젊은피(원희룡, 남경필, 정병국), 민중당 출신(이재오, 김문수), 통합민주당 출신(박계동, 권오을), 과격한 전향자(뉴라이트)들은 민정계의 두꺼운 외장재에 지나지 않는다.

    97년체제 하에서 그들은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 실패했다. 그대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변화는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전 정치사회의 변화에 비하면, 뒤쳐져 있거나 기껏 쫓아가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는 ‘내재적 발전’의 요인이 없다. 박정희의 유산과 현 정권의 실정으로 건진 반사이득, 두 번에 걸친 대선패배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와 ‘수구정당’이라는 자책감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진실을 한 문장으로 빠르고 강력하게 상기해주고 싶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실현하며 세계화에 적응할 때 한나라당은 빠른 변동을 실감할 수 없는 야당에 머물러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구성한 ‘무능한 열린우리당, 오만한 한나라당’이라는 프레임은 거짓이다. 그 거꾸로가 맞다.

    우석훈은 쾌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미국 시장도 한국 시장도 모르는 노무현 정부가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 없다”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나라당에는 FTA가 실제로 어떠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어떤 부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분석할 수 있는 실무 전문가가 없다. 따라서 정부에 곤란한 질문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한나라당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은 집권능력을 상실했다. 한나라당은 민생을 풀어갈 실용적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체험 삶의 현장’과 낡은 이데올로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아예 전시작전권에 몰입하며 중거리슛으로 자살골을 넣으려는 중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증세론에 세금폭탄론으로 맞불을 지핀 댓가로 올해까지는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재정축소(파탄)론’이라는 늪에 빠진다면, 한나라당은 반복지 무책임 집단으로 설정될 것이다. 노무현의 ‘비전2030’에도 빨려 들어갈 공산이 높다.

    정말 두렵고 무서운 건 ‘강금실’

    민주노동당 및 진보진영에게 정말 무서운 적수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강금실’(보통명사로서 따옴표로 처리했지만 고유명사라도 이치는 마찬가지다)이다.

    월간 <말>의 논조를 살핀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최근 진보진영 일각에서 김근태를 ‘비판적 지지’의 대상으로 지목하려는 기운이 일고 있다. 소용없는 짓이다. ‘비지’의 첫 대상인 김대중 전대통령부터가 민족해방계열을 비롯한 비지파들의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그들을 이용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 역시 엔엘과 정서적으로 실질적으로 거리가 멀다(나는 사석에서 종종 농반진반으로 “노무현은 엔엘이 아니라 피디 출신이다”라고 뇌까린다. 엔엘 활동가들도 노무현을 김대중과 견주며 깎아내릴 때가 많다.) 

    비판적 지지파는 김근태를 살리지 못할 것이고, 카드를 바꿔도 대통령은커녕 열린우리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소외될 것이다.

       
    ▲ 지난 지방선거 당시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사진=연합뉴스)

    이를테면 ‘강금실’에게는 ‘비판적 지지파’가 필요 없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당선을 이끌었던 개혁적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다가 제도정치의 공백을 매웠던 시민사회운동의 실재적·잠재적 지지를 업고 있다. 앙시앙 레짐은 혁파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큰 영향력을 꾸준히 행사할 수는 없겠지만, 대통령선거에서는 다르다.

    학자, 변호사 등 여론주도층을 장악하며 평상시에도 노동운동, 진보정당을 능가했던 파괴력은 선거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대치에 이른다. 그들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이 표방했던 ‘거대한 소수’인 것이다. 더욱이 개인 강금실의 경우, ‘똑부러지는 개혁가’와 ‘유연한 실용파’라는 이중 이미지를 두르고 있다.

    강금실은 김대중-노무현의 자산과 노하우를 이어받으면서도 전임자들과 차별화가 가능한 대선주자다. 그 차별화로써 진보 성향의 표를 대거 잠식한다는 점이 무섭고, 또한 전임자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물려받는다는 점이 두렵다. 강금실 정부에서 ‘제2의 포스코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그걸 지금 상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강금실이 설령 사회민주주의를 꿈꾸고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의 배제는 노무현의 전철을 밟는 것으로 일단락될 터이다.

    진보적 유권자들이 또다시 표값을 돌려받지 못하는 불상사! 2012년경 강금실 정권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민주노동당은 추락할 것이며, 한국정치는 보수양당제에 갇힐 것이다.

    안티는 진짜 적수에게, 믿음은 자기 자신에게

    2004년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북구식 사민주의를 지향한다는 응답자가 45퍼센트에 육박했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30퍼센트대였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지형은 이러한 성향과 무관하다. 응답자가 스스로의 성향을 착각하는 현상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을 왼쪽으로 견인하거나 오른쪽으로 밀어내야 한다. 전자로 이행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더 높은 후자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열린우리당은 확고한 보수정당으로 규정되며, 한나라당은 개발독재를 희구하는 유권자들만의 정당으로 추락할 것이다.

    저 좋은 길을 놔두고, ‘반(反)한나라 전선’은 판갈이를 포기하고 있다. 그것이 상상하는 최선의 길은 한나라당을 뿌리 뽑거나 변두리에 묶어두고, 진보와 보수로 정치판을 나누는 것이겠지만, 열린우리당을 오른쪽으로 밀지 않을 때 이는 공상일 뿐이다.

    오히려 미국식 자본주의를 지향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을 반-반한나라, 즉 범-한나라로 갖다 바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유권자 다수는 열린우리당으로 쏠리게 된다.

    안티를 하려거든, 반한나라가 아니라 반재벌, (반노동에 대한 안티를 강화한) 반조중동을 해야 한다. 열린우리당까지 공격할 수 있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서 말이다. 삼성 이건희일가를 위시한 재벌은 한나라당을 구사대로 거느리는 한편 열린우리당을 노무팀장으로 기용했다.

    조중동의 ‘반노동’ 색채는 한껏 짙어져 열린우리당을 공략하고 있다(안티조선의 전성기로부터도 배워야 한다. 그 운동이 연합전선이 아닌 ‘시민 개인들의 연대’를 유지했을 때, 그들은 모두 함께 조선일보를 반대하면서도 저마다의 원칙을 세웠다. 덕분에 안티조선의 원칙은 민주당이나 한겨레신문을 겨냥하는 데도 쓰일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에 잔존한 ‘반한나라 전선론자’들에게 경고한다. 87+97년체제에서 적들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심지어 누가 적이고 누가 라이벌이며 누가 동맹자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을 믿어야 한다. 지금은 1987년이 아니다. 전두환을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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