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가톨릭 근본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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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6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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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종교가 몇 개나 될까? 천주교,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등은 우리들에게 그 이름이 익숙한 종교이고,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종교까지 합치면 그 수는 수백, 수천 아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수많은 종교들이 서로 반목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벌인다면, 이 세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기실 종교전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부족 단위의 시대부터 종교적 대립과 갈등은 계속 되어왔다. 어쩌면 이 지구상에 종교가 생겨나면서부터 종교분쟁, 종교전쟁이 시작되고 계속 되어온 지도 모른다.

종교, 잠복돼 있는 ‘불안의 씨앗’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종교전쟁이 이른바 ‘십자군전쟁’이다.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1096년부터 200여년에 걸쳐 7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이 종교전쟁은 교황 주도하에 ‘십자군’이 결성돼 이슬람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엄청난 살육전이 일어나 양측의 사상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종교분쟁 혹은 종교전쟁은 종교가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으로 인해 일어날 개연성을 항시 가지고 있다. 종교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가 배타성이다. 같은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서도 무참한 전쟁을 하였으니, 다른 신을 믿는 종교 간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평화를 위해 종교 간의 화해와 상호존중이 주요한 흐름으로 정착되어 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런데 최근에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종교 간의 화해와 상호 존중을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최고 종교지도자가 오히려 상대 종교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최근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대학 강연에서 이슬람교와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를 비판했던 14세기 비잔틴제국의 황제 마누엘 2세 팔레올로고스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인용된 마누엘 2세의 발언은 이렇다. “마호메트가 가져왔다는 새로운 것을 보라. 칼을 앞세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그의 명령 같은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들만 보게 될 것이다.” 마호메트와 이슬람교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지하드(성전)는 비이성적인 폭력을 통해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라는 마누엘 2세의 발언을 거듭 인용하면서, “폭력은 신의 본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까지 하였다.

발언 파문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교황청이 즉각 나서서 “이슬람교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긴급 해명을 하였지만, 그런 말 한마디로 사태가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발언의 진의야 발언을 한 교황 자신과 ‘하느님’만 아는 것이겠지만,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와 이슬람교에서 매우 중시하는 지하드, 즉 성전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발언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냉전 체제가 해체된 후 미국의 정치학자 사뮤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경고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종교권 사이의 충돌을 언급한 것인데, 종교간 충돌을 ‘문명’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 사이의 충돌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 현대판 ‘십자군전쟁’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헌팅턴은 미국의 보수파를 대표하는 정치학자로 그가 주장하는 ‘문명의 충돌’을 주장할 때부터 냉전 해체 후 사회주의권을 대체하는 새로운 적(敵)을 상정하려는 미국 내 보수파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 왔다.

9.11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그리고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는 지난 5년여의 과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헌팅턴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자신을 선(善), 상대방을 악(惡)으로 규정짓고자 하는 이분법이 숨어 있다. 즉 자신들의 행위는 어떠한 것이든 간에 정당하다는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이 들어있다.

자꾸 신경쓰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과거

이러한 사고방식의 종교적 표현이 근본주의이다. 자신들이 믿는 신과 종교만이 무조건 옳고, 상대방의 신과 종교는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생각, 그리하여 상대방의 신과 종교를 말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바로 종교적 근본주의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인용한 마누엘 2세의 발언은 이런 근본주의의 한 표현이다.

발언의 진의 여부와 관계없이, 종교간 화해와 상호 존중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교황이 그러한 극단적인 발언을 인용한 것 자체가 결코 온당치 않은 일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선출될 당시부터 과거 경력과 성향으로 인해 많은 우려가 있어왔다.

나치스 소년단원 출신으로 천주교 내의 대표적인 보수파 인사였던 베네딕토 16세에 대해 세속적으로 말하면 ‘전체주의적 사고’와 ‘종교적 배타성’을 가지고 있는 인사라는 비판이 있어 온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교황의 발언을 두고 그러한 교황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수 가르침의 정수(精髓)는 마태오 복음서 5장에 나오는 ‘산상설교’에 잘 요약되어 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다.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이 천주교가 추구하는 근본정신이다. 예수의 제1 사도라는 교황의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식의 외교적 언사를 뛰어넘어, 이슬람교인들뿐만 아니라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따르고자 하는 대다수 선량한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심대한 정신적 타격을 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은 참회와 반성을…

1095년 당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 원정을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대도 그대의 형제의 땅으로부터 이런 사악한 인종을 서둘러 근절시키기 위하여…” 그리하여 십자군 전쟁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참회와 반성을 교황에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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