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빌미로 원격의료 추진
    의료영리화 우려···재난자본주의 전형
    시민사회 “의료수준 향상 없이 의료비만 폭등 우려"
        2020년 05월 15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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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청와대가 일제히 원격의료(비대면 의료)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그간 의료영리화 논란 등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던 원격의료를 코로나19 위기를 빌미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노동·보건의료계는 감염병 사태로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도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 안전과 건강 상 부작용이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제도화해 재벌·기업들의 숙원사업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는 재난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날인 14일 방역·보건 전문가들과의 정책간담회에서 “공공보건의료 체계 강화와 의료격차 해소 등 정책과제에 혁신적인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된다”며 “국내 의료·바이오 산업 분야에도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비대면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하고 방역·보건 시스템을 한 단계 도약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기재부도 비대면의료 도입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고,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의료의 순기능은 검증됐다고 보인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 원격의료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인 13일에는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시민사회계는 그간 역대 정부의 지속인 원격의료 추진 시도에 반발해왔다. 높은 오진 가능성 등 안전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의료비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여러 차례 진행한 시범사업에서도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아 불발된 바도 있다.

    대책위는 “대표적 의료영리화 정책인 원격의료는 삼성, LG, SK텔레콤 등 원격의료 기기와 통신기업들, 대형병원엔 돈벌이 숙원사업이지만 환자에게는 의료수준 향상 없이 의료비만 폭등시킬 제도”라고 우려했다.

    산간·도서지역, 장애인·노인에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도서지역의 경우 이미 원격의료를 진행하고 있고 대부분 1일 생활권인 우리나라는 병원 접근성도 높은 편이라 원격의료의 큰 필요성은 없다는 것이 보건의료계의 중론이다. 외국도 오지와 산간 지역 등 의료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곳을 한정해서만 원격의료를 사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병원 방문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노인 등은 디지털 접근성도 떨어져 오히려 접근성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책위는 “노인과 취약계층에게 원격의료는 기술·정보 접근 장벽으로 의료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도서벽지에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기관과 방문진료”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원격의료를 검토한다고 하지만, 오진 가능성이 높은 원격의료로 감염병 진단과 치료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사회계는 의료정부 상품화나 원격의료가 아닌 의료인력과 공공의료기관 확충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신천지 신도 집단 감염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확진자를 수용한 곳은 공공병원이었다.

    대책위는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도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이 부족해 대구·경북에서 위기를 맞았다. 이미 공공의료 부족 문제가 공공연히 드러난 상황”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됐던 3월 중순까지 75명 사망자 중 17명은 입원도 하지 못한 채 사망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환자가 폭증한 것이 아닌데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공공병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0만명당 중환자병상 수가 10.6개로 많은 사망자를 낸 미국과 이탈리아보다 적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10%밖에 안되는 공공병상을 대폭 확충해 OECD 평균인 73%까지는 안 되더라도 당장 20%까지 늘릴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의 자발적 헌신만을 요구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공공의료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원격의료는 정부가 코로나19 고용대란 대응 방안인 일자리 창출 정책과도 어긋난다.

    대책위는 “병상 당 간호사가 OECD 평균의 1/5 수준인 열악한 간호노동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일자리를 없앨 원격의료가 아니라 시급히 필요한 의료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는 원격의료 검토에 앞서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가명화해 민간기업이 활용,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난달 29일 코로나19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가 발표한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방안’엔 개인의 의료정보를 상품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료정보는 재식별 가능성 등이 높은 만큼 개인정보보다 높은 수위로 보호받아왔으나, 해당 방안이 실현되면 개인정보와 똑같이 가명처리만 거쳐 상품화할 수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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