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시절,
항공산업 국유화 못할 이유가 뭔가?
[에정칼럼]고용 유지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 결합해야
    2020년 05월 14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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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아는 청년이 어렵사리 항공산업 관련 기업에 취직을 했다. 1960년, 1억 명의 승객을 운송하던 전세계 항공산업은 2017년에는 40억 명을 실어 날랐다. 70년대의 오일쇼크, 911사건, 2008-9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빠르게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승객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항공업계는 2038년까지 승객수가 두 배로 증가하며, 세기 중반에 다시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 항공산업의 성장과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이 전도유망한 산업에서의 첫 일자리를 당연히 축하할 일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복잡했다.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대략 2%대를 차지하는 항공산업은 세계 6위와 7위의 일본과 독일 사이에 위치한 다배출 산업이다. 전세계 항공산업이 이대로라면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2050년 탄소예산의 25%를 차지한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은 전세계 국제항공 부문의 배출을 2020년 수준에서 동결한다는 협약으로 제동에 나서고 있다. 탄소 상쇄 등의 문제적 방법론도 그렇지만, 배출제로를 추구해야 하는데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한다는 게 타당한지 논란도 일고 있다. 항공산업은 기후재앙의 주범이 되거나, 아니면 가혹한 규제를 감내해야 할 산업이었다. 이 산업에서 갖 일자리를 구한 청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방송화면 캡처

얼마 되지 않아, 그 산업에는 잔인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점차 항공 산업을 얼어붙게 만들더니, 4월 말 운항되고 있는 전세계 항공기수는 작년 동기 대비 64%대로 추락하였다(그림 참조: Flightradar24, 2020. 5. 1). 같은 시기 상업용 항공기 운항수는 74.7%까지 떨어졌다. 수많은 항공사들이 엄청난 영업 손실을 내기 시작하였으며, 이대로라면 전세계 항공사들의 절반이 파산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영국과 호주의 저가항공사들이 파산 신청했고, 영국항공,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등 해외 국적항공사들도 큰 손실을 입고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과 함께 정부의 긴급 구제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재난을 잘 극복하더라도 예전 수요가 돌아오는데 최소한 2-3년은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 항공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2020년 1분기의 항공 승객수는 2019년의 동기에 비해 41.5%로 줄었으며, 항공사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제선 승객수는 올해 3월에 91.5%까지 줄었다. 대한항공은 1분기에 2,400억 원, 아시아나 항공은 3,000억 원의 영업 손실이 전망되며, 각각 6개월간 직원 70%의 순환 휴직과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이 시작되었다. 그나나 공급 과잉인 저가항공사들이나 다른 하청업체들의 충격은 더 크다. 이스타항공의 350명 해고에서부터, 지상조업사와 하청업체들의 무급 휴직과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항공․공항 고용안전쟁취 투쟁본부’를 만들고 한시적 해고금지, 인천 중구의 고용위기 지역 선정, 고용위기지원금 사각지대 해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 청년은 당장의 비극에서 비켜나 있어 다행이다.

심각한 타격을 입은 항공사들의 구제를 거부한 남아공 같은 국가도 있지만, 주요 국가들은 항공사들의 구제 요청에 호응하여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500억 달러를 미국 항공사들에게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민영화 이후 경영 악화를 해결하지 못한 이탈리아항공(Alitalia)을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에어프랑스에 700만 유로, 독일 정부는 루프트한자에게 1,000만 유로 지원 계획을 결정하거나 논의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그리고 저가항공사에 3조 2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항공사 파산을 막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넉넉히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

그러나 항공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두고 국제환경단체들은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항공사 파산을 막고 고용을 지키는 것을 지지하지만,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인 항공산업을 구해내는 것만이 자금 지원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온실가스 감축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에어프랑스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고속철도(TGV)가 경쟁하는 국내 단거리 노선의 폐지 등의 조건을 걸었다. 에어프랑스는 2024년까지 단거리 노선의 배출량을 50%까지 감축하며, 단위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025년까지 지속가능한 연료 이용율을 2%까지 확대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비슷하게 단거리 노선 감축, 철도회사와의 협력 강화, 친환경 연료 이용 증가 등의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3조 2천억 원 규모의 항공사 지원 결정에 ‘기후 조건’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또한 정부가 조성하겠다는 40조원 규모의 (항공산업을 포함한) ‘기간산업안정기금’ 관련 정책 설계와 법개정 논의, 어디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나마 정부가 제시한 고용유지나 이익공유 등과 같은 기준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을 생각하면, ‘기후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코로나19 재난에 직면한 기업들이 최소한의 비용 지출도 피하기 위해서 정부의 고용위기지원금을 지원받아 고용을 유지하기보다 해고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까지 듣고 있으면, 오늘의 삶조차 지키지 않는 사회에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다시 묻자. 우리가 원하는 것이 코로나19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우리가 찾아가고자 하는 ‘뉴 노말(New normal)’이 무엇인가. 함께 살기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에 고통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사회를 거부해야 하는 것처럼, 지속되는 항공기 운행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로 기후재앙에 내몰린 세상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삶과 내일의 생존을 따로 떼놓지 않고 함께 묶는 동시에, 이 모두를 위협에 빠트리는 체제를 바뀌려는 사회적 열망이다. 나아가 내일의 생존을 위해 오늘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사려 깊은 사회적 토론도 필요하다. 그 청년도 함께 할 수 있을까.

이 열망을 끌어 올리고 토론을 촉발시킬 수 있는 실마리가 하나 있다. 정부가 대한항공에 대한 1조 2천억원을 지원하기로 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기업의 국유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들에 대한 지원의 일부가 ‘주식연계증권’ 방식으로 이루어져 정부가 의결권을 행사하여 기업 경영에 개입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미 지원 결정이 난 대한항공에 대해서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주식 전환이 가능한 영구채 3,000억 원 어치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주식 지분의 10%를 보유하게 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까지 포함하여 지분은 20%를 넘어선다.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에도 비슷하여 정부 측 지분이 거의 25%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위원장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라며, 산업은행법 개정안에 기간산업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이 있어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명시적으로 담아 국회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코로나19 재난과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공적 자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일을 멈춰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500억 달러를 연방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 항공사들을 국유화하자는 주장에 주목할 때다. 탈규제화되어 과점된 상태에서 각종 방식으로 막대한 이윤만을 탐닉하는 반면,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항공사들을 바로잡을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에 대해서 같은 주장을 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그리고 공급 과잉인 저가항공사를 과감히 국유화하거나, 적어도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이용하여 필요한 사회적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자. 우선은 고용을 유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방안을 발굴하고 실행하는데 집중하지만, 코로나19 재난의 여파와 기후위기에 직면한 항공산업의 미래 적정 규모에 대해서 토론하고 고용 전환을 지원하는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시장보다는 국가가 이런 전환에 더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잔인한 시절, 항공산업을 국유화를 못할 이유가 뭔가. 오늘의 삶과 내일의 생존을 위해 토론해보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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