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 노동자들, 영웅에서 환경 피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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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6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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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5주년을 맞아 미국 언론은 온통 관련 특집 프로그램으로 도배질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재조명, 뉴욕시를 포함해 각 지역의 추모행사, 사고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의 현재 모습과 새로운 건축 계획 등이 소개되는 한편 9/11 이래 전개된 테러와의 전쟁 결과 과연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지를 묻는 토론과 여론조사가 진행된다.

    쏟아지는 9.11보도에서 실종된 의제

    때마침 발표된 알 카에다 측의 5주년 기념 메시지도 빠질 수 없다. ABC는 특집 영화를 만들어 9/11의 책임 소재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CNN은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전투를 현장에서 직접 전송한다.

    중간 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가만있을 리 만무다. 빈 라덴을 아직까지 체포하지 못한 문제, 이라크 전쟁의 부적절함 등에 대한 공격과 방어가 민주당과 공화당간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 9.11 건물 붕괴 당시 유독가스와 독성먼지를 마신 노동자들 가운데 40% 노동자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9/11을 주제로 한 이런 야단법석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9/11의 이슈도 있다. 바로 무너져 내린 월드트레이드센터의 사고 현장에서 구조 및 처리 작업을 수행했던 노동자들의 건강 피해에 관한 문제이다.

    비록 9/11 5주년을 며칠 앞두고 <뉴욕타임즈>가 그라운드 제로 노동자들의 건강 피해 문제를 조사해온 마운트 시나이 병원의 최근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관심은 다른 이슈에 비해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듯이 보인다.

    그간 미국 정부는 9/11 노동자들의 발병과 그라운드 제로의 먼지 간 상관관계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이들 노동자들의 치료와 보상 문제에 대한 확고한 정책 방침을 설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마운트 시나이 병원의 보고서는 그라운드 제로 노동자들이 구조 및 사고 현장 처리를 위한 노동 이후 겪고 있는 각종 질병과 사고 현장 먼지간의 연관에 대한 그간의 지루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고 명료한 결과를 담고 있다.

    붕괴 직후 현장 노동자 70% 질환 시달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마운트 시나이 병원 의료진의 입장은 확고하다. 우선 그들이 조사한 그라운드 제로 현장의 먼지 샘플은 명백한 독성먼지라는 것이다. 먼지에는 폐에 박힐 수 있는 무수한 미세 유리 파편과 발암성 물질인 석면, 다이옥신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붕괴된 직후부터 며칠 동안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상태가 가장 심각한데 환자들 중 70퍼센트 이상이 9월 11일부터 13일간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당시 아예 방진마스크를 하지 않았거나 매우 부적절한 수준의 장비만을 지닌 채 작업을 수행했다. 이들에게 작업 현장의 환경적 위해성에 대한 충분하고도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연방 환경청장이었던 휘트만은 이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주의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재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태이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마운트 시나이 병원이 1만 명의 그라운드 제로 현장 노동자들을 검사한 결과에 근가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무려 70퍼센트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호흡기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이 비율은 같은 병원이 2004년에 1,100명의 노동자들을 샘플로 해서 조사한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보고서의 신뢰도는 물론 피해 규모의 심각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9.11 당시 뉴욕시장은 유력 대선후보, 노동자들은 소외된 채 고통

    한편 이번에 발표된 조사는 암 발병 케이스를 포함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역시 그라운드 제로 현장 구조와 처리작업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뉴욕 소방관, 공무원, 통신 및 운송 노동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은 뉴욕 소방본부에서 별도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제외되어 있어서 이를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 미국정부는 9.11 그라운드 제로의 노동자들을 당시에는 ‘영웅’으로 칭송했지만, 지금은 외면하고 있다.  
       

    현재 많은 환자들이 증세가 더 이상 호전되지 않은 채 만성화 되어가고 있는 실정인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보험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이다. 병원 측에 따르면 무려 40퍼센트의 환자들이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테러로 인한 충격으로 많은 미국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9/11 노동자들의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구조 노력과 현장 처리 활동은 깊은 감동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언론은 그들을 영웅으로 칭송했다.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당시의 뉴욕 시장 줄리아니는 그 후광으로 현재 유력한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9/11의 영웅들은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롭게 9/11의 후유증인 각종 질병과 싸우고 있다. 이번 마운트 시나이 병원의 조사결과 발표 후 진행된 의회 청문회에 첫 번째 증언자로 나온 조셉 자드로가는 그라운드 제로 작업에 참가한 후 발병한 호흡기 질환으로 올해 1월 사망한 뉴욕 경찰관 출신인 그의 아들 제임스가 고통 받는 동안 뉴욕시에서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며 울먹였다.

    9/11은 무차별적 시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이에 대한 고통 분담에 모든 미국이 나섰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을 조금만 끈기 있게 들여다보면 사태 이후 대응과정에서 가장 위험스런 일을 도맡았던 것은 바로 9/11 노동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미국 국민의 영웅으로 칭송 받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 짧은 영광 뒤에 다가온 환경 질병으로 오랜 시간, 아니 앞으로 평생 동안 고통을 받게 되었다.

    9/11 노동자들의 환경 피해 사례는 환경 문제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에게 훨씬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9/11이 야기한 환경적 위협에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바로 노동자들이었으며 그로 인해 발병한 환경질병으로부터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 노동자들 중에서도 건강보험을 소유하지 못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사회 정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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